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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그나이트 Nov 10. 2016

[완결] [소설] 66. 끝이 없는 이야기

Chapter 5. 끝이 없는 이야기 – 현욱 (3)

나는 민영이에게 전화를 했다.


띠리링.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전화를 끊었다.


확실했다. 민영이는 지금 전화를 피하고 있었다. 날 스팸 번호 같은 걸로 등록해 놓은 것 같았다. 카카오톡 메시지도 확인하지 않고 있었다.


민영이가 이렇게까지 날 피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우린 정말 좋은 친구임을 그날 확인했었다.


정말 발가벗고 편하게 속까지 다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이제 나뿐이라고 정말 좋다고, 그동안 친구가 없어서 외로웠했다고. 이제 남들이 부러워할 친구가 생겼다고 민영이가 그랬었다.


그렇게 좋았는데, 왜 바로 다시 연락을 끊어버리려는 것일까?


아! 설마! 내가 다음날 바로 전화 안 했다고 이러는 걸까?


설마...... 내가 학원 오픈한 거 알면서, 전화 안 했다고, 그걸 약속 안 지켰다고 생각하고 단칼에 날 잘라내는 것이라고?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민영이도 이제 서른둘이었다. 원래도 그런 애 같은 짓은 하지 않던 아이였다. 나 역시 보통 남자들처럼 술 먹고 연락 안 하거나 하지 않았기에 한 번도 연락을 하네 마네로 싸운 적은 없었다.


그런 민영이가 다음 날 전화 한 통 안 했다고, 그것도 내 학원 오픈날에, 바쁘고 정신없는 거 알면서, 그거 하나로 이럴 사람은 아니었다.


나는 부엌으로 가서 물을 한 잔 마셨다. 그래 민영이는 생각이 깊고 진중한 여자였다. 단순한 여자들과는 달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 정말 수신 거부를 한 것인지, 정말 무슨 일이 있어서 연락이 안 된 건지 확인도 안 했다. 억측은 하면 안 된다.


나는 화장실도 다녀오고, 샤워도 하고, 물도 먹고, 옷도 입고, 다시 한번 전화기를 했다.


띠리링 “전화를 받을 수 없어......”


나는 전화를 끊었다. 일단 해야 할 일을 하고, 그리고 확실한 것을 알아보기로 했다.


학원에 가니 이선생이 웬일로 일찍 출근해 있었다. 나는 화분의 꽃잎을 닦고, 일을 시작했다.


강의를 시작하고, 책을 쓰고, 몇 통의 학부모 통화 상담을 하고, 수업을 했다. 다음 주, 학생들 무료 수업 및 홍보 세미나 관련 자료를 모았다.


어느새 밤 10시가 되었다. 이 선생은 정각 10시가 되자 벌떡 일어나 인사를 하고 퇴근을 했다.


이선생이 나가자 박샘이 커피를 한잔 들고 내 책상으로 와 앉았다.


“최쌤, 오늘도 연락이 안 되었어요?”


“네?”


“하루 종일 핸드폰 들고 안절부절못하니까요. 아까 지나가다 보니까 계속 전화기 확인하고, 수업 시간에도 핸드

폰 보고 있던데요.”


“그게... 저, 박샘, 수신 차단? 거부? 그런 거 하면 상대방이 알아요?”


“모르겠는데요. 왜요?”


“그게, 박샘 지금 핸드폰으로 나 수신차단인지 거부인지 해봐요. 전화 어떻게 걸리나 보게.”


박샘은 핸드폰을 꺼내 몇 번 터치하더니 전화를 해보라고 했다. 박샘에게 전화를 했다. 한 번 전화가 울리고는 ‘전화를 받을 수 없어... “하는 멘트가 나왔다.


“아... 수신 거부하면 이렇게 되는구나.”


박샘이 신기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했다.


“근데 최샘, 이렇게 화면에는 떠요. 전화가 울리지는 않는데 누가 전화를 했는지는 화면에 뜨네요. 근데 왜 이걸 해보는 거예요? 아...... 혹시 그분이 최샘 수신 차단한 거예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박샘은 나를 보더니, ‘맥주 한잔 할래요?’ 하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박샘이 커피잔을 만지작 거리며 입을 움찔거렸다. 뭔 말을 하고 싶은 것 같은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았다.


