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그 참담한 시간의 기록 #3
좋아하는 영화 장르는 사극과 전쟁 영화이다. 그러니 가장 좋아하는 건 당연히 역사 속 사건을 바탕으로 한 전쟁영화이다. 역사에 관심을 갖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과거의 일이 역사 속에만 머물러 있는 게 아니라 현재에도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는 걸 보면서, 늘 처음 겪는 일처럼 매번 두렵고 낯선 삶의 문제들을 대할 때 조금 여유가 생긴달까? 특히나 전쟁이라는 극단의 상황에서 까발려지는 인간의 본성은 소름 끼치도록 이기적이고 적나라해서 사실상 삶의 모든 순간이 또 다른 형태의 전쟁인 일상의 어려움 또한 그 바탕에는 더럽고 추악한 내 이기심을 보게 한다. 그래서 스토리 몰입이 방해될 정도로 눈살이 찌푸려지는 잔인한 장면이나 시각적 자극을 극대화한 전투씬이 있는 경우는 피하는 편이다. 아무리 실제로는 그보다 더했을지라도 전쟁은 존재 자체만으로 이미 충분히 비극적이고 끔찍한 일이지 않던가.
우여곡절 끝에 한국행 비행기에 올라 고른 영화는 ‘1917’(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34091)이었다.
지난해 가을이 시작될 즈음이었나 보다.
오랜 기간 쌓여온 불화가 마침 코로나를 만나 그 갈등이 증폭된 상황에서 서로를 향한 날선 감정은 극단으로 치닫았지만 한 집에서 오롯 5명이 빡빡하게 돌아가는 매일의 일상을 살아내야 하는 상황에서 숨을 고를 타이밍을 놓쳤다. 매일매일 사건이 폭풍전야 같은 조마조마함 속에서 지옥 같은 일상을 이어가던 끝에 아이들을 데리고 한국에 갈 수 있게 되었다.
이미 서로의 감정은 시간이 지난 후 회복을 논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였고, 시작은 감정 싸움이었지만 양가 가족이 개입하게 되면서 단란했던 나의 보금자리 2층 집은 보이지 않는 유혈이 낭자한 전쟁터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선을 넘었다고 느낀 순간, 지난 13년간 나의 가족이자 유일한 친구였던 남편이 적으로 돌아섰을 때, 심리적인 상실감은 사치로 느껴질 정도로 그 적은 누구보다 무서운 무기를 가진 잔인하고 두려운 적이 될 수 있음을 뼈저리게 느낀 몇 달간이었다.
서로의 모든 대화가 녹음되기 시작하고 외출 시에는 집안 구석구석 짱박힌 나의 물품과 기록들이 법정에서 쓰일 수 있는 증거물로 뒤져진다는 것을 각오해야 했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 입양한 강아지를 혼자 둘 경우에 대비해 집안 정 중앙에 설치한 CCTV는 내 일상의 자료 화면이 되었다. 매일 밤 1층과 2층에 각각 위치한 각자의 방에서 한국 시간에 맞춰 한국 변호사와 통화하고 아침에 되면 미국 변호사와 통화하며 서로의 입장을 정리하기까지 동거중인 적과 전쟁을 준비하는 기묘한 긴장 상태가 유지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우리 아이들은 이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가 되었다. 적어도 아이들 앞에서는 최대한 마찰을 피한다는 암묵적인 동의마저 깨어진 후로는 물건이 날아가고 신체적인 폭력보다 더 무서운 차마 여기에 기록할 수 조차 없는 언어 폭력이 쏟아지는 현장을 드러냈을 땐, 하….. 더 이상 내가 아이들을 보호할 수 없다는 좌절감에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서로를 믿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는 나에게 아이들을 맡기길 거부하고 혼자 한국으로 갈 것을 요구했고 난 아이들을 두고는 가지 않겠다 첨예하게 대립하던 즈음이었다. 어느 밤, 술에 취한 그는 장인, 장모에게 자신을 억울함을 호소하러 전화했다. 얼러주고 달래주고 타이르다 ‘그렇게 하나도 양보하지 않고 일방적인 입장만 얘기하면 같이 살기가 어렵지 않겠나’ 하는 장인의 말에 확 빈정이 상했는지, ‘본인은 법적 귀책사유는 없으니 합의를 하시죠’ 라며 전화를 끊어버린 사위와 친정은 그 이후로 대화의 끈을 놓았다. 결국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시댁에 전화해서 비록 며느리는 남이지만 애들을 생각해서 아들을 설득해달라 읍소했다. 눈물로 쇼를 하던 시부모님은 황당하게도 나와의 통화 내용을 녹음하셨고 그 일 이후로 나는 그들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
모든 소통과 외부적인 도움의 단절, 심지어 잠시 생각을 정리할 여유마저 갖지 못한 채 감정적으로 극단으로 치닫는 두 성인이 잠정적 휴전의 결정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많은 눈물과 분노, 좌절과 원망, 증오의 시간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아이들과 함께 한국행이라는, 쉽지 않지만 일단 지옥 같은 현실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비행기에 타서 안전 벨트를 매고 뒤로 기대는 순간,
이미 6.25전에서 1.4. 후퇴를 겪으신 아바이에겐 목숨을 거는 일이 아닌 이 일은 댈 것이 못 되겠지만 지금 이 순간의 나에겐 지나온 몇 달간의 시간이 감은 눈 안으로 펼쳐지며 살기 위해 떠났던 흥남부두의 실향민들처럼 절박하고 절실하게 느껴졌다.
