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쫄깃쫄깃한 심정으로 보았던 드라마 중 <동백꽃 필 무렵>이 있었다. 믿고 보는 배우 공효진과 강하늘이 나와서 더욱 시선을 끌었고, 명대사도 마음에 훅 들어왔지만, 이제야 살짝 제목 그대로의 궁금증이 생긴다. 그래서 동백꽃 필 무렵이 언제였지?
제주에 와보니 내가 알던 자연의 스케일이 다르다. 바퀴벌레도 이~따만해서 날아다니고, 유채꽃 수선화 등의 노오란 꽃도 생각보다 일찍 봄을 알리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 동백나무가 이렇게 크고 높은 줄 처음 알았다. 저 나무가 얼마나 더 커서 하늘을 찌를지 모를 정도로 한참을 올려다봐야 한다.
동백꽃은 1월에서 4월까지 핀다고 한다. 그런데 제주에서는 좀 더 일찍 피고 생각보다 빨리 절정을 이룬다. 그래서 정신 차리고 보면 이미 봄은 와있고 빨간 꽃인 동백과 노란 꽃인 유채가 절정을 이루고 있다.
오늘은 동백에 대한 시를 감상해보아야겠다.
동백 / 정훈
백설이 눈부신
하늘 한 모서리
다홍으로
불이 붙는다.
차가울사록
사모치는 정화(情火)
그 뉘를 사모하기에
이 깊은 겨울에 애태워 피는가.
'차가울사록
사모치는 정화(情火)'
이것은 오타가 아니라 예전의 시집에 이렇게 적혀 있다. 이름 표기도 성 띄고 이름을 쓰는 표기법이다.
오늘 문득 집어 든 시집은 미니시집 『영원한 세계의 명시』이다. 손바닥보다 작은, 주머니에 쏙 들어갈 만한 작은 크기의 시집이다. 이런 걸 보면 예전에 사람들이 더 낭만적으로 살았나 보다, 그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그 안을 들여다보니 놀랄 만한 반전이 있었다.
이 책은 내가 어렸을 때 엄마 생신 선물로 사드렸던 미니시집이었던 것이다. 떠올려보니 어렴풋이 생각난다. 동네 문구점에서 추천받아서, 엄마가 시 좋아하시니까 이걸로 결정했던 기억이 난다. 아니, 솔직히!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애써 기억을 끼워 맞춘다. 이렇게 생각해 보니 상당수의 기억은 어쩌면 그런 사실이 없었음에도 있었던 듯 조작될 수 있겠다. 지금의 나처럼 말이다.
스르륵 읽어나가다가 마음에 훅 들어오는 시를 발견한다. 유명하다고 항상 감동을 주는 것도 아니고, 언젠가 마음을 뒤흔들었던 시라도 지금은 아니기도 하다. 시는 펼쳐들어 지금의 내 마음과 그 시가 감흥을 발휘하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을 잘 잡아야 시를 음미할 수 있다. 봄비가 내려 동백이 많이 떨어졌겠다. 오늘은 밖에 나갈 때 동백을 바라보며 사모하는 마음을 떠올려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