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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dew Apr 25. 2022

왕년에 줄 좀 서던 사람이었는데

검은콩 론

콩 고르기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하고 있을 무렵이었나 보다. 부모님께서 남양주에 있는 작은 텃밭에 서리태를 심기 시작하셨다. 해마다 겨울이면 엄마는 밭에서 털어온 콩을 안방 가득 펼쳐놓고 몇 날 며칠 그 콩 통을 붙들고 앉아 계셨다. 취미 생활로 시작했다가 가업 수준(업무량 기준)이 된 이 일에 나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종종 합류하게 되었는데 일명 ‘콩 고르기’, 한마디로 콩을 먹을 놈, 팔 놈, 버릴 놈으로 나누는 작업이었다.


-콩 고르기란?
제일 잘 익은 서리태는 흠집 없이 까맣고 윤기 나는 놈으로, 까 보면 새싹 같은 녹색 빛의 굵은 알이 꽉 찬 게 일등 신랑감이다. 콩이 너무 익게 되면 겉면에 희끗희끗한 흠집이 생기는데 까 보면 속이 이미 노란색으로 변해있어 당연히 상품성도 떨어진다. 마지막으로 쭉정이들은 말할 것도 없이 찌그러지고 깨져서 팔지도 먹지도 못하니 바로 쓰레기통 행이다.


쭉정이에 대해서는 엄마와 나의 기준이 일치하지만, 난 고용인의 입장에서 시키는 대로 (원래 기준대로) 까만 콩들만 가차 없이 골라내는 한편, 고용주인 엄마한테 가면 애매하게 희끄므리가 있는 둥 없는 둥 한 놈들은 패자 부활해서 슬쩍 검은콩 통에 들어가는 행운 티켓을 받기도 했다. 여기서 벌어지는 모녀의 콩론.


母 : 산듀야, 콩 고르기에도 인생이 있단다. 이렇게 똑같은 씨를 뿌려 거둔 콩인데도 어떤 

놈은 검은콩인데 어떤 애들은 흰 콩이나 쭉정이가 되지 않니. 자, 그럼 너는 어떤 

콩으로 살아야 되겠니?

女 : 음... 내 생각엔 말이야, 검은 콩이 검은콩 통으로 가는 건 너무 당연한 거지만 어차피 

검은 콩이 아닐 바에야 줄을 잘 서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봐봐~ 어떤 애들은 나한테는 잘릴법한 흰 

콩인데도 엄마한테 가면 종종 검은콩이랑 같은 값으로 팔려 나가는 애들도 있자너.


줄 잘 선 희끄리 인생

우습고 부끄럽게도 그것이 내가 삶을 대하는 태도였던 거 같다.

난 꽤 줄을 잘 선 흰 콩이었다. 물론 난 나태하게 살지 않았고 쭉정이가 되지 않기 위한 나름의 노력을 했지만 그 노력에는 타고난 것이 반 이상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내가 최소한이라고 생각하는 흰콩이 되기 위해 누군가는 영혼을 갈아 넣는 노력을 해야 했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쉽게 얻은 흰 콩 정도 되었다 싶으면 만족했고 거기서 줄을 잘 서 검은콩 통에 들어갔을 땐, 그저 기뻐하고 감사하고 누렸을 뿐 내가 진골 검은콩이 아니어서 부끄럽지 않았고 그렇다고 엄한 줄에 서서 쭉정이 통에 들어간 흰콩들에게 미안해야 한다고 느끼지도 않았다. 그저 그게 내 몫이라고 쉽게 생각하고 쉽게 받아들였다.


연년생 삼 남매 중 둘째인 나는 샌드위치가 갖는 태생적 생존 본능으로 줄 서는 데만큼은 탁월했다. 내가 가질 수 있는 것과 한계를 명확히 구분했기 때문에 무리한 꿈을 좇지 않았고 버릴 건 버리고 취할 건 취해 현실적인 선택을 했다. 기대가 크지 않아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선택한 줄은 늘 평타 이상이어서 내 기준의 검은콩 통에 걸치고 걸쳐 비교적(남들이 말하는) 수월한 삶을 살아왔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어디서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언젠가부터 내 줄은 조금씩 비껴가기 시작했다.

길게 늘어선 슈퍼 계산대에서 줄을 서는 것부터, 막힌 길에 차선을 변경하고, 심지어 공항 검색대에 섰을 때조차 내 옆은 쭉쭉 잘만 빠져나가는 구만 내 선에는 꼭 폭탄이 버티고 앉아 시간을 지체하곤 한다. 왜일까? 감이 떨어진 것일까? 


아니,,, 인생은 때로는 나를 속이기도 하지만 내가 미처 준비되지 못한 순간 민낯을 드러내기도 한다. 삶은 생각보다 정직해서 언젠가는 어떤 식으로든 걸러진다.

콩 고르기를 한 번에 끝내지 않고 한 번씩 더 했더라면 아마도 나처럼 애매한 희끄리들은 걸러졌을지 모른다. 그랬더라면 내가 진골 검은콩이 아닌 걸 알고 언젠가 다시 걸러질 날에 대비해 흰콩 통으로 갈 준비를 했어야 했다.




아.. 나 왕년에 줄 좀 서던 사람이었는데..라는 탄식과 함께 지난날을 돌아본다.

30대를 아내와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았다. 그래서 내가 선 줄이 썩은 동아줄인지 모르고 삶이 흔들릴 때 끊어져 버릴 줄 몰랐던 지난날의 안일했던 나에게 사죄한다. 그 작은 통 안에서 그 통이 영원할 줄 알고 안주했던 나의 어리석음에 사죄한다.


부활을 꿈꾸는 희끄리

지금 난 쭉정이 통에서 부활을 꿈꾸는 흰콩이다.

운 좋게 검은콩 통에서 호사를 누렸으니 억울할 것도 없다.

다만, 남은 인생은 정직하게 살고 싶다.

더 이상 좋은 줄을 고르는 건 의미가 없다는 걸 알게 되었지 않나,

내가 있는 이 통이 영원하지 않기에 바랄 것도 실망할 것도 없이 딱 그만큼만 살아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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