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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dew Oct 05. 2020

줌마의 눈물은 아프다

안 괜찮아도 괜찮아

"난 괜찮아" = "안 괜찮아"


얼마 전 어떤 기사를 읽었다.

요즘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거짓말 1위가 “난 괜찮아”라고 했다.

구구절절이 설명하기 싫어서, 이 정도는 누구에게나 있는 일이지 싶어서, 혹은 정말 괜찮다고 생각해서, ‘요즘 어때?’라는 질문에 ‘ㅇㅇ 괜찮아’라며 괜찮지 않음을 외면한다는 그런 내용이었던 거 같다.


엄마가 된 후로 난 늘 괜찮았다. 아니 괜찮아야 했다.

임신하고 내 몸과 감정이 널뛰듯 낯선 느낌도 엄마가 되는 과정이라고들 하니 괜찮은 줄 알았고

아이를 낳고 회복되지 않은 몸으로 집에 돌아왔을 때 지친 내 몸보다 갓 태어난 생명을 지키는 일이 더 중차대한 일이라서 내 몸 하나쯤은 알아서 추슬러도 괜찮았다.

사랑하는 마눌, 보물 같은 새 며느리였던 내가 그저 귀한 자식과 손주를 돌보아야 하는 보모로 전락한 기분이 들어도 아이를 질투하다니 불규칙한 호르몬으로 인해 부덕한 엄마가 되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애써 지워버렸다.

잠 좀 못 자도 엄마니까 일어나야 했고 아파도 엄마니까 약을 먹고 버텼다. 정말 재미없고 지루한 동화책도 엄마라서 최선을 다해 읽었고 혼자 있고 싶은 순간에도 엄마를 찾는 아이를 외면하는 건 차마 할 수 없었다.


"괜찮다 보면 괜찮은 사람"


그렇게 괜찮아야 하면서 난 정말 괜찮은 사람이 되어갔다.

원래도 식탐이 있던 건 아니었지만 그때그때 아이들 입맛에 맞추다 보니 아무거나 끼니만 때우면 되는 사람이 되었고

매일 매일 샤워해야 나갈 수 있던 깔끔쟁이 아가씨는  여름날 온 가족이 자전거 타고 돌아와서 땀에 절어 돌아왔을 때에도 막둥이의 젖병을 물려야 해던 엄마는 등에 줄줄 흐르던 땀이 마를 때까지 견딜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블럭버스터 액션 영화, 손에 땀을 쥐던 스릴을 즐기던 나는 10년째 뽀로로를 보다 보니 루피와 에디를 좋아하는 엄마가 되어 있었고

스팽글이 있는 옷이나 타이트한 미니 스커트, 빼딱 구두 따위는 평생 입어본 적도, 신어 본적도 없는 것처럼 아니 심지어 아이들이 엄마는 왜 화장도 안 하고 구두도 안 신어 라고 물어볼 만큼 마흔둘의 난 운동화와 쮸리만 입어도 괜찮은 아줌마가 되었다.


"혼자서 백날 돌아보면 뭐하나"


회사에서 만났다.

나는 대리였고 그는 사원이었다. 우리 둘다 유학파였고 먹고 살만한 집안이었다. 미국은 낯설지 않은 곳이었고 함께 하는 핑크빛 미래를 꿈꾸며 그는 다시 공부를 시작했고 난 언젠가 자리잡을 시간을 기대하며 30대의 엄마의 삶에 헌신하기로 했다. 10년뒤, 그는 학위를 끝냈고 교수님이 되었고 난 아이셋의 전업맘이 되었다.


그 아줌마는 남편이 10년째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나오는 따끈한 밥상에 더 이상 감탄해하지 않아도 

한 개였던 도시락이 두 개로, 세 개로, 네 개가 된 지금 더 이상 그 수고에 감사해하지 않아도

평생 닦아본 적 없는 변기를 슥슥 닦아 내어도, 밥 먹다 말고 화장실에 불려 가 뚫어로 뻥해야 해도,

모처럼 쉬는 날 싱크대와 냉장고를 정리하고 기뻐하는 나에게 안쓰러운 한마디 건네지 않아도 이쯤이야 내 가족을 위한 일인데 세상에 더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 난 정말 정말 괜찮았다.


힘들고 외로운 날엔 혼자 술을 마셨고 울었고 좌절했고 일어났다.

아무도 없는 낯선 땅에서 남편과 다투고 빽빽 우는 아이들을 끌어안고 울던 날에도 난 오뚝이처럼 일어났다.


그는 늘 바빴고 난 오늘은 긴 하루를 마치는 짧은 대화 할 수 있는지 눈치를 봐야했다. 집안일은 매일같이 산처럼 쌓여있었지만 괜찮은 난 그저 '으에어어' 혼자 북치고 장구쳐야 하는 외계어 대신 인간의 말을 할 수 있는 말동무가 필요했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삶이 지친다며 위로가 필요하다고 했을 때 그는 말했다.

“나도 힘들어 그렇지만 당신이 힘들어해서 난 말 안 해.”

“난 아니야. 당신의 위로가 필요해”

“그럼 당신이 필요할 때 말해. 왜 내가 해주기만 기다려? 당신이 무슨 소녀야?”


"음...난 말이야...세상 모든 사람이 아줌마라고 해도 너한텐 여자였던 10년을 함께 보낸 인간이야"


소녀가 아닌 아줌마는 그 말에 무너진다.

줌마픔, by sandew

소녀가 아닌 아줌마도 기대어 울 어깨가 필요해.

소녀가 아닌 아줌마도 애들 아빠가 아닌 따뜻하게 안아주는 남편의 품이 필요해.

소녀가 아닌 아줌마도 사랑한다는 말조차 없는 욕구 해소의 관계는 정말 싫어.


모두가 괜찮다는 이 세상에 아줌마는 괜찮지 않다.

아줌마도 슬프고 아줌마도 운다.


더 말할 수 없는 마음이 가슴에 켜켜이 쌓인 그 아줌마는 눈물은 그래서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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