두 번째 10일 위빳사나 코스 시팅을 끝내며
두 번째 10일 위빳사나 코스 시팅을 끝내고,
부모님 댁으로 돌아와 소감을 남깁니다.
'군대에서 10일 보내는 것보다 더 안 갔던 것 같아요'라고 동료 구수련생분께 말하기도 했습니다.
하루 약 7-8시간 정도 명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가만히 앉아 아딧타나, 대결정심을 갖고 조금의 움직임 없이 계속해서 명상을 해내려 하다 보니, 몸에 드는 피로감도 심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만큼의 큰 소득이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첫 10일 코스 이후, 3번의 10일 코스 봉사활동 간에 쌓여있던 제 안의 부정적인 마음들도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마음속의 슬픈 마음들을 다 없앨 수 있을까 참 많은 고민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 고민들이 외부 상황에 처한 제 마음의 반응이더군요. 반응 그리고 반응.
그 반응에서 또 다른 생각과 고민으로 마음을 뿌리 뻗쳐 계속해서 고민하고 또 고민하며 마음의 기력을 다 쓰는 일.
'번뇌에 빠진다.'라고 표현하죠. 그런 상태로 봉사를 연달아하는 내내 20일을 괴로워했던 것 같습니다.
알아차리지 못하니, 브레이크가 고장 난 듯 마음은 계속해서 한 사건에 대해 또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또 생각에 빠지는 연쇄반응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했지요. 어떤 사람이 제게 한 말에 '왜 저렇게 말을 했을까? 내가 미운 걸까? 난 선한 의도를 갖고 이곳에 봉사를 왔는데, 어떻게 내게 저렇게 말할 수 있을까?'라고 되뇌고 또 되뇌고 있었습니다.
물론 어설프게나마 너무 많은 번뇌가 왔을 때는 '알아차림'을 해내며 계속해서 풀어나가려 했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내게 했던 한 마디에 '이런 뜻으로 말했나? 저런 뜻으로 말했나?' 계속해서 고민하고 번뇌에 빠지는 일 자체가 이미 '반응', 상카라라는 점을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첫 10일 코스를 했을 때와는 달리 '더 많은 내용들이 새롭게 와닿는구나'라고 느낄 때도 많았습니다.
구 수련생으로 참가해 시팅 앞쪽에서 고앤카지 선생님의 말씀들을 더 가까이서 접할 수 있어 그런 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음의 반응을 알아차리고 바로 없애는 방법을 인식하고 나니, 강의를 듣다 다른 생각이 들 겨를에도, '아 잡념이 또 일어났구나'라고 알아차리면 깔끔하게 강의에 몰입해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가부좌를 풀지 않고 두 시간 내내 앉아있을 수 있는 근기도 더 가질 수 있게 됐고요
명상에 집중하다 보니 제 삶의 앞날들을 어떤 식으로 이루어나가야 할지 다음 스탭들을 떠올릴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러다 명상원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 제 꿈과 닮아 있는 분들을 조금이나마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한 봉사자분은 실제로 정원 디자이너로 활동하시며 퍼머컬처에 관심을 둔다는 제게 명함을 건네주시며, 언제든 와서 배울 수 있으니 연락을 달라는 메시지를 남겨주셨습니다.
또래의 한 친구는 사찰 음식을 배울 수 있는 사찰식 키친팀에 연락해보라며 조언을 해주기도 해 주었고요 :). 그 덕분에 한 스님과 연락이 닿아 '원한다면 언제든 연락하고 들어오라'라는 긍정적인 응답을 받기도 했습니다.
퍼머컬처를 하며 자연의 흐름을 따라 살고 싶은 마음, 세상에 '이렇게 자연의 흐름을 따르며 살아가는 방법도 있습니다'라고 외칠 수 있는,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삶을 살고자 했던 마음을 실제로 이룰 수 있는 기회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퍼머컬처를 하려면 땅과 식물을 가꿀 수 있는 이해가 필요합니다. 다만 저는, 그 모든 땅을 가질 수 있는 경제적 여건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 지금 당장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일을 먼저 구해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래서 떠오른 아이디어는 실제적인 소득을 가져다줄 수 있는 직업을 갖고 살면서, 퍼머컬처를 해나가자는 점이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고, '자연의 흐름에 맞춰 채식 조리-사찰 음식을 다룰 수 있는 요리사가 되면서 곁가지로 퍼머컬처를 조금씩 연습해나가면 좋지 않을까?' 하는 플랜을 갖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소득을 가져야 내가 원하는 공간에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삶을 가꾸어나갈 수 있게 될 테니까요.
