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연민
- 자기 자신을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
어쩌면 나는 나의 에너지의 대부분을 내가 불쌍하게 생각하는 것에 사용하는 것 같다. 뭐가 그리도 불쌍할까?
남에게는 날카로운 잣대를 들이밀며 사실관계에 대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며, 나에게는 한없이 관대한 기준으로 나 자신을 불쌍히 여기고 슬퍼한다.
왜? 언제부터일까?
초등학교 3학년때의 일이었다. 친구와 같이 축구를 하고 있었는데, 친구네 어머님이 갑자기 찾아와 친구의 손을 잡아끌며 말씀하셨다.
'부모님 맞벌이하는 애랑 놀지 말라그랬지!'
친구의 손을 잡아끌며 날 원망하듯 째려보시는 어머님의 눈빛, 미안한 눈치로 어머님에게 끌려가는 친구의 눈빛. 그때가 시작이었던 것 같다.
'뭐지?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그땐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거짓말처럼 2년 뒤 부모님은 이러저러한 이유로 빚을 떠안게 되었고, 가세가 급격하게 기울었다. 아버지는 직장인이셨음에도 퇴근 후 중국집 배달, 과외 등의 일을 시작하셨고, 어머님도 부동산에서 근무 후 정수기를 교체하려 다니셨다.
그러나 초등학생이었던 나에게는 그다지 큰 변화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좋은 일이었다. 다니기 싫었던 학원들은 모두 끊었고, 부모님이 날마다 늦게 오셨기에 나에게는 하루하루가 자유시간의 연속이었다. 친구들과 축구를 하다가 친구들이 학원에 가면, 나는 집에서 온종일 게임을 하고 친구들이 부르면 다시 나가서 노는, 그런 일상의 연속이었다. 즐거운 나날이었다.
하지만 그런 즐거움은 오래가지 못했다. 밤늦게 집에 돌아오신 부모님은 서로 그렇게 자주 싸우셨다. 그럴 때면 방에서 동생과 나는 항상 숨죽여 자는 척을 했다. 어린아이들에게 부모님은 신과 같은 존재이기에, 그들의 불화는 세상의 근간이 흔들리는 것 같은, 전쟁이 발발한 것과 같은 스트레스였다. 그런 나날들이 지속되었다.
그래도 결국 시간은 흘러 고등학교 2학년쯤, 부모님은 집의 거의 모든 빚을 갚았고 나도 다시 학원에 가기 시작했다. 공부를 그래도 하기 시작했으며, 나 또한 심정적으로 좀 더 안정되었던 것 같다. 재수 끝에 마침내 대학입시에 성공한 이후 어렸을 때부터 익히 들어왔던 찬란한 대학생활이 시작될 것만 같았다.
그러나 대학에 입학한 지 2달이 채 안 됐을 때, 부모님은 결국 이혼하셨다. 어찌 보면 나를 위해 참고 계셨던 것 같기도 하다. 부모님이 이혼하실 때 나는 감정적으로는 크게 흔들렸지만 객관적인 상황은 다를 것이 없었다. 나는 기숙사에 살고 있었고, 첫 연애를 시작했고, 각종 알바들로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당시에 나조차도 의식하지 못할 정도의 감정기복이 심각하게 일어났다. 그 기저에는 이런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기는 거지?'
이후에도 그런 일들의 연속이었다. 취준생시절 5년 간 만났던 여자친구는 내 과선배이자 나와 동갑인 직장인친구에게 2주가 채 안되어 환승했다. 바람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뭐가 중요하겠는가.
나의 중학교 2학년때부터 친구이자, 패스워드 찾기 힌트로 가장 친한 친구라며 등록했놨던 내 친구는. 그 틈을 타 나를 사이비 종교에 포교하려 했다.
사연은 즉슨, 그 친구가 삶에 치여 힘들어하던 도중 23살쯤 사이비 종교에 입교했던 것이다. 나는 그 친구와 중학교 2학년때부터 매주 1시간 이상씩 연락하고 지냈음에도 그 사실을 몰랐다. 취준생 신분에 환승이별까지 당한 내가 힘들어하자, 그의 종교 본교에 보고한 후 나를 포교하려 한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완전히 넉다운되었다. 당시 어쩌다 들어간 인턴직의 기간을 겨우겨우 채우고 한 학기를 통으로 휴학한 후 어머니집에 들어갔다. 강아지와 함께 어머니 퇴근을 기다리며 잠들었다가, 어머니가 오면 밥을 먹고, 어머니가 출근하실 때쯤 잠을 잤다. 주에 2번 나가던 알바 이외에는 어떤 일도 하지 않는 그런 일상의 반복이었다.
