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여행, 그리고 문학

by 호접몽


얼마 전 엄마가 질문을 던지셨다. "그 나무 이름이 생각이 안 나네. 키 큰 나무인데…." 내가 아는 한에서 정답일 듯한 나무 이름을 댔다. "삼나무? 사이프러스나무?" 하지만 그중에 정답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기억력이 많이 떨어졌나봐."라며 한 마디 하신다. 원래 모르고 있던 나는 이럴 때 참 답답하다. 그래도 요즘엔 검색이 잘 되어서 잘 모르더라도 예를 들면 '노란꽃' 하면 쫘르륵 뜨고, 기본적인 특징만 알아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는데, '키 큰 나무'로는 답변이 나오지 않아서 답답한 노릇이었다.



나중에 겨우겨우 알아낸 바로는 '메타세쿼이아'였다. "그 힌트만으로 내가 어떻게 이름을 알아내겠냐고요!" 일단 무언가 궁금해지면 해결 볼 때까지 잡고 계셔서 나도 애써 검색했지만 힌트가 너무 적어서 결국 도감을 찾아보시고는 알아내셨다. 마치 이런 거다. "그 사람 있잖아. 키 좀 크고 호리호리하고 그 사람 누구지?"라는 질문에, "아, OOO요?"라고 단번에 답변할 확률은 거의 없는 법이다.



내가 아는 식물 이름은 좀 빈약하다. 한두 송이 피어있는 것에 그다지 관심이 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적어도 떼로 몰려 피어있는 정도는 되어야 관심을 주나 보다. 벚꽃이 흐드러지는 4월이 되면 집 밖에 한 번이라도 더 나가려고 기를 쓰고, 노란 유채꽃이 가득 피어 있는 광경에 설레기도 하는 걸 보면 말이다.



여행 중에도 그랬다. 엄마는 꽃과 나무의 이름이 궁금하면 사람들에게 질문을 하셨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만약 나 같은 사람에게 물어본다면 모른다고 답변할 테고, 어떤 사람들은 아예 엉뚱한 꽃 이름 즉 자신이 알고 있는 꽃 이름을 아무거나 둘러댈 수도 있으니 말이다. 나도 몇 번 물어본 적은 있다. 예전에도 말한 적 있지만 인도인들은 절대 모른다고는 말 안 한다. 연꽃을 장미라고 할지언정 말이다.



인도 남부 여행을 할 때였다. 어느 지역이었는지 무엇을 했는지 그런 기억은 희미해졌는데 곳곳에 진분홍빛 꽃이 흐드러지게 가득 피어있었다. 그냥 나는 '꽃이 많이 피었네.' 정도로 감상하고 여행 계획대로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지만, 엄마는 이미 그 꽃에만 꽂혀서 다른 것은 안중에도 없었던 것이다. 일단 수첩에 꽂아두기도 하고, 되는 대로 사람들에게 꽃 이름을 물어보셨다. 결국 알아낸 이름이 '부겐빌리아'였다. 비슷한 색상의 사리를 입은 여성이 답변해 주었는데, 그곳에서 다른 기억은 나지 않으면서도 버스정류장에서 대화를 주고받던 그 장면만은 생생하게 떠오른다.



'꽃' 하면 '꽃으로 바라본 문학'을 이야기하던 두 권의 책이 떠오른다. 김민철 작가의 『문학 속에 핀 꽃들』과 『문학이 사랑한 꽃들』이다. 저자는 2003년 봄 무렵부터 꽃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한다. 예닐곱 살 먹은 큰딸이 아빠에게 계속 무슨 꽃이냐고 질문을 해대니, 얼버무리기도 여러 번. 결국에는 꽃에 관한 책을 사서 공부하게 되었고, 10년 동안의 야생화 공부와 젊은 시절부터의 소설 읽기를 결합한 결과물로 책을 출간했다는 것이다.



그저 꽃은 소설 속의 배경일뿐이고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왔지만 그 책을 읽고는 생각을 달리했다. 그 책을 읽으며 김유정의 단편 「동백꽃」에 나오는 것이 '노란 동백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의 '싱아'가 마디풀과의 여러해살이 풀이며, 산기슭에서 흔히 자라고 어린잎과 줄기를 생으로 먹으면 새콤달콤한 맛이 나서 예전에는 시골 아이들이 즐겨 먹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꽃은 문학을 더욱 풍성하게 하고, 문학은 꽃의 '빛깔과 향기'를 더욱 진하게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꽃과 문학만큼 잘 어울리는 환상적인 마리아주도 없는 것 같다. 작가들이 꽃에 더 관심을 가지면 그만큼 더 우리 문학이 아름다워질 것이다.
『문학 속에 핀 꽃들』 321쪽




생각해 보니 그동안 여행을 하면 어디 가서 무엇을 먹고 어떻게 쉬고, 어느 정도 일정을 짜면 그 정도만 생각했지 여행길에서 일정 외에 작은 들풀을 보며 딴 길로 샌 적이 없는 듯하다. 사실 우리네 인생은 살짝 딴 길로 샜을 때 더 오래 기억되는 법인데 말이다. 부겐빌리아 가득 피어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다음 목적지만 생각하고 거기에 배경처럼 피어있는 꽃에 별다른 눈길을 주지 않았던 과거의 나에게 한 마디 해주고 싶다. 세상에 당장 꼭 해야 하는 일은 없다고. 충분히 그 풍경을 누린 후에 다음 걸음을 나아가도 된다고. 오늘도 나에게 주어진 풍경을 충분히 누리고자 여유를 부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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