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기 앞에 끓어 앉아

by 김비주




그저 나 하나만 버리면 될 것을

인연에 묶이지 않는다면


가정을 가진 후

아이들이 늘 식물처럼 자라고

반려묘를 키운 후

고양이들이 늘 귓속에서 자란다


헤집은 통속의 질척한 때를 벗겨내면서

진흙처럼 깊어만 가는 묵은 먼지들을

박박 민다


새날처럼 깨끗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깨끗한 날이 될 거라고,

진실로

사는 건 참 먼지 같은 일이다



2019.9.30


일기처럼 쓰던 시들도 가끔 빼먹은 일기가 되어가고

읽지 않으면 불안했던 책 읽기도 읽지 않아도 괜찮고

고립되어 가는 시간도 참 괜찮고

그러나 가끔 마음이 아직도 남아서

Sns에서 안 인연들 중 보고 싶은 이들이 있다

먼지를 밀지 않고 펄펄 날리고 싶어서이다


부레옥잠이 꽃대를 올리더니 꽃을 피웠어요.


2024.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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