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첫 줄은 신神이 준다"라고 폴 발레리가 말했다. 이 말이 인상적인 것은 가볍게 글을 쓸 때에도 처음에 무엇을 써야 할지 망설이는 경우가 많으니, 시는 오죽할까 하는 생각에서이다.
'나는 시를 잘 몰라'라고 생각해도 의외로 시의 첫 줄을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시작하는 T.S. 엘리어트의 「황무지」도 그렇고,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는 유치환의 「깃발」도 그렇다.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등등 잠깐 생각해 봐도 시의 첫 줄이 줄줄 떠오른다. 시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의 틈에도 비집고 들어가서 시적 감각을 채워주는 것이리라.
시는 첫 문장에서 '아!'하고 감탄해야 오래간다. 예전에 누군가가 정호승의 「수선화에게」 낭송을 할 때에도 첫 줄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한 마디 읊었을 뿐인데, 사람들이 감탄사를 내뱉고 웅성웅성하면서 일단 첫 줄에서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다음에는 당연히 조용히 집중하며 계속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이 시 「미라보 다리」가 있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이 흐르고
우리들의 사랑도 흘러간다'
이 첫 줄만으로도 시선을 잡아끄는 묘미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그다음은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은 아폴리네르의 「미라보 다리」를 감상하는 시간을 보내기로 한다.
아폴리네르
1880년 로마에서 출생.
1901년 《라 그랑 프랑스》에 시 발표를 시작.
1913년 『알코올』 간행
1918년 『칼리그람』 간행. 사망.
내가 정말 '아폴리네르'에 대해 이름만 알고 있었구나, 생각하게 된 것은 해설을 읽고 나서였다. 본격적으로 해설을 읽어보자.
기욤 아폴리네르, 정확히 말하자면(@#$%@#&^# 아 길다)라는 긴 이름의 시인은 그 출생 과정부터 기구하다. 그는 제법 귀족가문의 출신임을 은근히 자랑하고 있었으나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는 채(그는 평생 그의 아버지를 보지 못했다) 세상에 태어난 고아이다. 그의 어머니는 폴란드계 여성이었으며 아버지는 이탈리아의 대성정이었다고 하나 확실한 것은 알 수 없다. 그는 유년시절부터 모나코와 니스에서 프랑스 교육을 받았으나 정식으로 프랑스 국적을 얻고 귀화한 것은 1916년, 그가 사망하기 2년 전이었다. (148쪽, 해설 중에서)
계속 읽어나가다 보면, 피카소와 브라크 같은 화가, 자리와 막스 자콥 같은 지인들과 교우하게 된 것은 그들이 같은 예술의 길을 지향함에 있어서 서로 이해와 공감을 나눌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고, 초기에는 시인보다 예술평론가로서의 활동이 더 많은 게 사실이었다는 말도 있다. 아폴리네르가 시인으로서의 명성이 높아지게 된 것은 1913년에 나온 시집 『알코올』에 의해서라고. 이 시집의 초두에 나오는 「지대」는 그 감각적인 참신성으로 그리고 잇달아 수록된 너무나 유명한 「미라보 다리」는 그 서민적인 정서로 각각 독자를 매혹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아폴리네르의 생애는 너무나 짧았다. 1880년에 태어나 1918년 사망했으니 정말 짧다면 엄청 짧은 셈이다. 1916년 그가 뜻하지 않게 유탄에 맞아 수술을 받아 가까스로 우선 목숨은 건졌으나 그 후유증에서 불행의 시초는 시작된다고. 그는 1918년 5월 작크린 콜브라는 여성과 결혼했으나 같은 해 11월 9일 타계하고 말았으니, 병명은 폐충혈이었으나 유탄에 의한 부상과 그 후유증이 그의 건강을 해쳤으리라는 것이 공통적인 견해라고 한다.
시 감상을 먼저 해보고자 했으나, 아폴리네르의 생애에 먼저 눈길이 갔다. 내 맘대로 감상 중이니 이 또한 눈길 가는 대로 하고자 한다. 이제 그 유명한 「미라보 다리」를 감상해보아야겠다.
미라보 다리 / 아폴리네르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 강이 흐르고
우리들의 사랑도 흘러간다
허나 괴로움에 이어서 오는 기쁨을
나는 또한 기억하고 있나니
밤이여 오라 종은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있다
손과 손을 붙들고 마주 대하자
우리들의 팔 밑으로
미끄러운 물결의
영원한 눈길이 지나갈 때
밤이여 오라 종은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있다
흐르는 물결같이 사랑은 지나간다
사랑은 지나간다
삶이 느리듯이
희망이 강렬하듯이
밤이여 오라 종은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있다
날이 가고 세월이 지나면
흘러간 시간도
사랑도 돌아오지 않고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 강만 흐른다
밤이여 오라 종은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있다
비가 내린다 / 아폴리네르
추억 속에서 죽기나 했듯이 여인들의 목소리로 비가 내린다
비가 되어 내리는 건 내 인생의 복된 해후들
오 낙수여
성난 구름이 으르렁대기 시작한다 음향의 도시
이 우주에서
뉘우침과 서러움이 옛 노래로 흐를진대 이 빗소리를 들으라
아래위로 그대를 묶어놓는 이 인연의 줄이 내려오는
소리를 엿들어봐라
*원시는 이른바 입체파 시로서 비 오는 광경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하여 어순을 수직형으로 배열하고 글씨 모양도 다양하나 여기서는 역자가 이를 일반적인 형식으로 고쳐 썼다. 원시의 모습도 그대로 소개한다.
오늘은 아폴리네르의 「미라보 다리」와 「비가 내린다」를 감상해보았다. 「미라보 다리」에서 반복되는 문장 중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있다'가 오늘따라 애잔하게 다가온다. 한번 흐른 강물은 되돌아오지 않고, 지금의 나 또한 미래의 어느 날에 보면 되돌아올 수 없는 머나먼 과거가 되어 있겠지. 「비가 내린다」는 입체파 시의 독특함에 감상을 해보았다. 입체파 시에 대한 호기심도 있고, 이 시를 통해 시의 내용보다 형식에도 집중해본다. 비도 강물도 세월도 사랑도 그 모든 것도 다 흘러가니, 아쉬워 말고 지금 이 순간을 재미있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오늘의 감상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