무엇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이불이 엄청 무겁게 느껴졌고, 나를 짓누르는 느낌이었다. 어머니는 오랜만에 집에 들어온 27살 자식에게 밥 먹으라는 말씀 이외에는 그 어떤 잔소리도 하지 않으셨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이쯤 되니 '초등학교 때 나를 째려보며 말씀하셨던 친구 어머님의 말씀이 맞는 것이었나?'라는 생각이었다. 그 친구와 친구 누나는 어엿한 직장을 가지고, 이른 나이에 결혼도 하고 잘 살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 집과 나는 뿔뿔이 흩어져 각자 살아남기 위해 하루하루를 견딜 뿐이었다. 민법상 혈족은 출생에 의해, 인척은 결혼에 의해, 가족은 공동생활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다. 우리 집은 결국 혈족의 관계만이 존재하고, 모두 흩어져서 독립가구가 되었으므로 가족의 관계는 더 이상 남지 않게 된 것이다.
그렇게 나는 자기연민의 늪에 빠졌다. 그 늪은 어두웠지만 따뜻했고, 혼자였지만 아늑했다. 늪은 점도가 높고 질퍽여서 빠져나오려 하면 할수록 더 깊이 빠지게 되었다. 하려던 일이 잘 되지 않을 때문에다, 시험에 떨어질 때마다, 인간관계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나를 통제하지 못할 때마다, 제시간에 일어나지 못할 때마다 그 늪을 찾았다.
세상의 그 어떤 차가운 평가들에도 버텨낼 수 있는 나만의 도피처였다. 자기 연민의 늪에 있을 때면, 타인의 차가운 시선, 말, 평가들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그야말로 필살기, 무적기였다.
'난 불쌍한 사람이니까, 이래도 돼'
아무리 남에게 상처주고, 지각을 하고, 무기력하고, 나약하고, 게을러도, 아무렴 어떤가. 난 불쌍한 사람인데. 그래도 되는데.
그 늪은 너무나도 깊고 질퍽여서 빠져나오기 힘들었다. 나오려 하면 할수록 나를 붙잡았다. 조금이라도 어렵고, 무섭고, 복잡한 상황을 마주하면 어김없이 자기연민의 늪을 찾았다.
자기연민을 흔히들 늪에 비유하는 이유는 출구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연민은 객관적인 나를 돌아볼 수 없게 하여 건전한 피드백을 막는다. 자의든, 타의든 일이 잘 진행되지 않을 때 그 이유를 과거의 나의 불행에서 찾는다. 그러면 현재의 장애물을 치우지 못하게 되고, 일이 진행되지 않아 이내 포기한다. 그렇게 자기연민의 늪은 한층 깊어지고 나는 또 가라앉는 것이다.
자기 연민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1. 우선 쉬기
자기연민의 늪에서 빠져나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는 물리적으로 갯벌과 같은 늪에서 빠져나오는 과정과 완전히 비슷하다. 갯벌과 같은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최대한 드러누워 표면적을 넓히고 압력을 분산하여 빠져나와야 한다. 이와 비슷하게 자기연민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우선, 모든 정신적 활동을 멈추고 쉬어야 한다.
어떠한 생각도 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 고강도의 운동을 한다거나, 자극적인 콘텐츠를 본다거나, 게임을 한다거나 상관없다. 그 어떠한 생각도 들지 않도록 쉬어야 한다. 대부분 이 과정을 잘 이행하지 못한다. 항상 누군가로부터 쫓기는 우리들은 익히 들어왔던 생산적인 활동 하나라도 하려 한다. 그렇게 팔과 다리를 허우적거리며 또 깊은 늪에 빠진다. 그 어떤 활동 하나 하지 않아도 되니 편히 쉬어야 한다.
그럼 언제까지 쉬어야 되느냐? 더 이상은 못 쉴 것 같을 때까지 쉬어야 한다. 단순히 '무엇인가 해야 되지 않나?'라는 생각이 아니다.
처음 쉬게 되면 미뤄왔던 영화, 드라마, 웹툰 등의 콘텐츠와 가보고 싶었던 식당, 여행지 등이 떠오를 것이다. 그것들을 모두 실행에 옮기고 만남을 미뤄왔던 친구들도 모두 만나라. 반대로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 한 달 넘게 집에서 안 나가도 된다. 그러다보면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이 올 것이다.
'더 이상 할 게 없네. 오늘은 뭐 하지?'
