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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34. 원더랜드

chapter 1. 행복 (2)

by 이그나이트

“사랑한다고.”


민영이가 두 볼을 붉게 물들이며 말했다. 현욱이가 환하게 웃으며 민영이의 두 볼을 잡고 키스를 했다.






등 뒤로 인기척이 나면서 등산복을 입은 아줌마 아저씨들이 올라왔다. 현욱과 민영이는 얼른 입술을 떼었다. 현욱은 민영이의 붉은 얼굴을 품에 감추며 바다를 바라보았다.


울긋불긋한 등산복을 입은 중년의 관광객들은 현욱과 민영의 주변에 멈춰서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관광객들은 독사진 단체사진을 차례로 찍으며 깔깔거리며 연신 ‘좋구만’ 하고 박수를 치고 웃었다.


현욱과 민영은 그들의 소리가 귀에 들리지 않는 듯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가 바다를 보았다가 했다.


“이봐요. 우리 사진 좀 찍어주세요.”


아줌마 한 분이 핸드폰을 현욱에게 내밀었다. 현욱이 “네” 하고 말하며 핸드폰을 받았다.


“하나 둘 셋.”


찰칵하고 사진이 찍혔다.


“고마워요. 아이고 근데 신혼부부가 아주 보기 좋네. 좋을 때다. 난 저런 적이 있었는지 기억도 안 나는데.”

넉살 좋은 아줌마가 수다스럽게 말했다.


‘신혼부부’라는 단어에 민영이가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굳이 아니라고 그냥 연인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현욱도 허허 웃으며 네 하고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민영이의 어깨를 다시 안았다. 현욱이가 민영이의 머리카락을 귀에 꽂아주었다.


“이제 내려갈까? 여기 너무 시끄럽지?”


현욱이가 작게 말했다.


“응, 그래요. 여보.”


“응?”


민영이의 장난스러운 여보 호칭에 현욱이가 당황해했다가 금방 맞받아쳤다.


“그럴까? 여보?”


“좋아요. 여보. 훗! 뭐 먹고 싶어요. 여보?”


민영이가 지지 않고 계속 ‘여보’ 소리를 했다.


“난 당신이 먹고 싶은 거면 다 좋아요. 여보.”


현욱이도 지지 않고 말끝마다 여보를 붙였다.


“아따. 젊은 사람들이 여보 소리도 잘하네. 요즘 젊은 애들 오빠, 자기 그러는데 그거보다 듣기 좋구만. 예쁘네 그려.”


사진을 찍어 달라던 아줌마가 둘의 대화에 끼어들며 큰소리로 말했다.


“그러게 신혼부부가 아주 잘 배웠네.”


덩달아 옆에 있던 아저씨도 한 마디 했다. 중년의 관광객들이 다들 쳐다보며 한 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민영이가 부끄러워 현욱의 팔을 잡아당겼다. 둘은 민망한 웃음을 흘리며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자 손 잡아.”


“아냐 오빠. 더운데 손 안 잡아도 돼.”


“그래도 잡아야지.”


현욱이가 민영이의 손을 잡고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오빠는 왜 내 손 잡는 걸 좋아해?”


“가슴을 잡고 다닐 수는 없잖아.”


“뭐야! 정말 밝히기는.”


민영이가 현욱의 어깨를 때렸다. 현욱이가 실실 웃었다.


“아야! 아포~~.

알았어. 솔직히 우리 민영이랑 계속 붙어 있고 싶어서 그래. 환갑 넘어서도 나는 꼭 손을 붙잡고 다닐 거야.

근데 진짜로 가슴을 잡고 다닐 수 있게 의학이 발달하면 좋겠다. 하하하.”


“뭐야. 변태 크크크. 근데 나도 좋다.”


“좋아 말고, ‘사랑해’.”


“그래 사랑해.”


민영이가 말했다. 현욱이가 민영이의 손을 더욱 꽉 잡았다.


산 아래에 주차되어 있던 차에 시동을 걸자마자 민영이가 에어컨을 세게 틀었다.


“어휴 이제 살 것 같다. 덥긴 더웠어. 그치?”


민영이가 말했다.


“그래. 그래도 정말 좋았어. 우리 예쁜이 여행 준비하느라 수고했어요. 자 이제 어디로 갈까?”


“원래 5일장 구경하려고 했어. 거기서 점심도 먹고. 근데 리조트 수영장 가도 돼요. 오빠 하고 싶은 데로 해요.”


“예쁜이가 준비한 대로 시장부터 가자. 구경하고 점심 먹고. 리조트 들러서 사우나하고, 저녁때 항구나 중앙시장 가서 회 먹고 서울 가자. 어차피 서울엔 늦게 가도 되니까.”


“좋아요.”


현욱이가 차에 시동을 걸었다. 민영이가 자연스레 현욱의 다리 사이에 손을 집어넣었다. 현욱이가 미소 지으며 민영이의 볼을 쓰다듬었다.


