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어린 시절 어느 순간이 떠오른다. 친척들이 다들 모였는데, 그중 나와 동생 만이 족발을 먹지 않는 거였다. 어른들은 이 맛있는 것을 왜 안 먹느냐며 먹을 줄 몰라서 그러는 거라고 자꾸 권하신다. 나는 알았다고 하면서 그냥 조용히 안 먹고 있었는데, 동생은 쭈뼛쭈뼛 거리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저는 남의 발이랑 머리는 안 먹을래요." 소신 발언을 한 이후 다들 더는 권하지 않으셨다.
혹시 오해는 없으시기 바란다. 그냥 어떤 음식을 좋아하든 그건 취향 차이일 뿐, 옳고 그름을 따지거나 나와 같은 방식을 강권하지는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유명한 여우와 두루미 이야기 있지 않은가. 그냥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맛있게 한 끼 먹으면 되는데,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다른 이도 좋아해야 한다는 것은 좀 힘들다.
나는 요리를 하는 데에 서툴다. 그만큼 시간 투자를 하고 싶어 하지 않아서일 것이다. 특히 재료 다듬는 데에도 만만치 않게 시간이 허비된다는 것을 안다. 너무 힘들다. 그냥 후다닥하면서 시간도 안 걸리고 간단한 음식을 찾고 있다. 몇 가지 찾은 걸로 돌려 막기 하며 살아가고 있다. 요리에 관심과 능력이 있는 분들은 거기에 시간을 보내며 뿌듯하시겠지만 난 왜 이리 취미가 붙지 않는지 살짝 반성 같은 것도 해보았다.
식재료 중 시간 투자가 필요한 것이 있다. 특히 콩나물. 손이 많이 간다. 다듬지 않자니 성의가 없어 보이고, 다듬자니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다. 콩나물을 다듬어야만 한다면 나는 차라리 콩나물을 안 먹는 걸로 선택을 하는 중이었다.
그렇게 한동안 손을 대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시를 읽어보니 좀 더 당당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옛날 "저는 남의 발이랑 머리는 안 먹을래요."라고 소신껏 말했던 동생의 발언을 떠올리며, 콩나물에 대한 예의를 말하는 시인의 마음을 생각해 본다.
콩나물에 대한 예의 / 복효근
콩나물을 다듬는답시고
아무래도 나는 뿌리를 자르진 못하겠다
무슨 알량한 휴머니즘이냐고
누가 핀잔한대도
콩나물도 근본은 있어야지 않느냐
그 위를 향한 발돋움의 흔적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하지는 못하겠다
아무래도 나는
콩나물 대가리를 자르진 못하겠다
죄 없는 콩알들을 어둠 속에 가두고
물 먹인 죄도 죄려니와
너와 나 감당 못할
결핍과 슬픔과 욕망으로 부풀은 머리 쥐어뜯으며
캄캄하게 울어본 날들이 있잖느냐
무슨 넝마 같은 낭만이냐 하겠지만
넝마에게도 예의는 차리겠다
그래, 나는 콩나물에게
해탈을 돕는 마음으로
겨우 콩나물의 모자나 벗겨주는 것이다
슨 변명 같기도 하고, '그래, 이게 뭐 어때서?' 하는 마음도 생긴다. 그동안 콩나물을 바라보며 다듬지 않는 나의 게으름만 보았다면, 이제는 콩나물의 해탈을 돕는 마음으로 모자나 살짝 벗겨주고 말아야겠다. 다음에 장에 가면 콩나물 한 봉지 사가지고 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