그럼 늪에서 빠져나올 준비가 된 것이다. 신체가 늪의 표면쯤으로 떠오른 것이다. 지금부터는 글을 써야 한다. 며칠, 몇 달이 걸려도 상관없다. 나 자신을 똑바로 마주 서서 돌아보고 하기 2가지 사항에 대해 서술해야 한다.
2. '나'의 범위를 좁히기
카이스트 정재승 박사님에 따르면 "나를 생각하는 뇌가 있고 타인을 인지하는 영역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가까운 관계일수록 나와 가깝게 저장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나를 인지하는 곳에서 엄마도 인지한다"라며 "나와 엄마를 동일시하는 것이다"라 덧붙였다.
"그렇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통제하고 싶어 한다. 나와 엄마를 다른 존재가 아닌 한 몸이라고 생각해서 통제되지 않으면 불같이 화를 내는 것이다"라고 가까운 존재에게 화를 내는 이유를 설명했다.
'나'의 가족, 배우자, 친구, 주변인, 타인에 이르기까지 '나'인데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불행한 것이다. 이때의 '나'의 범위를 좁혀야 한다. 그들은 나와 가깝지만 어디까지나 타인이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인 것이다. 사람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해 통제하려 하면 할수록 무기력감을 느낀다. 따라서 그들을 통제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통제할 수 있는 '나'에 집중해야 한다.
나아가, 나 안에서도 통제할 수 있는 '나'로 세분화해야 한다. 회사에서의 나는 통제할 수 있는 '나'인가? 회사에서의 나는 회사와 근로계약에 따라 종속된 노동자로 있을 뿐이다. 법적으로 부당한 행위만 아니라면, 주식회사의 물적 재산증식을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노동자의 의무이다. 따라서 그 행위를 하는 나는 통제할 수 없는 '나'이다.
내 업무범위가 아니라고 해서, 가이드라인이 명확하지 않아서, 체계적이지 않아서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다. 최전방 공격수 손흥민이 수비가담을 하러 내려왔다고 생각해라. 배우가 작품홍보를 위해 예능에 출연했다고 생각해라. 한 편의 연극 속에 주어진 역할을 연기하고 있다고 생각해라. 그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나'가 아니다.
또한, 퇴근 후와 주말의 나도 통제할 수 있는 '나'가 아닐 수 있다. 주어진 시간에 생산적인 무엇을 못했다고 해서 자책할 필요도 없다. 배터리가 5퍼센트 남은 스마트폰으로 어떻게 2시간짜리 영화 한 편을 다 볼 수 있겠는가. 통제할 수 있는 '나'에만 집중해야 한다.
3.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보기
내가 자기연민에 빠지게 된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결국 '이러면 안 되지 않나?'라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러면 안 되지 않나?' 앞에는 다음 두 가지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 (나한테 나쁜 일이 생기면 안 되는데), 이러면 안 되지 않나?
- (내가 생각하는 도덕관념과 맞지 않는데), 이러면 안 되지 않나?
이러한 생각은 나와 주변, 그리고 타인들의 사건을 보고 생각이 깨졌다. 오히려 나한테 나쁜 일이 생기지 않을 이유가 없었고, 사건이 발생하는 데에는 내가 생각하는 도덕관념 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25살 때, 친구아버지는 우리와 동갑이던 여자와 바람이 났다.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였기에 나도 그 아버지를 알고 있었고, 적잖이 충격받았다. 친구 아버님은 소득이 있었음에도 대부분의 생활비를 그 여자에게 갖다 주었고 당시 친구와 남은 친구의 가족들은 핸드폰마저 끊겼었다. 친구는 그 여자를 찾아가 아버님의 돈을 요구했고, 각종 송사에 휘말리기도 했다.
이외에도, 주변엔
- 아버지에게 투자금이 모자라다며 아버지와 아버지 거래처로부터 돈을 빌려간 아버지 중학교 친구. 지금은 파산신청하면 그만이라며 독촉을 그만하라고 오히려 협박한다. 부인에게 재산을 돌려놓고 법적으로 이혼하여 재산관계를 분리했다. 얼마 전 그의 따님은 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 중학교시절 친구 부모님 중 한 분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시자, 남은 부모님 마저 스스로 운명을 달리하시고 친구가 전학을 가게 된 일.
- 1년 내내 모았던 급여를 보이스피싱으로 날리게 된 친구.
- 반대로, 그 어떤 구김살 없이 바르게 커 올곧기만 한 친구들..
더 넓게 보면
- 모든 범죄의 재범률이 25프로, 강력범죄 재범률이 40프로를 넘는다는 점.