“퇴근하세요. 내일 11시까지 교안 회의도 있잖아요.”


박샘은 눈동자를 한 번 굴리더니 쭈뼛거리며 일어나며 ‘그럼, 먼저 갈게요. 그리고 너무 늦게까지 혼자 있지 마

요. 필요하면 전화해요. 나 올빼미인 거 알지요?’ 하고는 나갔다.


나는 가만히 앉아 있었다.


민영이는 다시 예전처럼 온몸으로 날 거부하고 있었다. 유일한 친구니 뭐니 다 필요 없다면서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고 날 밀치고 있는 것이다.


나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밤 11시 24분이었다.


나는 다시 민영이에게 전화를 했다.


띠리링 딸깍 ‘전화를 받을 수 없어......’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학원 문을 닫고, 택시를 타고 민영이의 집으로 갔다.


민영가 사는 커다란 오피스텔 건물 앞에 내렸다.


높은 건물에 빽빽한 창문들, 늦은 시간이라 대부분 불이 꺼져 있었다. 어느 창문이 민영이네 집인 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전화를 했다.


띠리링 딸깍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창문 하나에 작은 불이 켜졌다가 다시 꺼졌다. 저 집이 민영이 집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몇 층인지 알아보려고 한 층씩 아래로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 똑같은 창문에 똑같이 불이 꺼져있다 보니 모눈종이를 보는 것 같아 헷갈려서 제대로 숫자를 세지 못했다. 결국 불이 켜졌다가 꺼진 집이 어딘지도 잃어버렸다.


하도 위를 쳐다보아서 목이 아팠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다 길 건너 편의점 테이블에 앉았다. 거리를 두고 보니, 민영이가 살고 있는 오피스텔 건물이 조금 더 눈에 편하게 들어왔다.


바람이 제법 쌀쌀했다. 나는 팔짱을 끼고, 건물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나는 또 전화를 했다. 띠리링 딸깍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어느 창에도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다시 전화를 했다. 띠리링 딸깍 ‘전화기가 꺼져있어...’ 전화를 끊었다.


기분이 낡은 종잇장처럼 바스락 부서졌다.


바람이 귀를 긁고 갔다. 추웠고, 귀가 아팠다.


편의점에 들어가서 따뜻한 커피를 한 캔 사 들고 다시 테이블에 앉았다.


첫 싸움 후, 민영이가 편의점으로 와서 날 기다렸단 그때, 민영이에게 캔커피를 건네던 그때가 생각났다.


그 날 이후, 나는 민영이가 내가 일하는 편의점에서 기다리게 만들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었고, 그래서 과외를 시작했었다. 그런 나를 위해 민영이도 엄마 몰래 학생을 넘기기도 하면서 날 도와주었었다. 그렇게 시작한 과외로 지금 학원까지 차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헤어졌었다.


그때도 민영이는 지금처럼 헤어짐을 통보한 후, 나의 연락을 받지 않았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처럼 민영이네 집을 맴돌았었다. 처음엔 몇 시간이고, 나중엔 그냥 잠깐 들리고, 그러다 안 가도 괜찮아지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첫사랑이 아픔을 잊었었다.


나는 또다시 여기 이렇게 서서 그때와 같이 민영이를 그리워하고 있다.


나는 팔짱을 끼고 의자 뒤로 기댔다. 허허. 헛웃음이 나왔다.


나는 돌고 돌아도 만날 수밖에 없는 인연이라고 생각해서 설레었는데, 민영이는 만나고 또 만나도 어쩔 수 없이 헤어질 인연이라고, 친구로 있으면 좋겠는데 그게 안 된다면 더 이상은 나란 사람과 조금도 닿고 싶지 않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래, 그게 민영이었다. 아니니까 자르는 것, 흔들릴까 봐 자르는 것, 그것이 민영이었다.


