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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dew Mar 28. 2022

정신과에 다녀왔습니다

내가 정말 아픈가

나의 상태 = 노답

남의 나라에서 살아갈 능력도 여건도 안 되는 처지에,

아이들을 포기할 수도 안 할 수도 없고 그래서 이혼을 할 수도 없고 그대로 살 수도 없는 현실.

아무리 고민해도 뾰족한 답이 없고 한숨만 나오는 게 나의 상황이다.

잠정적인 별거 상태를 얻어냈지만 생활비를 전혀 지원받지 못하기 때문에 친정에 속수무책으로 손을 벌리고 있는 처지가 길어질수록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시간이 지난다고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길어야 한 두 달 후, 다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은 다가오고 있으니 현 나의 상황은 말 그대로 노답이다.


장기간 짓눌려온 극심한 스트레스를 내 멘탈이 더 이상 버텨내지 못하고 있다고 느껴진 며칠 전, 신경정신과 의원을 찾았다. 


40도 넘는 고열이 아닌 담에야 해열제도 잘 먹지 않을 정도로 난 기본적으로 약에 대해 거부감이 있는 편이라서 30대부터 주변에서 주구장창 권해왔던 비타민도 좀처럼 먹지 않는다. 요즘같이 정신 건강에 대한 이슈가 일반화된 세상에 아직도 이런 전근대적인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게 놀랍겠지만 나에게 정신, 신경 이런 단어는 여전히 듣기만 해도 너무 무서운 느낌이었다. 더더군다나 항우울제 같은 약이라도 먹어야 한다면 보이지 않는 올가미에 걸려드는 느낌이랄까, 그러니 병원을 찾기까지는 나름의 용기와 결단이 필요했다. 아니 무엇보다 정말 머라도 붙잡고 싶은 절박함이었을 것이다.


상담을 마친 후, 선생님은 현재의 스트레스 상태와 불안감, 우울감 등은 약물 처방으로 어느 정도 개선되는 효과를 볼 수 있겠다 하셨다. 큰 병에 걸린 사람이 보약부터 찾아먹기 전에 일단 좋은 음식을 소화할 수 있는 기본적인 체력을 갖추게 한 후 좋은 음식을 섭취해야 하듯이, 일단 약물 처방으로 심신이 조금 안정이 되면 추후 지속적인 상담 등으로 문제점을 개선해 나가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고 하셨다. 약에 대한 내 두려움을 말씀드렸더니 가장 일반적으로 복용할 수 있는 약한(?) 수준의 약부터 시도해보자 했고 그로부터 1주일이 지났다.


선생님: 좀 어떠셨어요? 특별히 불편하거나 힘든 점은 없으시고요?

환자: 제가 약을 안 먹다 보니까 일단 약을 먹는다는 것에 대해 굉장히 예민해지는 거 같아요.

요 며칠, 주말을 끼고 좀 피곤하기도 해서 머라 말씀드리기가 어려운데 저녁에 약을 먹었더니 너무 졸려서 보통은 애기 재우고 밤에 술을 마시거나 혼자 시간을 보내는 편인데, 지난주는 내내 애기 재우면서 같이 잠들어서 새벽에 일어나 밤새 뒤척이는 편이었어요.

선생님: 네… 그러실 수 있어요. 그건 복용 시간이랑 양을 조금씩 조절하면서 맞춰가면 돼요.

저번에 술을 좀 많이 드시게 된다고 하셨는데 그건 어떠셨나요?

순간, 불쑥 고개를 드미는 개그본능!

환자: 자느라 못 먹었져.ㅎㅎㅎ

술 안 마시면 컨디션은 당연히 좀 나아지고.. 그게 약 덕분인지는 몰겠구요.

민망함반 자조반 섞인 웃음을 끌끌거리는데 선생님은 네.. 하며 웃지 않으셨다.


정신과 상담과 친구들과의 수다의 가장 큰 차이를 꼽자면,

분명 웃음 포인트인데 나만 웃고 때로 나는 대화를 못 이어갈 만큼 감정이 북받치는데 선생님은 재미없는 모노드라마를 보는 관객처럼 아무 반응 없이 내 눈만 뚫어져라 보고 계신다는 것이다.

(그럴때면 마스크를 쓰고 있음이 너무나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아마도 내가 모르는 상담 치료의 규칙 같은 것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몸으로 마음으로 공감해주는 친구들과의 대화에서도 해결하지 못했던 절망적인 마음을

해결해보고자 돈을 주고 찾아왔는데

혼자 웃고 혼자 우는 모습이 마치…이제서야 비로소 내가 정말 아픈가 싶은 생각이 드는,

나의 정신과 첫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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