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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비주 Dec 08. 2022

나의 애송시

이 흔복의 땅끝에 서면 몬드리안의 바다가 보인다

이 시는 2011년 나를 시낭송가로 등단하게 한 시이다

모든 시들이 시들해질 때 제목에서 오는 강렬함이 나를 사로 잡았다.


땅끝에 서면 몬드리안의 바다가 보인다는 시인의 눈(생각)은 어디에 있었을까

가을의 끝에 서면 땅 위의 낙엽들과 빈 들판은 황량한 모습을 드러낸다.

이때가 되면 누구나 위로가 필요하다.

모든 것이 새롭게 피어나는 봄, 지글거리는 태양 아래 노출된 적나라한 여름이 아닌 가을이 지나가는 길목에선.

그것이 꼭 사람이 아니어도 된다면, 그때의 좋은 시로서

이 시는 참 그럴싸하다.


잠 속의 꿈속의 사랑은 늘 통속적이지만 그 사랑의 끝을 갈구하는 인간에게 땅끝 북위 34도 17분 38초, 은빛 남해 바다는 강렬한 색과 선으로 단순해진 몬드리안의 바다를 연상케 한다.

인간은 가장 심오할 때 가장 단순해진다.

그저 본능적으로 강렬한 에너지와 마주 서고 싶을 때가 있다.

시인은 그 강렬한 에너지를 서해의 한끝에 출렁이는 바다에서 만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도 가끔 그런 시간에 서게 될 때가 있다.

시인도 나도 몬드리안의 바다를 확인하고 싶은 시간에 함께였을까


시공을 떠나 사람의 감정이 맞닿을 때가 있다.

어디서도 위로받지 못할 때 한 편의 시나 가을의 물오른 시간은 고요함의 끝에 찾아온다.

어쩌면 쓸쓸함의 뒤끝에 잊혀져가는 사랑이란, 인간의 뜨거운 감정을 부정하면서까지 사랑을 믿는 이율배반적인 시인의 마음을 오래도록 눈 마주치며 확인하고 싶은 또 다른 나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아, 지금도 진도, 완도, 노화도의 일몰에서 서풍과 마주해서

한 잔의 술을 마시며 사랑을 노래하는 상상의 시간에 함께

가본다


이  가을 이 한 편의 시 세계는 얼마나 좋은가.

난 아직도 이 시를 꺼낼 때마다 가슴이 설렌다.

고요하고 쓸쓸한 시간에 혼자임을 자각할 때 상당히 위로가 되는 시다.

이렇듯 가끔 꺼내서 보는 나의 시를 꺼낸다.

이 가을 내 곁에 가까이 와 있는 시다.


2022. 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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