어찌해야 하나, 민영이가 원하는 데로 그렇게 보내주어야 할까. 정말 전화도 하지 않고 다시 지난 몇 년간 그랬던 것처럼 그렇게 외로운 생활로 돌아가야 할까. 앞으로 평생 그렇게 안 아픈 척하면서 살아야 하나.


박샘의 말이 생각났다. 혹시 내가 정말 오랜만에 동창회에서 만나 감상에 젖어 순간 찔러보는 그렇게 가볍고 충동적인 놈인가 싶었다.


아니다. 아니다.


사실 정말 오랫동안 나는 후회하고 있었다. 딴 남자랑 키스하는 거 한 번 봤다고, 그것도 일부로 그러는 거 알면서 그냥 포기하고 뒤돌아서고 그녀를 나쁜 년으로 만든 나 스스로를 오랫동안 원망했었다.


서로의 상처가 아물기를 다시 그녀를 만나기를 단단하게 다시 우리가 사랑할 수 있기를, 나는 계속 기다렸다. 그리고 지금이 진짜 그때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 생각해보면, 조금이라도 닿으면 다시 흔들릴까 걱정할 만큼 민영이는 어쩌면 아직도 날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 우리는 남들은 모르는 우리만의 사랑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머리를 흔들었다. 허허허 웃음이 나왔다.


민영이가 야속했다. 지금 그녀도 날 생각하고 있을 텐데, 내가 진심인 것도 알면서, 그저 헤어졌다 다시 만나는 것 그것이 불안하다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 그냥 싫다고 이러는 민영이가 바보 같았다. 이젠 정말 안 헤어지고 평생 서로 힘이 되어주면서 살 수 있는데, 내가 정말 잘 하고 약속할 수 있는데 왜 왜 안 믿어주는지 말이다.    

내 진심을 알 텐데, 본인도 기본적으로 날 알고 생각하고 있을 거면서.


화가 났다. 속상했다. 혼란스러웠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답이 있는 것일까?


찡~


핸드폰이 진동했다. 혹시나 싶어 나는 또다시 바로 전화기를 확인했다.


[최쌤, 어디예요? 괜찮아요?]


박샘이 보낸 카카오톡이었다.


[괜찮아요.]


나는 허탈한 마음으로 답문을 보냈다.


전화가 왔다. 박샘이었다. 나는 순간 전화기를 꺼버리고 싶었다. 박샘이랑 지금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없었다. 그래도 안 받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여보세요.”


“선생님, 어디예요?”


“그냥...... 밖이에요.”


“술 마셔요?”


“아니요. 그냥 편의점에서 커피 마시고 있어요.”


“그렇구나. 최쌤 이러는 거 첨 봐서. 걱정이 돼서요. 밤이 늦었는데 길에서 그러고 있지 말고 집에 가요. 아님 내가 나갈 테니까 같이 맥주 한 잔 안 할래요?”


“아니에요. 밤늦었는데. 집에 가야지요. 괜찮아요.”


“계속 연락이 안 되어요? 집도 모르고?”


“사실 그 친구 집 근처인데, 집은 몰라요. 알아도 밤 중에 문 두드릴 수도 없고.”


“그건 그렇지요...... 최샘 이러는 거 보니 안타깝네요. 에효...... 그래요. 이왕 하는 거 하는 데까지 해보세요. 그래도 여자들은 진심을 알아줄 테니 까요. 어떻게든 만나서 무릎이라도 꿇고 강하게 후회 없이 대시해봐요.”


“휴...... 그럴까요? 그럼 나 학원 며칠 안 나가고, 수업 안 나가면 커버해 줄 수 있어요?”


“네? 내 가요? 그건......”


“아니에요. 그냥 한 말이에요. 암튼 내일 학원에서 봐요. 나도 이제 들어갈 거예요.”


“...... 네, 내일 봬요. 도울 일 있음 도울게요. 수업도 할 수 있어요. 걱정 마세요.”


“네, 고마워요. 끊을게요. 잘 자요.”


전화를 끊었다.


시간을 보니 12시 40분이었다. 지금 택시비 2만 원을 내고 집에 가면, 1시 30분에는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래야 내일 계획대로 11시 교안 회의를 시작할 수 있었다. 더 늦게 집에 간다면, 내일 교안 회의는 어떻게 될지 자신이 없었다. 자료 조사도 좀 더 해야 했고, 정리도 다시 한번 해야 했다.