유명한 5일장이라지만 더운 날씨의 평일이라 사람은 별로 없었다. 게다가 그게 그거인 중국산 물건들만 있을 뿐 색다른 물건은 딱히 없었다. 그래도 민영이와 현욱이는 손을 꼭 잡고 다니며 시장에 처음 옷 아이 마냥 이것저것 물건들을 뒤지고 다녔다.


그중에 5천 원짜리 냉장고 바지를 파는 가판대 앞에 민영이가 멈췄다.


“오빠. 우리 이거 사서 갈아입을까? 너무 덥지 않아?”


“이거? 이건 좀...... 옷 사고 싶으면 좋은 거 사자.”


“에이 어때? 이런 데서는 좀 재미있게 해봐야지. 우리 이거 사서 나란히 입고 다니자. 멀리서도 커플인 줄 알아보게.”


“정말 그러고 싶어?”


“응, 그러고 싶어. 이거 커플로 입자 어때?”


현욱이는 검은색과 흰색 줄이 정신없이 그어져 있는 몸빼 바지 모양의 냉장고 바지를 몸에 대보았다.


“민영아, 이거 집에서는 입겠는데. 굳이 여기서 입고 다니지는 말자. 내가 집에서 많이 입어 줄게. 더워서 바지 사고 싶은 거면 그냥 평범한 반바지 사자.”


“아잉~ 옵빠. 우리 입고 다니자 나 너무 더워서 청바지 못 입겠어. 이거 입고 저기 밀짚모자도 사서 쓰고 다니자. 응? 여보옹~~~.”


민영이가 평소와 다르게 콧소리를 내며 애교를 부렸다.


“휴~ 정말 지금 이걸 여기서 입고 다녀야겠어?”


현욱이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응. 여뽀 사쭈쌔요.”


민영이가 계속 귀여운 척을 하며 애교를 부리자, 현욱이는 모든 것을 포기한 듯이 허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민영이가 좋아라 하며 바지 2장과 밀짚모자 2개를 샀다. 그리고 현욱의 손을 끌고 차로 갔다.


둘은 차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키가 작은 민영이는 생각보다 귀여웠지만 키가 크고 몸이 좋은 현욱에게는 품이 너무 꽉 끼고 길이가 짧아 우스꽝스러웠다. 게다가 운동화에 양말을 신어서 더 웃겼다. 현욱은 차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어이가 없어서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민영이가 웃으며 현욱에게 팔짱을 꼈다.


“재밌지? 헤헤. 이런 게 여행의 즐거움이지 뭐. 자 이제 예복을 골랐으니까. 예물을 골라볼까? 여보?”


“응? 예물?”


현욱이 깜짝 놀랐다. 그런 현욱의 손을 잡고 민영이가 장터 구석의 뽑기 기계로 데려갔다.


“자. 이제 나 반지 사줘요. 여보.”


“뭐야. 반지라면 내가 지난번에 백화점에서......”


“아니야. 오늘 여기서 사자. 우리 처음으로 여행 온 건데 기념되게. 나 이런 거 좋아해. 여기서 반지 사주세요. 아니 뽑아주세요.”


“나 뽑기 디게 못한다고.”


“에이 해줘. 남자들은 다 웬만큼 하잖아. 나 저기 저 반지 가지고 싶어.”


민영이가 뽑기 기계 안의 구석에 있는 반지를 가리켰다. 현욱은 불끈 팔에 힘을 줬다. 힘줄이 팍 튀어나왔다.


“그래 알았어. 우리 민영이가 원한다면 반지 그거 꼭 뽑아야지.”


현욱이는 뽑기 기계에 동전을 집어넣었다. 하지만 뽑기는 쉽지 않았다. 순식간에 7천 원이 날아갔다. 현욱이 이마에 땀이 뚝뚝 떨어졌다. 쉽게 생각했던 민영이가 옆에서 미안해하며 현욱을 바라보았다.


“오빠. 이제 그만하자. 그냥 저기 문방구에 들어가서 하나 사자. 미안해 괜히 내가 졸라서.”


“아냐. 기다려 내가 이거 꼭 뽑아 줄게.”


현욱은 이제 민영이가 보이지 않았다. 꼭 저걸 뽑겠다는 신념으로 기계에 붙어 신중을 기하며 조종하고 있었다. 수능 때보다 더 집중한 것 같았다. 민영이는 울상을 지으며 기계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 결국 만원을 딱 채워 잃고 나서야 현욱이가 고개를 들었다.


“민영아 미안해. 안 되겠다......”


“아냐. 괜히 내가 뭐 좀 장난치겠다고......”


“가자.”


현욱이가 축 쳐진 어깨로 뒤돌아섰다.


“오빠. 원래 저런 기계는 못 꺼내게 하려고 조작한다잖아. 너무 신경 쓰지 마요. 괜히 졸라서 미안해. 우리 밥이나 먹자.”