다만 그 사찰에서 요리를 배우고, 채식 셰프나 사찰음식 셰프로 직업을 갖고 소득을 얻으려면 적어도 3년의 시간은 더 걸릴 듯합니다. 소득이 없이 배움의 시간만으로 채우기에 3년의 시간이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기에 그 긴 기간을 어떠한 소득 없이 보낼 생각을 하니 마음에 조금 고민이 들기도 합니다.
세상에서 알아주는 사찰 음식, 그리고 그 음식을 만드는 스님이기에 그분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소득이 없이 3년이나 지내는 삶 역시도 조금은 막막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저는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까요?
물론 3년 내내 그 사찰에서 하루도 빼놓지 않고 거기서만 사는 게 아니라, 일정한 기간을 배우고 또 나와 경제생활을 하며 지내다, 또 들어가 몇 개월을 사찰 음식을 배우다 나와서 또 경제활동을 해나가는 등, 소득을 만드는 일과 배우는 일을 병행해가며 살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소득을 바라는 이유는, 저만의 공간을 만들 수 있는 땅, 집, 그리고 제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이러저러한 것들을 조금씩 사들이며 제가 제 색을 가질 수 있는 삶을 만들어낼 시드머니들을 갖고 싶기 때문입니다. 저만의 색을 만들 수 있는 시드머니들. 결국에는 저만의 색을 갖고 싶은 마음이 소득을 바라는 이유이겠지요.
소득이 굳이 없어도, 시간이 흐르는 동안 저만의 색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면, 굳이 소득이 필요할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돈이야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 제가 그릇을 갈고닦아 역량을 키우고 나면 언제든 돈을 빌리거나 꾸어서 조금씩 갚아나갈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니 지금 당장 시드머니에 큰 욕심을 갖는 건 올바른 판단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위에서 말했듯, 경제활동을 중간중간해나가며 3년의 시간 동안 사찰음식을 배워나가는 일도 해나가면 좋을 듯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 더 고민이 드는 것은,
퍼머컬처를 생업으로 하며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메인 직업을 가져야 할까 라는 고민입니다.
퍼머컬처만으로 소득을 올린다면, 정원 디자이너나 농부 등으로 살아가야겠죠.
그런데 제가 그런 마음의 준비가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뙤약볕 아래서 땅을 파고, 흙을 일구는 일을 온몸을 내던져 해낼 자신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취미에 그치는 것으로 말아야 할지, 아니면 더 많은 일을 해내려고 노력해야 할지를.
그러려면 채식 조리사가 아닌, 정원 디자이너로 살아갈 수 있는 일자리를 찾아나가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소득을 올리는 일로 말이죠.
하지만 저는 채식도 배우고 싶고, 요리도 좋아하면서 잘하고 싶기에, 이 둘을 인생에 모두 담아가며 풍요롭게 살아가고 싶기에 어떻게 요리를 잘하며, 퍼머컬처도 잘할 수 있을지 고민해봅니다.
가난한 사람은 두 옵션 중 하나를 포기하지만, 부자는 두 옵션이 고민될 때 그 둘을 모두 얻을 수 있는 방안을 꾀한다는 어느 책의 글귀도 떠오릅니다.
이 모든 고민들을 덮고,
어디로 가고 싶은 것인지 구체적으로 떠올려야 그 가는 루트를 정할 수 있을 테니까요.
퍼머컬처를 반드시 하고 싶은데, 어떤 식으로 해나가야 할지 늘 고민입니다.
일단 할 수 있는 부분부터 조금씩 해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가 어디에 있든 퍼머컬처 디자이너처럼, 채식 셰프처럼 생각할 수 있어야, 정작 제 자리가 있을 때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 테니 말이죠.
어디서든 책을 읽고, 채식 셰프로서의 마음가짐, 사찰식으로 건강과 자연의 흐름을 모두 따라가며 살아가시는 스님이나 셰프분들의 삶과 일대기를 보면서, 그들의 삶의 방식을 조금씩 따라가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려면 책도 읽고, 영상도 보면서 그들의 모습을 조금씩 알아가야겠지요.
그들의 삶을 닮아가고 싶은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