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산책길은 해가 뜨기 전, 해가 뜨면서 하늘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이 그저 감사할 뿐이다.
열심히 휴대폰으로 찍어 보지만 해가 떠오르며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비추는 반짝이는 금빛 붉음이란 참으로
눈을 뗄 수 없다.
어찌 저리도 황홀하게 만드는 건지.
동쪽으로 걸어가는 좌광천 산책길은 밤이 스러지고
새벽이 오면서 아침을 맞는 경건한 길이 된다.
눈에 보여주는 하늘의 온갖 아름다움은 뭉크의 <절규>
배경이 되었다가 천국으로 가는 길이 저런 게 아닐까라는
착각을 일으키게도 한다.
날마다 일어나서 걸어가는 길이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풍경을 드러내는 건 어제와 오늘이 같은 하루지만
조금은 다르다는 걸 알게 한다.
글을 쓰다 보면 습관적으로 편한 한자어를 사용하려는
경향이 있다.
경향, 습관, 사용 다 한자어니 학교 다닐 때 익혀 몸에
익어 별로 느끼지 못하다가 될 수 있으면 우리말로 풀어서
쓸 수 있으면 쓰려고 한다.
인지, 자각 다 대체(바꿈) 할 수 있는 말들이 있다는 걸
깨닫기에는 글의 곳곳에 뿌리내린 교육의 오랜 시간이다.
그나마 일상에서 쓰는 한자어가 우리글이 된 지 오래이고
모두 알 수 있고 생경하거나 현학적이지 않으면 그나마
괜찮다.
굳이, 까지라고 생각하게 하는 한자어는 시에서는
안 쓰려고 최대한 노력 중이다.
노력의 하나인 '의'와 더불어.
쉽고 쉽게 쓰려고 노력 중이다.
해가 뜨는 길을 걷다 보면 보여주는 커다란 의지에 감사하고 내가 갖고 있는 장식들을 벗게 하게 하는
자연스러운 선물임을 부인할 수 없다.
2025.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