“밥은 나중에 먹고 일단 우리 차에 가자.”


왠지 화난 것 같은 현욱의 표정에 민영이는 쫄아서 한 마디도 못하고 종종종 현욱의 뒤를 쫓아갔다.


차에 들어간 현욱이 에어컨을 세게 틀었다. 그리고 물을 먹었다. 현욱의 눈치를 살피며 민영이가 말했다.


“오빠 우리 점심은 뭐 먹을까?”


“잠깐.”


현욱이 물병을 닫더니 음악을 틀었다. “you are so beautiful."이 나왔다. 그리고는 대시보드를 열었다. 그 속에 반지 케이스가 들어있었다.


현욱이가 반지 케이스를 열어 민영이에게 내밀었다. 민영이가 깜짝 놀라며 케이스를 열어보니 다이아몬드 반지가 들어있었다.


“오빠. 이건...... 그때 그거? 환불 안 했어?”


“다시 샀어. 언젠가 이런 순간이 올 줄 알았어. 미리 준비해둔 거지. 지금이 그때인 것 같아서 꺼냈어.”


현욱이가 민영이의 눈을 봤다.


“민영아, 사랑해. 사실 제자를 그렇게 보내고 나니까. 사는 거 별거 없더라. 사랑하는 사람이랑 함께 사는 거 그게 사는 이유인 것 같아.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나만 바라보고 믿고 따라와주면 안 될까? 내가 가진 것은 없지만 나 딴짓 안 하고 너만 바라보며, 너의 행복을 목표로 살 자신 있어. 진심으로 널 사랑해.”


민영이가 활짝 웃었다.


“좋아. 고마워. 나도 오빠 사랑해.”


현욱이가 민영이 손에 반지를 끼워주었다. 현욱이가 코를 훌쩍 삼켰다. 민영이가 그런 현욱을 꼭 안았다.


해가 질 무렵, 리조트에서 짐을 가지고 나온 둘은 손잡고 바다가 보이는 횟집에 앉아 회를 시켰다.


“술 마시고 싶으면 마셔. 운전은 내가 할 테니까.” 현욱이 말했다.


“싫어. 오늘 같은 날 술은 무슨 술이야. 반지만 봐도 눈부셔서 취하는 걸.”


민영이가 반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게 좋아?”


“응.”


“그럼 그때 받지 그랬어? 괜히 부담스러워 하기는.”


“아냐, 오늘이 좋아. 여행 오기 전에는 난 내 마음 몰랐어. 여행 와서야 내 마음을 알았는걸. 그땐 정말 받기 싫었어.”


“정말? 여행 오기 전에는 날 사랑하지 않았어?”


“응.”


대수롭지 않게 대답을 던진 민영이는 아차 싶어 현욱의 얼굴을 봤다. 현욱은 살짝 마음이 상한 듯 물을 마시고 있었다.


“삐졌어?”


“아니. 뭐 지금이라도 사랑한다니 됐어.”


“그러지 마. 한번 헤어진 적 있는데 또 실수할 수는 없잖아. 오빠를 가볍게 생각하지 않으니까 조심할 수밖에 없었어. 그리고 당연히 사랑했었지. 단지 인정을 못했던 거지.”


“눼눼.”


현욱이가 단단히 삐진 듯 비꼬면서 대답했다.


“옵빠~ 내가 오빠 사랑해용. 아잉 삐찌지 마용.”


“흥.”


“아잉.”


민영이가 일어나 마주 보고 앉았던 현욱의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는 현욱의 손을 깍지껴서 잡고, 다른 손은 또 자연스레 현욱이 다리 사이로 쑥 집어넣었다.


“뭐해. 내가 그렇게 쉬운 줄 알아?”


현욱이 웃음을 숨기지 못하며 말했다.


“헤헤. 여기 우리 밖에 없잖아. 우리가 부르지 않으면 아래층에서 올라오지도 않을 건데. 내가 오빠의 속마음에 뽀뽀해줄까?”


“됐어. 미쳤어.”


현욱이는 헤벌쭉 웃으며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흐흐흐.”


민영이가 웃으며 계속 현욱의 아래를 쪼물딱거렸다. 그때 계단에서 사람이 올라오는 소리가 났다. 민영이가 얼른 손을 상 위로 올려 괜히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현욱이도 괜히 핸드폰을 들고 흠흠 헛기침을 했다.


“어이, 매운탕 올려주까? 어찌까?”


주인아줌마가 계단을 반쯤 올라오며 물어봤다.


“네 주세요.”


현욱이 말했다. 아줌마가 계단을 내려갔다. 현욱이와 민영이가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히히 웃고 뽀뽀를 했다.


현욱이 민영이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민영이가 현욱에게 머리를 기대고 창밖을 바라보며 자연스레 현욱의 아래를 또 조물거렸다.


해가 지고 있었다.


민영이의 정수리 위로 현욱의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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