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별들(1)

by 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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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별들"

광주학생독립운동 30주년을 맞아 1959년에 개봉한 한국 영화다.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일어난 과정을 담고 있다. 영화 개봉일도 학생운동이 발발한 11월 3일이었다. 오래전부터 광주학생독립운동 관련 뉴스에는 대부분 이 영화를 자료 화면으로 활용해 왔다. 영화는 광주 출신 이재명이 대표로 있는 아세아영화사가 제작했다. 감독은 유명 시나리오 작가 출신 김강윤으로 그의 감독 데뷔작이기도 하다. 시나리오는 당시 첫손가락으로 꼽히던 작가 최금동이, 영화 음악은 '가고파'의 작곡가 김동진이 맡았다. 출연 배우로는 1950년대 후반 영화계를 대표하며 유명세를 구가하던 조미령, 황해남, 최남현, 장민호, 전옥, 김신재, 이빈화, 전계현 등이 포진했다. '이름 없는 별들' 은 당대 최고의 영화 스텝과 인기 배우들이 대거 참여한 작품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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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촬영은 1929년 학생운동의 현장이었던 광주와 나주에서 시민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협조 속에 현지 로케이션으로 진행됐다. 영화에는 광주일고, 충장로, 금남로 등이 등장한다. 만세 장면을 재현한 거리 시위 장면에는 실제 학생운동에 참여했던 학교를 중심으로 약 4만 명의 중·고교 학생들이 아무런 대가 없이 엑스트라로 출연했다. 또한 극중 실내 세트촬영은 당시 동양 최대 규모를 자랑했던 경기도 소재 안양영화촬영소에서 이뤄졌다. 음악 작업에는 당시 탄탄한 실력을 자랑하던 서울시립교향악단과 서울합창단이 각각 연주와 합창으로 합류했다. 이처럼 영화제작에 대규모 지원이 함께한 것은 어느 정도 제작 과정에 국가적인 관심과 지원이 반영된 결과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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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상자료원에서 운영하는 영화 전문 웹사이트 KMDb에 따르면 영화 '이름 없는 별들'의 러닝타임은 총 105분이며 영화 줄거리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일제의 식민지 정책에 반기를 들고 봉기한 광주학생사건을 중심으로 엮은 항일학생운동사.

독립지사의 아들 상훈(황해남)은 뜻맞는 교우와 더불어 항일독립운동체인 이들의 정신적인 지주는

한문 선생 송운인(최남현)이다. 어느 날 이 성진회에 오빠가 고등계 형사인 영애(조미령)도 가담한다.

그 뒤 여러 가지 사건이 일어난 뒤 거사하기로 결정한 날 밤, 형사에게 발각되어 영애가 오해를 받으나

죽음을 무릅쓴 영애의 행동으로 동지들은 피하게 되고 다음날 아침 광주의 학생들은 모두 봉기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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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이 한 편을 광주학생독립운동에 쓰러진 이름 없는 별들 앞에 바치나이다’라는 자막이 첫 화면을 장식하며 헌사(獻詞) 하듯 펼쳐지는 이 영화는 학생학생독립운동 30주년 기념 작품임을 내세웠다. 시사회에는 당시 생존해 있던 실제 학생운동 주역들이 다수 참석했다. 행사 종료 후에는 동석한 영화배우 및 제작 관계자들과 함께 굳은 맹세처럼 커다란 종이 위에 기념 서명 문서를 남기기도 했다. 현재 이 문서는 광주 서구 학생독립로에 위치한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에서 만나 볼 수 있다. 1959년 11월 3일, 마침내 영화 '이름 없는 별들' 은 수많은 영화 애호가의 관심 속에 전국에서 동시 개봉했다. 서울은 국도극장, 광주는 광주극장과 동방극장(옛 무등극장)에서 각각 첫 관람객을 맞았다. 영화는 생생한 광주학생독립운동 재현으로 전국에서 인기리에 상영되었다. 특히 대한극장에서 상영할 때 일본 경찰이 한국 학생을 무자비하게 구타하는 장면이 이어지자 관객이 무대로 뛰어올라 스크린을 면도날로 찢어버리는 일화도 있었다. 해방은 맞았지만 과거 일제 탄압에 대한 앙금이 상당 부분 남아 있었고 학생운동의 현장에 와 있는 듯한 높은 영화적 완성도가 불러온 해프닝이라 짐작된다.


