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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비주 May 05. 2023

비 오는 날

비가 내린다.

하늘이 너무도 우울해 보여서 누워서 쳐다보는 내게

긴 슬픔을 내민다. 비가 지나간 세계는 고요가 잠시 머문다.

아파트에서 바라볼 수 있는 자연이 가끔은 아득해 보여서

비 떨어지고 바람 내리며 수목이 우거진 마당, 꽃들의 얼굴이 씻겨 웃고 있는 앞뜰에 앉아 손에 흙을 묻혀가며 꽃의 여린 잎을 건드리고 싶다. 이른 아침이면 부산한 설렘으로, 굳이 말이 없어도 서로를 쳐다보며 함께할 오늘을 나누고, 약간은 설레는 노동 끝에 생명의 기쁨을 서로 나누며 마음껏 흐드러질 계절의 꽃들이 머물 다 갈 뜰의 넉넉함을 느끼고 싶다.


언제부터인지, 뜰은 아파트의 공용 공간이다.

늘 보아도 좋지만, 어느 날 세계가 자본의 도피처로 보여

머쓱해지기도 한다. 아파트 안에 들이는 화분들 사이에

작은 인사를 나누며 아침을 열다, 오래전 보았던 '아웃오브 아프리카'의 펼쳐진 자연이 무섭게 그리워진다


사람이 그리워지는 날보다 뜰이 그리워지는 날이 많다.

차를 훌쩍 마시며 밖을 내다보는 것이 아니라 밖에 앉아 차를 느리게 마시고 싶다.

이 오랜 열망이 가끔 가슴을 뚫고 나와 아득해지기도 한다.

쓸쓸한, 더욱 쓸쓸해서 무언가 하지 않으면 안 될 감각들이

비집어 나와 손으로 만져지는 사물들의 질감이 살고 있다는 걸 깨닫게 해주기도 하는 그런 날이 그립다.


2020. 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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