아이들 옷을 갈아 입히고 짐을 정리하고 서류를 정리하고 베개 이불 등 세팅해 주는 동안, "와, 엄마 밖에 봐" 라는 말에 문득 창밖에 시선이 간다. 저 멀리 비행기 날개 끝, 작은 불빛 뒤로 오늘 해가 넘어간다. 마치 지친 세월의 끝을 알리는 듯....?
눈물이 날 것 같다.
하늘을 나는 게 꿈인 막내가 또 말한다. "엄마, 구름 위를 나는 것 같아"
"응응...그러네. 그랬으면 좋겠네"
이 모든 것이 뜬구름 같은 시간이길, 그냥 지나가는 일이긴...헛된 바램을 가져본다.
아이들 모두 각자의 모니터에 빠져들 무렵, 그제야 비로소 헤드폰을 연결했다 몬가 이 상황에, 이 전쟁에 대한 답을 찾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었을까, 무심하게 영화 '1917'를 틀었다.
우선, 영화 1917에 대한 설명은 검색창에 1917을 치면 너무나 상세하고 좋은 리뷰들이 많다.
내 버전의 간단 리뷰로는 두 명의 군사가 통신 두절로 몰살 위기에 몰린 전방 다른 부대에 후퇴 명령을 전달하는 미션 수행에 관한 이야기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한 임무에 투입된 두 병사에게 명령에 대한 사명 외, 동기 부여의 정당성을 위해 두 병 사 중 한 명의 형이 몰살 위기에 있는 부대에 배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영화 내내 숨 막히는 위기를 이어간 끝에 결국 그 동생은 죽고 함께 간 친구가 명령을 전달해 많은 목숨을 구한다는 이야기다.
몇 년 전,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 작품상 경쟁작으로 유명세를 떨쳤을 만큼 작품성 면에서는 이미 검증된 작품이었지만 온갖 질고 끝에 보잘것없는 병사 하나가 수많은 목숨을 구한 해피엔딩에 감격의 눈물이 나야 할 마땅하건만,,,
이미 너무 많은 눈물을 쏟은 탓일까.
그가 구한 수많은 목숨보다 그 전쟁이 앗아간 비교할 수 없는 하찮은 목숨에 대한 홀대(?)에 야릇한 부아가 치밀었다.
중간중간 전쟁의 참상을 감정적인 요소로 끼워 넣었지만 결국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위대한 업적을 이룬 숭고한 군인정신에 대한 칭송이 불편하게 느껴진 건,,,
아마도 저 아이들을 사지에 내몰고 하루하루 두려움에 떨게 한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은 결국 엄마 된 나인데, 꼴랑 애들 데리고 한국 가는 허락을 얻어냈다고 아이들을 꽤나 보호하게 된 것처럼 정당성을 부여하고 싶었던 내 치졸한 양심에 대한 질책이었달까.
아무리 숭고하고 고결한 희생이 있을지라도
아무리 원대하고 전인적인 이념을 바탕으로 한 투쟁일지라도
결국 전쟁의 참상을 겪어내는 건 희생과 이념이 몬지도 모르는 무고한 생명들이다.
그러니…전쟁을 일으킨 자들은....
사죄해야 마땅하다.
이 전쟁의 모든 피해자들에 대해.
또 나 자신에 대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