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orence to Venice
고대 로마에서 출발해 르네상스 전성기의 피렌체를 지나 또 다른 모습으로 그들만의 전성기를 이룬 베니스(이탈리아어로 베네치아)로 향하는 날.
플로렌스와 마찬가지로 영어로는 베니스로 표기하지만 현지에서는 베네치아라고 불린다. 이전 글과 동일하게 일반적인 지명으로 사용할 때는 베니스, 현지의 느낌을 전달하고 싶을 땐 베네치아로 쓰겠다.
되돌아가 로마에 머무는 일정을 포함해 전체 네 도착지 중 두 지점을 지났으니 여행도 중반이 넘어가는 시점이다. 무계획의 여행이라는 게 무지한 여행이라는 뜻은 절대 아니다. 어려운 시간을 내고 적지 않은 돈을 쓰고 온 여행인 만큼 치밀하고 쫀쫀한 사전 계획 없이도 의미 있는 경험을 얻기 위해서는 누구보다 많은 공부와 배경 지식이 필요하다. 17일간의 여행 중 8일이 지났고 여행을 시작할 때의 텐션은 절반이 아닌 1/3 수준으로 떨어진 시점이다. 알아야 할 것도, 알고 싶은 것도, 알려주고 싶은 것도, 여전히 너무 많지만 여행 중의 쉼은 낭비가 아니라 꼭 필요한 일부라는 생각에 배움보다 느끼고 즐기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어쩜 일정도 찰떡, 느끼고 즐기기에 베니스만큼 좋은 도시도 없다.
세부 계획에 취약한 엄마지만 다음 여행지로 옮기기 전에 오늘의 계획 정도는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아침부터 맘이 바쁘다. 새벽 6시부터 일어나서 과일을 깎고 빨래 걷고 분주하게 준비하는데, '우리 언제가', '가서 모해' 묻기만 할 뿐 주구장창 핸펀 끼고 앉아서 셀카만 찍는 딸램을 보니 화딱지가 난다. 몇 번을 넘겼다가 결국 못 참고 니가 좀 알아봐라 짜증을 벌컥 냈다.
또다시 기차역으로 가는 침묵의 길.
한마디 없이 걸었더니 어찌나 빨리 도착했는지 기차역에 도착하니 한 시간이 남았다. 커피 한잔 마시면서 이것저것 간식을 사는 동안 그냥 자연스레 또 기분이 풀렸다. 으이구…
일단 오늘 계획 세우고 또 코자… 여행 내내 코자… 어쨌거나 일어나니 베니스 도착.
여행자 팁.
육지에서 베니스 본섬까지는 긴 다리로 연결이 되어 있어 기차를 타고 본섬의 산타루치아 역까지 갈 수 있는데 육지를 벗어나 양 옆의 바다를 지나 바다 위에 뜬 건물이 신기루처럼 펼쳐지는 장면이 장관이다. 코 자고 있었더라도 이때만큼은 일어나서 햇살에 반짝이는 은빛 바다 위를 건너는 장면을 경험해 보길.
잔뜩 기대하고 도착한 수상도시 베니스는 습하고… 더웠다.
이 더운데 굳이 모자도 안 쓰고 긴 머리를 치렁치렁 흩뜨리고 덥다고 불평하는 아이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지만 수상도시가 갖는 곳곳의 물 흐르는 풍경…이 무언가 흘러가는 힘을 준달까… 여기도 물, 저기도 물 앞에 나도 모르게 흘려보내고 홀려버렸다.
체크인 후 에어컨 바람 쌩쌩한 방에서 샤워하고 나니 리셋.
바글바글 리알토 다리
머무는 동안 아무래도 자주 오가게 될 중심이라서 일부러 숙소를 리알토 다리 부근으로 잡았는데...
사람이 많아도 많아도 너무 많다.
공간에 비해 작품이 넘치는 박물관 같았던 피렌체는 한산하게 느껴질 정도로 가는 곳마다 사람이 미어터진다. 물 위에 지어진 도시의 특성상 베니스의 골목은 훨씬 오밀조밀하고 어떤 골목은 거의 벽 수준으로 너무 좁아서 이게 길이 맞나 싶은 곳도 많다. 거듭하는 질문이지만 진짜로… 주민들은 살았다고 치고 네비 없던 시절의 여행객들은 여길 어떻게 다녔던 걸까.(생각해 보니 네비 없던 시절에 나도 왔었다. 그땐 이 골목을 안 갔다. 그 시대의 여행은 그랬을 수도 있고 늘 그렇듯 언제나 더 용감한 사람은 어디든 있다)
골목골목 지나 어찌어찌 산마르코 광장에 도착했다.
산 마르코 종탑 (Campanile di San Marco)
그동안 많은 종탑을 지나왔지만 요즘은 좋은 항공사진도 많고 익숙한 풍경도 많아서 굳이 시간을 들여 올라갈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베니스에 오니 올라가 볼까 맘이 동했는데 마침 이곳엔 엘리베이터가 있다니 고민할 필요 없이 종탑 전망대로 갔다.
전망대라고는 하지만 그저 올라가서 한 바퀴 돌고 다음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오는 게 다지만 그럼에도 인상적인 몇 가지.
우선, 바다와 하늘과 섬이 한눈에 들어오는 독특한 뷰, 무엇보다 그 흔한 자동차 대신 배들이 둥둥 떠다니는 모습을 보면 이곳은 하나의 섬이 아니고 조각조각 연결해 말 그대로 떠 있는 도시라는 말이 실감 난다. 두 번째는 산마르코 광장의 규모와 독특한 형태, 여타 다른 큰 광장(예, 시에나 캄포 광장: 30,000m’)에 비해서는 작은 편(14,000m’)이지만 도시의 규모를 고려하면 압도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기하학적 공간이 신비롭게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성마르코 대성당과 두칼레궁이 맞닿아 있는 모습이다. 건축 양식에 대해 잘 몰라도 알라딘의 요술 램프를 연상시키는 마르코 성당의 둥근 지붕들은 바실리카의 긴 형태가 아니라 정사각 형태로 지어져 동양적인 느낌을 주는 반면 직선 구조의 화려한 두칼레 궁은 다소 혼합적인 요소가 있긴 하지만 다분히 서구적이다. 인상적인 건 바다 쪽이 막혀 있는 두칼레 궁이 ‘ㄷ’ 자의 열린 방향으로 성당을 품고 있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현재 나의 가정이 그러하듯 화해와 통합 등 서로의 다름을 포용하려는 단어보다 분열, 갈등이 난무하는 세상이다. 동서양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베니스에서 동서양의 건물이 서로가 서로를 거친 바다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고 지켜내려는 듯한 느낌이 좋았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산마르코 광장의 카페 플로리안(Caffè Florian, 1720년에 개업한 베니스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에 앉았다. 관광지적 핫 스팟에 큰 의미를 두진 않지만 오가는 인파 속에 앉을 곳이 마땅찮은 광장에서 종탑과 대성당이 한 장면에 들어오는 명당으로는 손색이 없다. 엄마는 스프릿츠를, 딸은 핫초코를 마시며 한눈에 담기는 아름다운 장면을 담았다.
배고플 시간이다.
바다엔 Seafood.
씨푸드 플래터.. 횟집의 종합 스끼다시 같은 걸 기대했지만 죄다 익혀 나온 아이들... 음.. 낯설지만 새로운걸?
오징어 먹물 파스타는 비주얼 대비 압도적인 맛은 아니었지만 베니스라서 모든게 용서되는 오늘,
Cia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