허허 웃음이 났다.


잡으려면 어떻게든 다시 만나 싹싹 빌어라.


내가 아는 것은 지금 민영이가 저 새까만 모눈종이 창문 어딘가에 있다는 것뿐이다. 다시 그녀를 잡고, 용서를

구하고, 친구로라도 가느다란 인연을 잡으려면, 나는 매일 밤 혹은 아침마다 건물 입구를 서성이며, 그녀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았다.


영화에서처럼 며칠을 비를 맞고, 눈을 맞으며 집 앞에서 기다린다는 것은 정말 일상을 포기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밤을 새우고, 수업을 하고, 학원을 운영하기란 체력적으로 쉽지 않았다. 월세와 대출이 있었고, 같이 일하는 선생님들이 있었다. 당장 몇 달 뒤에 입시를 치르는 학생들도 있었다. 사실 지금 나는 온몸의 에너지를 강의와 학원 운영에 쏟아부어도 가능할까 말까 한 삶을 살고 있었다.


스물몇 살, 첫 이별을 맞이 했을 때, 그때 학교든 뭐든 포기하고 그때 그렇게 잡았어야 했는데...... 차라리 그때가 포기할 게 더 적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10년이 흘렀지만, 나는 가진 자가 되기는커녕 더 간당간당한 삶을 지탱하고 있을 뿐이니까.


그때는 멍청했고, 지금은 능력이 없구나 싶었다.


바람이 불었다. 으스스 소름이 돋았다. 나는 팔을 쓰다듬으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새 커피가 식어 차가웠다. 나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따뜻한 곳으로 이동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자리에서 일어나면, 이대로 일어난 다면, 그대로 집으로 간다면

그냥 그 자체가 민영이를 놓치는 것이 될 것 같았다.


내가 정말 능력이라도 있다면, 그래서 지금 민영이를 놓더라도 게츠비처럼 돈을 많이 벌어서 다시 그녀 앞에 서리라는 결심이라도 하고 일어날 텐데.


그런데, 사실 나는 그럴 자신도 없었다. 지금 나의 목표는 학생수를 월평균 100명으로 만들어서, 월세 걱정 없이, 직원들 월급 걱정 없이, 주 10타 임의 수업만 하고, 한 달에 500만 원을 가져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 달에 500만 원씩 20년을 벌어, 알뜰하게 모아서, 작은 집 두 채를 구입해서, 월세를 받고, 국민 연금을 받아 밥 걱정 없이 노년을 맞이 하는 것이 나의 목표였다. 그것도 쉽지 않았다.


나는 게츠비가 될 자신이 없었다.


아... 그렇다면 10년 뒤에도 그녀 앞에 게츠비가 될 수 없다면 그녀를 놓아주어야 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한 때, 한 달에 백 만원만 벌어오면 된다고, 그럼 알콩달콩 사랑하며 살 수 있다고 날 붙잡았던 그녀였다. 그런 그녀에게 그렇게 살 수 없다고 내가 말했었다.


내 말을 듣고, 내 말에 상처받고, 내 말에 설득된 그녀는 이제 ‘그래 그렇게는 살 수 없지. 내 수준에 맞는, 나에게 맞춰주는 남자를 만나야지’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그녀를 저렇게 만들었고, 지금의 나를 상처받게 만들었구나. 나는 이제야 민영이의 마음을, 나의 업보를 알 것 같았다.


바람이 불었다. 코가 간지러웠다. 재채기를 했다.


“옛취!”


재채기와 함께 눈물이 나왔다. 나는 코를 닦는 척하며, 눈물도 훔쳤다. 경찰차가 천천히 내 앞을 지나갔다. 조수석의 경찰이 나를 쓱 훑어보았다.


나는 얼굴을 쓸어내렸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경찰차가 멈추고, 경찰이 다가왔다.


“아저씨, 술 취했어요?”


경찰이 말을 걸었다.


“아니요. 커피 마시고 있습니다.”


“근데 왜 울어요?”


