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nice_아카데미아 미술관
굿모닝 베네치아,
베니스는 너무 작은 섬이라서 2시간 정도의 당일치기 여행으로도 웬만한 명소는 다 둘러볼 수 있다. 그럼에도 2주 반밖에 안 되는 여행에서 굳이 4박이나 베니스에 머물기로 계획한 것은 이 관광객으로 미어터지는 도시가 가진 다채로운 매력을 최대한 여유 있게 누려보고 싶은 바람이었다.
여행자 팁: 베니스는 관광객들로 몸살을 앓는 이탈리아의 많은 도시들 중에서도 유독 관광객에게 불친절한 도시다. 당일치기 관광객들에게는 입장세라는 것을(5-10유로) 부과하고 숙박객에게도 숙박 요금 외, 위치와 성수기/비수기 여부에 따라 소급 적용되는 숙박세가 부과된다 (대략 2-7유로/night), 베니스 한 달 살기 할거 아닌 담에야 금액적으로 큰 액수는 아니지만 가뜩이나 열악한 시설 대비 비싼 숙박료를 지불하는 관광객들에게 별도의 ‘방문비’를 부과하는 것은 오지 말라는 건가 빈정 상하는 일임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리알토 다리에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빼곡히 서서 인증샷을 찍고 있으니 욕을 버는 이 도시의 고육지책이 이해가 갈 법도 하다.
어쨌거나 낼 돈 다 내고 당당한 관광객인 우리가 향한 곳은 베네치아 르네상스의 보고인 아카데미아 미술관.
베네치아의 르네상스는 피렌체에서 시작된 르네상스가 독자적으로 발전된 문화라고 하는데 ‘르네상스’라고 묶어 부르기에는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피렌체는 조화와 균형, 완벽한 비율과 원근법의 적용, 또 미켈란젤로의 작품으로 대변되는 해부학적 지식을 기반으로 한 이상적인 신체의 표현 등 회화의 기술적인 측면이 강조된다. 르네상스 거장들의 작품을 보고 온 베네치아의 화가들은 그들 나름대로 독자적인 화풍을 발전시켰는데 그중에서도 색채의 활용이 뛰어났다. 베네치아는 도시의 분위기에서 알 수 있듯이 동방과 서양의 교역 중심지로 희귀하고 다양한 안료의 공급이 쉬웠다. 또한 로마와 피렌체의 작품들이 프레스코화로 제작된 것에 비해 베니스는 바다의 습하고 염분이 많은 공기 때문에 프레스코화의 보관이 쉽지 않았던 터라 그 대안으로 북유럽에서 도입된 캔버스와 유화가 인기를 얻었다. 빨리 마르고 정교한 표현에 한계가 있었던 프레스코화와 달리 유화는 천천히 마르기에 정교한 표현과 다양한 색채를 구현하는데 용이했고 베네치아 화가들은 기술적 발전에 색감을 더해 감각적인 회화를 완성했다.
베네치아 회화에 대한 이 정도 기본적인 지식만 있어도 아카데미아의 작품들을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다. 아카데미아 미술관은 바티칸이나 우피치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고 규모도 국립 박물관 정도는 아니지만 베니스 방문에서 놓쳐서는 안 될 미술사의 보물 창고 같은 곳이다. (위 그림 왼쪽부터) 전형적인 베네치아 회화의 형형한 색채감이 돋보이는 palma Veccchio의 Assumption of the Virgin(1513, 좌측), 베네치아 학파의 거장 티치아노의 세례 요한(중), 풍경화의 새 지평을 연 조르조네의 폭풍(우) 등 의미 있는 작품을 직접 만날 수 있고 훌륭한 작품 뿐 아니라 건물의 작은 디테일 하나도 그냥 만들어진 게 없어 도시의 특징처럼 다채로운 매력이 있다.
골목을 이동하던 중, 우연히 우리가 건넌 작은 다리 건너에서 한 커플의 프로포즈 장면을 목격했다.
오가는 관광객들로 붐비는 공간이 마치 정지 화면을 누른 것처럼 모두가 멈춰서 숨죽여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성이 반지를 받아 들고 포옹하는 모습에 일제히 환호하며 박수를 쳐주는데 영화 속 한 장면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달콤한 순간이었다. 수많은 계단과 수많은 다리를 건넌 터라 다리가 후들거릴 것만 같았지만 이 낭만적인 곳에서는 그러고도 남음이 있었다.
베니스에 온 내내 단순히 이국적인 풍광 외에 무엇이 이 도시를 이토록 새롭게 하는 걸까 궁금했다.
그것은 물과 하늘이 맞닿아 있는 곳에 떠 있는 이 도시가 가진 낭만…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로마에서 피렌체를 거쳐오는 동안 아름다운 문화적 성과의 바탕이 된 고난과 혼돈의 시기를 살았던 사람들이 물러서지 않는 불굴의 의지로 세상을 바꿔나간 이야기를 해왔다. 살아남기 위해 이 척박한 땅까지 오게 되었고 바다에 말뚝을 박아가며 도시를 세워야 했던 삶도 결코 녹록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그들은 물과 하늘이 만난 색채와 감성에 주목했고 그들만의 예술로 승화시켰다.
눈앞의 현실이 너무 힘들 땐 내가 가진 것보다 갖지 못한 것에 시선이 가기 마련이다. 이사 온 후 줄곧 햇볕조차 잘 들지 않아 늘 어둠 컴컴한 숲 속의 삶이 감옥처럼 갑갑했다. 종종 산책길에서 계절의 미세한 변화를 눈치챌 수 있을 만큼 어제와는 사뭇 다른 공기를 느낄 때가 있다. 사람의 손으로 만든 어떤 인공적인 것도 제공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를 느끼며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숲을 떠나서야 보인다.
어렵고 힘든 삶이지만 그들이 가진 특별한 선물을 알아볼 수 있었던 사람들을 통해 이 장사꾼들의 섬은 누구라도 사랑에 빠질 것 같은 낭만의 도시가 되었고 지금도 매일 새로운 매력으로 빛나고 있다.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미술관을 가득 채운 색채의 향연 속에서 다소 의아했던 부분이 있었다. 아무리 화려한 색감이 특징이라고 하나, 베네치아의 그림들에서는 유독 하늘이 유치하다 싶을 만큼 쨍한 파란색으로 표현되었다. 실제로 우리가 보는 하늘은 크레파스의 하늘색이 아닌 파스텔 회색이나 아이보리 색에 가깝다. 색깔 좀 쓴다는 사람들이 왜 그랬을까…. 싶었는데 해가 질 즈음, 올려다본 하늘은… 정말 보정 하나 없이 눈이 아플 정도로 쨍한 파란색이었다.
어울리지 않을것만 같은 단어의 조합이지만 딸램과 나는 입을 모아 말했다.
기괴할 정도로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