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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접몽 Mar 16. 2021

윤동주 「서시」, 윤동주 동시 「반딧불」外

어렸을 때 동시를 읽었을 때, 동시는 다 그냥 그런 줄 알았다. 커서 접한 동시도 크게 다른 것은 없었다. 윤동주의 동시를 접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윤동주의 동시를 처음 보았을 때 '동시가 이렇게 마음에 와닿을 수도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윤동주의 동시를 처음 접한 것은 이 책을 통해서였다. '나태주 시인이 들려주는' 윤동주 동시집이다. 나태주 시인이 손주에게 이야기해 주듯이 해설해 주는 책인데, 기획을 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왜 시 안 읽어?'가 아니라 '이런 것도 있단다'라며 조곤조곤 알려주는 느낌이랄까. 할아버지가 손주를 위해 고른 시이니 오죽이나 좋은 시를 엮었을까. 진심이 담긴 시 모음집이다.


엄마와 아기가 나란히 읽는 시.
아빠와 또 아기가 함께 읽는 시.
선생님과 학생이 번갈아 읽는 시.
(책 속에서)


윤동주 시인에게 이런 동시들도 있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는 책이었다.



서시

이 책의 처음에는 우리가 다들 아는 윤동주의 「서시」도 있다. 서시에 대한 나태주 시인의 설명을 잠깐 볼까?



'서시'란 시집의 맨 앞에 쓰는 시를 말한다. 머리글이나 마찬가지인 글이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랑하는 시인이 윤동주 시인이고 또 윤동주 시인의 시 가운데서 가장 많이 사랑하는 작품이 바로 이 시란다. …(중략)… 이 작품은 우리의 마음에 환한 등불 하나를 밝혀주는 글이란다. 우울한 날 읽으면 마음이 좋아지고 쓸쓸한 날 읽으면 마음에 용기가 생기는 글이란다. 누구나 많이, 아주 여러 번 읽어서 외워두었으면 하는 글이란다. 지원아, 그래서 할아버지도 외우는 글이란다. (책 속에서)



이 시는 처음에 '서시'가 아니고 책의 '머리글'로 쓴 글이었다고 한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시집의 제목도 짓고, 머리글로 이 글도 준비해두었는데, 결국 윤동주의 시편은 유고시집으로 세상에 나온 것이다. 이 시를 1948년 윤동주 유고시집을 낼 때 남은 사람들이 이 글에 제목을 붙여 '서시'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보면 윤동주의 「서시」가 달리 보일 것이다.





서시 /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반딧불

윤동주의 다른 시들은 워낙 유명해서 학창 시절에 열심히 외우고 시험 문제도 풀었다. 하지만 윤동주의 동시는 다소 생소했다. 이 책을 통해 윤동주의 동시를 하나씩 살펴보다가 「반딧불」이라는 시에서 감탄하고 말았다. 반딧불을 부서진 달 조각이라고 표현하다니!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면 그렇게 표현하기 힘들었으리라.




반딧불 / 윤동주

가자 가자 가자
숲으로 가자
달 조각을 주으러
숲으로 가자.


그믐밤 반딧불은
부서진 달 조각,

가자 가자 가자
숲으로 가자
달 조각을 주으러
숲으로 가자.




이제 막 봄이 되었는데, 봄을 어떻게 표현할까. 동시로 들려주는 이 분위기만으로도 봄날의 어느 순간이 상상이 된다. 평화롭고 따뜻하고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그 장면 말이다. 윤동주는 이 짧은 표현으로 그 많은 것을 담아냈다.


봄 / 윤동주


우리 애기는
아래 발치에서 코올코올,

고양이는
부뚜막에서 가릉가릉,

애기 바람이
나뭇가지에서 소올소올,

아저씨 햇님이
하늘 한가운데서 째앵째앵.



굴뚝



굴뚝 / 윤동주


산골짜기 오막살이 낮은 굴뚝엔
몽기몽기 웨인 연기 대낮에 솟나,

감자를 굽는 게지 총각애들이
깜박깜박 검은 눈이 모여 앉아서

입술이 꺼멓게 숯을 바르고
옛이야기 한커리에 감자 하나씩.

산골짜기 오막살이 낮은 굴뚝엔
살랑살랑 솟아나네 감자 굽는 내

이야기가 들어있는 이런 작품 좋다. 눈앞에 그 장면이 그려지니 말이다. 장난꾸러기 동네 아이들이 모여서 입술 까맣게 호호 불어가며 감자를 구워 먹는 그런 장면 말이다. 요즘은 그럴 수 없으니 더욱 아련한 그 시절의 기억일 것이다. 상상만으로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은 글의 힘이다. 특히 짤막한 시 한 편으로 독자들의 마음속에 그림 한 편을 뚝딱 그려낼 수 있으니 시의 힘은 대단하다.



굴뚝 연기처럼 옛이야기 피어오르는 그런 기억이 나에게 있었던가. 문득 떠올려본다. 숯에 불 붙이는 거 그냥 쉽게 될 줄 알았는데, 종이를 한참 태워도 옮겨붙지 않아서 고생했던 그 순간이 떠오른다. 숯에 겨우겨우 불을 붙여서 노가리 구워 먹으면서 이야기꽃 피우던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 어느 날도 세월이 흐르면 추억이 되리라. 이 시를 읽으며 다들 자신의 과거 기억 속으로 시간 여행을 하게 될 것이다.



오늘은 윤동주의 동시를 위주로 살펴보았다. 이 책은 제공받은 시집이고 종종 꺼내들어 감상하는 시간을 보냈다. 매일 시를 읽겠다고 생각하는 기간이라 이 책을 더욱 일부러라도 꺼내들었다. 동시라고 아이들만 읽는 시가 아니고, 오히려 아이 어른 누구나 함께 읽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윤동주 동시집이라면 말해 무엇하랴. 읽을 때마다 내 마음을 따뜻하고 포근하게 감싸주는 동시여서 여운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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