나는 얼굴을 훔쳤다.


“우는 거 아니에요. 하품해서 그래요. 그냥 커피 마시고 있습니다. 상관하지 마세요.”


“지금 2시예요. 차라리 술이라도 먹고 취한 거면 모르겠는데, 멀쩡한 남자가 무서운 표정을 하고 앉아 있으니까 더 이상하잖아요. 아저씨 이러고 있지 말고, 그냥 들어가세요.”


“좀 더 있다가 갈게요. 아직 정리가 안돼서 그래요.”


“무슨 정리요?”


“그런 게 있어요. 술 도 안 마셨고, 그냥 바람 쐬고 있는 겁니다. 그럴 자유도 없나요? 신경 쓰지 마시고, 가세요.”


나는 팔짱을 끼고, 의자에 단단히 붙어 앉았다.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싸늘한 커피가 정신이 들게 만들었다.

경찰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는 것 같았다. 한 명이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한 명은 내 옆에 앉더니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담배를 내게 내밀었다.


“아저씨도 한 대 필래요?”


나는 고민했다. 마지막 담배를 끊은 지 몇 년이 지났었다.


나는 담배를 하나 뽑았다.


경찰이 불을 붙여 주었다.


편의점에서 경찰이 나오더니 따뜻한 베지밀을 세 개 들고 나오더니 하나를 내밀었다. 나는 경찰 얼굴을 봤다. 경찰이 ‘받으세요’하며 다시 한번 내밀었다.


나는 유리병 베지밀을 받아 들었다. 뜨거울 정도로 따뜻했다. 나는 베지밀을 목덜미에 대었다.


“아저씨, 사실은 신고가 들어왔어요. 큰 남자가 지나가는 사람들 무섭게 보고 있다고요.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멀쩡한 분 같으니까. 사람들이 왜 신고했는지 이해할 수 있겠지요? 여기 가게들도 다 문 닫고, 길거리에 지나가는 사람들도 없고, 편의점 점원은 어린애고 얼마나 무섭겠어요. 꼭 여기 이렇게 앉아 있어야 해요? 이제 그만 집으로 가세요.”


나는 담배를 피우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저씨, 그러지 말고 집이 어디세요? 택시비 없으면 데려다 드릴게요. 아니면 파출소 따뜻한 데서 재워 드릴 수도 있어요. 우리도 신고받았기 때문에 뭔가 보여줘야 하거든요. 그냥 이렇게 경고만 하고 갔다가 뭔 일 나면 우리 징계받아서 그래요.”


“약속할게요. 아무 일도 안 해요. 그냥...... 휴... 여자 친구가 저기 사는데 헤어지자고 해서 심난해서 그래요.”


“아이고, 아저씨 그럼 더더욱 집에 가야지. 치정사건이 이렇게 시작되는 거라고. 그리고 아저씨 스토커 아니에요? 이런 게 다 스토커라고. 담배 다 폈으면 일어나서 가요. 나이도 있는 사람이 애처럼 이러면 안 되지.”


나는 고개를 저었다. 담배 불을 껐다. 커피를 한 입에 다 마시고 꽁초를 커피캔 안에 넣었다. 그리고 따뜻한 베지밀을 품에 안았다.


“조금만 더 있다가 갈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냥 좀 생각하고 싶어서 그래요.”


경찰은 담배를 꺼서 꽁초를 휙 던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저씨, 그럼 한 바퀴 돌고 올게요. 한 십분 걸릴 거예요. 그때까지 안 가면, 우리가 태워서 집에 데려다주던지 할게요. 어쨌든 우리도 일은 해야 하잖아요. 알았지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경찰이 가고, 나는 고개를 들어 건물을 바라보았다.


하품이 나왔다. 피곤했다. 졸렸다. 이렇게 잘 수는 없었다. 집에 가긴 가야 했다. 시계를 보니 2시는커녕. 새벽 1시 10분이었다.


지금 집에 가야 할까. 그리고 내일부터 새벽에 와서 민영이 출근길에 만날 수 있게 기다릴까?


