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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접몽 Mar 15. 2021

인생 최고의 무지개를 보던 날


그칠 것 같지 않은 비가 내리고 나서 하늘을 보면 무지개가 떠있는 경우가 있다. 그때 그 무지개는 설렘과 희망을 주기도 한다. 오늘은 문득 '무지개'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다.



살면서 몇 번은 무지개를 만난다. 그 빛깔에 설레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그냥 그럭저럭 지나가기도 한다. 하지만 한 번의 설렘으로 나머지 시간이 채워지기도 한다. 나에게는 그랬다. 잊을 수 없는 그 한 번의 만남이 내 기억 속의 무지개에 대한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정방폭포에서 본 무지개



사실 무지개는 분수라든가 폭포 밑에서도 자주 보이는데, 무언가 진짜 무지개 같지는 않은 느낌이다. '다 그런 거지 뭐'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아니면 '해 뜨고 물 있으면 다 생기는 거 아니야?' 같은 멋없는 말이나 하고 만다. 아니, 사실 그런 말은 속으로 삭인다. 내가 별 감흥이 없다는 것은 숨기고 싶으니 말이다. 그냥 마음의 소리는 조용히 그런 말이나 하고 있다.



이 사진은 정방폭포에 갔을 때 본 무지개를 담은 사진이다. 오전 시간이었다. 해 뜨고 폭포수 떨어지면 다 그렇게 무지개 생기고 그런 것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참 멋없다.



윌리엄 워즈워드의 시 「무지개」를 접한 것은 어린 시절이었다. 나는 그 시가 이해되지 않았다. 다 커서도 그랬다. 어릴 때에도 어른이 된 후에도 그냥 그랬다. 그러니 그 시가 어렸을 때에도 커서도 별로 와닿지 않았다. '그때' 이전에는 말이다.



그날은 비가 엄청 내리고 갠 날이었다. 가족이 갑자기 아픈 적이 있는 사람은 알 것이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고 그래서 나 자신이 너무 초라하고, 그냥 눈물만 나는 시기가 있다. 그때가 그랬다.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어떻게 살아냈는지 잘 모르겠다. 병원에서 환자와 보호자들을 위해 영화 상영을 해주는데, 기다리는 동안 뽀로로를 틀어주었던 적이 있다. 뽀로로를 보면서 울고 있던 내 모습을 보며 문득 내가 미쳤다고 생각되었다. 인생에서 제일 어두웠던 기간이다.



그 당시 엄마가 많이 아프셔서 병원에 입원해있었고, 나는 제주시에서 서귀포시로 매일 부지런히 오갔다. 지금도 제주에 온 것에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아서 후회까지는 안 하지만, 서귀포에 마땅한 병원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단점이었다. 제주시에서 서귀포로 넘어오는 5.16도로에서 그날 갑자기 무지개가 떴다. 눈물 나도록 경이로웠다. 힘내서 살아가라고 격려해 주는 자연의 메시지였다. 그것은 잘 해낼 수 있다는 희망 같은 것이었다. 그것이 내 인생 최고의 무지개였다.



무지개는 비가 내린 후에 뜬다. 인생에서도 힘든 시기를 견디고 난 후에 무지개 같은 희망이 보이는 것이다. 그때의 무지개는 내가 힘든 때였기 때문에 더 처절하게 빛났던 건 가보다.



누구에게나 힘든 시기는 있는 법이고, 힘든 시간을 어떻게 견뎌서 살아내느냐에 따라 나 자신이 달라지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그 이후로 엄마도 회복세로 돌아서고 나도 안정을 찾은 것 같다. 한고비 넘기고 잘 살아낸 내가 대견하다. 오늘은 그때의 마음을 잊지 말고 자연의 경건 속에 어울려 살고자 한다.





내 가슴 설레이고


하늘의 무지개 바라보면
내 가슴 설레이고
어릴 때에도
어른된 지금에도
늙어서도 그러하려니.
아니면 목숨은 죽은 것!
어린애는 어른의 아버지.
나의 여생, 자연의 경건 속에
어울려 살고파

(『세계명시선집 워즈워드』 중에서)






무지개   /  윌리엄 워즈워드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보면
내 마음 뛰노라
어렸을 때도 그러하였고
어른된 지금도 그러하다
앞날 늙어서도 그럴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난 죽으리라.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원컨대 내 생애의 하루하루가
순진한 경건으로 이어가기를 …….

(미니시집 『영원한 세계의 명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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