당시 각종 언론 보도에는 이 영화를 “민족정신을 아로새긴 가작”,“한국 영화 사상 최대·초유의 제작비로 성실하게 사실(史實)을 재현한 ‘대웅편’(大雄篇: 뛰어난 작품)”이라 소개했다. 영화 '이름 없는 별들'은 문교부(현 교육부)가 주최하는 1960년 제2회 우수국산영화상(대종상 전신)에서 작품상, 남우조연상(최남현), 음악상(김동진)을 석권했다. 또한 문교부 추천 영화로 선정되면서 많은 학생들이 단체 관람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흥행과 비평 모든 부분에서 나름 성공을 거둔 작품이었다. 2006년에는 한국영상자료원 주관 한국 영화 100선에 이름을 올렸다. 광주학생독립운동 91주년을 맞는 2020년에는 (사)광주영화영상인연대 주관 ‘광주영화사 발굴 기획전’의 첫 번째 영화로 선정돼 광주독립영화관(GIFT)에서 광주 시민 대상으로 무료 상영이 이뤄지기도 했다. 현재는 한국영상자료원 유튜브 채널(한국고전영화)에 풀 영상이 탑재돼 집에서도 누구나 손쉽게 이 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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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1950년대 낙후된 영화 인프라와 전문 제작 인력 부족 등을 고려할 때 비교적 안정적인 시나리오, 촬영, 편집 등을 통해 나름의 기술적 완성도를 보여준다. 눈에 튀는 장면이나 구성이 매끄럽지 않은 곳은 크게 발견되지 않는다. 시나리오를 담당한 최금동은 이 작품 집필을 위해 5년 동안 자료를 수집했고, 8회에 걸친 수정 작업을 거쳤다. 또한 시나리오 작가 출신 김강윤 감독은 짜임새 있게 이를 스크린에 구현하는데 성공했다. 그럼에도 실제 역사적 사건을 극화한 시대극 특유의 한계가 가진 예상 가능한 스토리 전개는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였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주인공 상훈이 생일을 맞아 박용철 시인의 '떠나가는 배'를 낭독하는 장면, 북간도로 떠나는 농민이 기차역에서 구슬프게 민요를 부르는 장면, 편파판정으로 얼룩진 고교 야구 한일전 장면 등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영화 구성에 입체감을 더해 주었다. 이는 곧 민족의 저항 의지가 드러나는 장면을 섬세하고 깊이 있게 연출해 민족문화와 정신을 강조하며 사실 전개의 진부함을 크게 덜어내었다. 비록 이 영화가 표현하는 응집된 학생들의 항일운동 역사가 독립운동가 출신 이승만 대통령의 권위와 위상을 드높여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정부 권력을 정당화했다거나 영구집권을 목적으로 집단적 반공 이데올로기를 강조하는 우회적 수단으로 활용된 부분은 아쉬운 지점이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엄청난 수의 학생들이 교문에 걸린 일장기를 걷어 내고 밀물처럼 거리로 쏟아져 나와 만세 시위를 벌이는 장면이다. 영화 제목 ‘이름 없는 별들’은 하이라이트에서도 등장하듯 1929년 학생운동에 참여한 헤아리기 어려운 무명의 학생들을 상징한다. 100여 년 전 뜨겁게 발발해 30년 뒤 국가적인 지원과 지역민의 열열한 지지 속 대형 영화로 만들어진 '광주학생독립운동'. 대다수 무명이던 학생들이 일궈낸 3.1 운동 이후 최대 규모이자 신분과 계층을 뛰어넘어 전국적 연대가 이뤄진 대표적 항일 민족운동이었다. 이 사건이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정확히 어느 정도일까? 우리가 평소 생각하는 지점보다 훨씬 위대하고 빛나는 정점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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