매일 새벽 6시부터 9시까지는 기다려야 할 텐데. 그럼 갈 때는 전철 탄다고 치고, 올 때 택시비 2만 원에, 매일 5시 30분에 기상해야 한다. 매일 그렇게 돈과 시간과 체력을 투자할 수 있을까.


게다가 그렇게 그녀를 만나서 내가 무슨 말을 할 것인가.


미안하다고, 정말 진짜 그동안 계속 좋아하고 사랑했다고. 잊은 적 없다고. 다 미안하다는 말 뿐이지. 앞으로 어떻게 해주겠다는 약속도 할 자신이 없는 주제에.


자신이 없었다.


이 순간에도 내가 그녀를 잡을 돈과 시간과 체력이 있는지를 계산하는 나 자신이 너무 싫었다. 누가 봐도 나는 안될 놈이지 싶었다. 민영이도 바로 이런 나를 알기에 더 이상은 싫다고 하는지 몰랐다.


그런데, 아무리 계산해도 답은 안 나오는데. 그렇다고 가기는 싫었다. 자신도 없고, 사랑 외에는 약속할 것도 없는데, 집에 가기는 싫었다.


비루해도 쪽팔려도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는 심정으로 일단은 조금이라도 더 버티고 싶었다. 정말 이렇게 일어나서 그냥 집에 가면서 그렇게 포기하고, 끝내고 싶지 않았다.


그냥 그건 싫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 민영이에게 어떻게 내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


차 불빛이 보였다. 내 쪽으로 다가왔다. 경찰차인 것 같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베지밀을 들고 터벅터벅 걸었다. 불빛이 지나갔다. 경찰차가 아니었다.


“씨발.”


더 앉아 있을 걸, 괜히 졸아서 일어났네 하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왔다. 괜히 팔을 휘적이며 걸었다.


몇 걸음 걸어가다, 한 손에 든 베지밀을 다른 손을 바꿔 들었다. 베지밀이 아직 따뜻했다. 나는 베지밀 뚜껑을 따서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민영이가 살고 있는 오피스텔 건물로 걸어갔다.


베지밀을 마시며, 건물을 한 바퀴 돌았다. 엄청나게 큰 건물이었다. 1층 상가만도 10개였다. 이런 건물 1층 상가면, 제일 작은 상가라고 하더라도 월세가 한 달에 300은 넘을 것이다. 건물주나, 상가 주인이나 다 부러웠다.


베지밀을 다 먹었다. 쓰레기통에 베지밀을 버리고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깜깜했다.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몰라서 일단 그냥 직진으로 걸었다.


여자 때문에 고민이 되면, 글을 쓰라고 누가 말했다지만. 지금은 연필도 없으니 일단 걸어야 했다.


천천히, 시간은 충분하다. 일단 좀 생각이라도 해보자.


민영이는 저기에 살고 있다. 나는 매일 여기를 맴돌 수 있다. 아니, 매일은 오기 힘들겠지. 그래도 뭔가 생각이 날 때까지, 아니 생각이 정리될 때까지는 언제든 올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전화를 할 수 있었다. 받지 않더라도 걸어야 했다. 보지 않더라도 이메일을 보내고, 문자 메시지를 보낼 수 있었다.


민영이가 핸드폰 번호를 바꾸고, 이사를 가고, 이메일을 없앨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는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동원해서 내 진심을, 사랑을 알리고 싶었다.


사랑에 미친 반짝이는 젊은이 가 아니라, 늙은이의 뻔뻔함으로 보이겠지만. 주어진 것 안에서 최선을 다해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런데 생각보다 내가 일찍 지치면 어쩌지? 당장 내일도 회의, 수업, 교재 연구, 학부모 상담을 하면 나는 민영이에게 전화를 하거나, 무작정 집 앞을 서성일 힘이 있을지 없을지 나도 모르는데.


나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소리 내어 중얼거렸다.


“병신 같구나.”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인지, 민영이가 나에게 하는 말인지 모르겠다.


나는 뒤를 돌았다.


내일이 뭐! 어쩌라고! 지금 당장 일단 달려가야지 병신 새끼야!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민영이에게로, 나 자신에게로.




- 완결-




감사합니다.

다음에 후기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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