- 세월호사고, 무안 비행기사고, 이태원참사 등의 중대재해사건들
- 범죄수익 환수율이 5프로에 불과하다는 점
- 주변국가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지속되고 있고, 북한마저 1만 명이 넘는 군인을 파병했다는 점.
이렇게 보니 나에게 나쁜 일이 생기면 안 된다거나, 내 도덕관념에 맞지 않은 일들이 생기면 안 되는 이유 따윈 없었다. 세상의 거의 모든 사건은 무작위 사건이고, 그곳에 이유를 붙여봤자 접착력이 떨어진 포스트잇을 붙인 것처럼 금방 떨어질 뿐이다.
누군가에게 정신적, 물리적, 경제적, 성적으로 상처 주는 행위, 예의에 어긋나는 행위 등 그 어떠한 행위들이 어느 곳에서든 일어난다. 뉴스의 어떤 이들에게도, 주변에서도, 나에게도, 어느 곳에서나 어느 때나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나한테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될 이유 따위는 없다. 내가 못나서라거나, 그 사람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길을 가다 새똥을 맞는 일과 같다.
2022년 기준 약 140만 건의 범죄가 발생했으며, 살인, 방화 등의 강력범죄는 2만 건이 발생했다. 교통사고는 2023년 기준 19만 건, 이로 인한 사망자는 2,500명이 발생했다. 내 주변, 그리고 나에게 발생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아무리 그런 일이 생겨서는 안된다고 외쳐 봐야 무엇하겠는가. 사실과 의견을 구분해야 한다. 사건은 매일 발생할 뿐이다. 당장 내일 전쟁이 일어나거나 대지진이 발생해도, 20년 후에는 역사적 사실로만 기록될 것이다. 주변 국가의 사람들은 그럴 줄 알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2024년 6월 기준, 맞벌이 가구 비율은 48프로에 달한다. 우리 부모님이 맞벌이 부부였던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우리나라의 전체 결혼 대비 이혼율은 5퍼센트 가까이 된다. 우리 부모님이 이혼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이단 한국 교회 정통교단에서 이단으로 규정한 집단에 소속된 인구는 총 60만 명 정도이다. 내 주변에 없을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면 나는 불쌍하지 않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다거나 누군가 꾸며낸 일 또한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가 분리된다. 시험준비를 위한 돈을 모아 수험생활을 하는 서른 살의 현재의 '나'만이 남는다. 삶에 충실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나'만이 남게 되는 것이다.
- 지난주에 운동을 가지 않은 것은 초등학교 때 친구 어머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었기 때문이 아니다. 유튜브 숏츠의 빠른 자극과 침대의 편안함이 더 좋았기 때문이다.
- 작년 2학기때 성적이 1학기때 성적에 비해 떨어진 것은 부모님이 이혼하셨기 때문이 아니다. 1학기때에 비해 공부량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 이번 주 회사법 수업의 복습을 하지 않은 것 또한, 그때 내 친구가 사이비 종교에 나를 포교하려 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날 7시간의 수업을 들었고, 내 아이폰 배터리와 같이 최대 성능이 겨우 70%밖에 되지 않는 나의 저질체력이, 거의 방전 직전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천천히 빠져나오는 것이다. 낮은 포복, 높은 포복, 응용 포복 그 어떤 자세라도 상관없다. 천천히 나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고 본인을 돌아봐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자기 연민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하지만 자기 연민의 늪은 한번 빠져나왔다고 해서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다. 어렵고 복잡한 상황이 생길 때마다 자기 연민의 늪은 이따금씩 고개를 든다. 나를 똑바로 마주하고 나의 행동을 돌아보며 피드백하는 것보다는, 그 늪이 편하고 따뜻하니까 계속 생각나는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자기 연민의 늪에 빠지려 할 수 있다. 하지만 늪에 빠졌던 경험을 떠올리고 이내 정신을 차려 발을 빼야 한다. 요즘은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족욕' 정도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빠질 것 같으면 아무 생각 말고 쉬어버린다. 빠져나올 에너지를 비축해야 하니까. 이제는 그 늪에서 벗어날 방법을 알고 있으니까.
https://youtube.com/shorts/w9o0nODiukA?si=drqOO_6rPQOoxay6
과거의 일들은 사건과 감정으로 분리되고, 사건만이 남아 감정은 흐려진다.
그때의 일들은 나만의 이야기가 되고, 나는 그 이야기를 소중히 간직한다. 언젠가 타인의 이야기가 궁금할 때, 나의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누군가가 나타났을 때, 나의 이야기를 공유해야 하니까. '그때 그런 일이 있었고, 어떤 감정을 느꼈었다. 근데 지금은 괜찮다'라고 말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