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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민정 Feb 11. 2022

어딘가에서 나를 밝혀주는 등불이 있음을 잊지 말기를..

[마음치유 프로젝트 힐링 칼럼 15]


  음력 1월 1일 설날을 맞이했다. 새로운 해를 맞이하며 첫 날을 기리는 명절 덕분에 평소에는 자주 연락하지 못했던 이들과도 오랜만에 안부를 주고받는다. 제 삶을 살아가기에 여념이 없어서 소중한 인연들을 살뜰히 챙기지 못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스스로 위안 삼다가 이 맘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주변에 대한 관심을 챙기는 염치를 드러낸다. 그래서 설이 되면 대개 새로운 소식들과 함께 기쁘고 반가운 마음을 나누곤 했는데 이번 명절은 그렇지가 않았다. 


  설을 하루 앞두고 엄마 옆에서 열심히 명절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띵동’ 하고 문자 메시지 알림음이 들려왔다. ‘누구의 안부 인사일까?’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핸드폰을 집어 들었는데 가슴이 철렁했다. 대학원 동문 선배님의 부고 문자였다. 사실 성함만 들어봤을 뿐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분이지만 오랫동안 지병으로 고생하시다가 영면에 드셨다고 하니 마음이 먹먹했다. 가족이 함께 보내야 할 즐거운 명절에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가족들의 마음을 생각하니 기분이 많이 착잡했다. 음식을 준비하는 내내 무거운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모든 준비를 마친 그날 저녁이었다. 엄마는 외가댁 식구들에게 안부 전화를 걸었다. 한 분 한 분과 웃으며 시작한 통화였는데 갑자기 말수가 줄고 낯빛이 어두워지셨다. 그러한 엄마 얼굴을 보며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전화를 끊고도 한 동안 아무런 말씀이 없으시다가 천천히 입을 여셨다. 


  “어떡하니. 넷째 외숙모가 골수암 이래….”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멀리 계셔서 자주 뵙지는 못했지만 나에게는 예쁜 추억을 남겨주신 분이다. 손재주가 좋았던 외숙모는 내가 어렸을 적에 직접 그린 여러 동물들의 그림을 코팅해서 선물로 주셨다. 호랑이, 판다, 곰, 여우, 토끼 등 십여 가지 귀여운 동물 친구들을 거실 벽에 붙여놓고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유년시절에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셨고 아직까지도 나에게는 예쁘고 젊은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는 외숙모에게 큰 병이 찾아왔다는 말을 듣고선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늦은 밤, 친구 아버지가 뇌경색으로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소식까지 찾아왔다. 7년 전에도 뇌경색으로 한번 쓰러진 적이 있었던 친구의 아버지께서는 몸의 이상증세를 다행히 빨리 감지하셨다. 서둘러 구급차를 불러서 병원으로 향했고 집중치료실에 입원 중이라고 했다. 친구는 이 소식에 또 얼마나 놀랐을까. 갑작스러운 소식에 많이 겁나고 힘들었을 친구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려 왔다.


  주변 사람들의 아픈 소식들을 한꺼번에 접하면서 나 역시도 유난히 힘든 하루였다. 이 와중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단지 그들을 향한 진심 어린 기도뿐이었다. 일면식도 없는 선배님이지만 하늘에서는 아픔 없이 행복하시기를, 건강한 모습으로 완쾌되어서 외숙모가 편안하게 웃음 지을 수 있기를, 몸이 완전히 회복되셔서 친구의 아버지께서도 생활하는데 어려움이 없으시길 간절히 기도드렸다. 


  하루 사이에 거대한 폭풍이 휘몰아치는 듯했다. 별안간 찾아온 큰 슬픔을 감당하기 버거웠지만 고요하게 그 슬픔과 함께 머물렀다. 한참 동안 슬픔과 마주하다 보니 어느새 감사한 마음도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나는 물론이거니와 나의 인연들이 무탈한 것만으로도 참으로 감사한 일이라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소중한 인연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는 것 또한 나에게 주어진 커다란 기쁨이었음을, 내가 이렇게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는 것이 나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도.


그리고 내가 다른 이를 위해 진실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처럼 다른 누군가도 나를 위해 그러하지 않았을까. 내가 모르는 곳에서 나를 위해 정성껏 기도하고 나의 행복을 빌어주는 사람들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들로 인해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인데 그에 대한 감사함을 얼마나 많이 놓치고 있었던 걸까….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온전히 나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배운다. 

좋은 일도 나 혼자 잘나서 얻게 된 기쁨이 결코 아니라는 것, 수많은 인연들의 도움과 지지 덕분인 것이다. 

반면에 힘들고 괴로운 일도 절대 나 혼자 감수하고 이겨내야 할 어려움이 아니다. 든든하게 나를 받쳐주는 수많은 인연들이 지켜주고 있기에 무엇이라도 감당해 낼 수 있는 힘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어딘가에서 나를 밝혀주는 수많은 등불이 있기에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걸, 나에게 사랑과 응원을 보내는 이들이 있기에 결코 좌절하지 않고 꿋꿋이 잘 이겨낼 수 있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상 어딘가에서 나의 존재를 위해 마음 써 주는 이들이 있으니 그대여, 절대 희망을 잃지 말기를, 멀리서 그대의 축복을 기원하는 이들이 있으니 부디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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