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해보니 그 당시 시집이 있어서 무척 반갑다고 생각했는데, 앗. 개정판인가 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그 이전의 것, 1990년 1월 20일 발행본이다. 시는 이 책에 표현된 대로 그대로 옮겨보았다. 오타가 아니고 이 책을 기준으로 그대로 옮긴 것이라는 점을 밝힌다.
그리고, 이 사진, 영화 <동주>에서 봤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이 사진을 보고 나서야 송몽규를 제대로 보았다. 강하늘 배우도 연기를 잘했지만, 송몽규 역할을 했던 박정민 배우도 영화를 풍성하게 해주어 내심 놀랐던 영화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몰입해서 본 영화였다.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또 한 번 보고 싶었는데 여전히 기회를 못 잡고 있다. 어쨌든 이 시집의 앞쪽에는 사진들이 첨부되어 있으니 훑어보고 본격적으로 시 감상에 나선다.
또 윤동주 시집을 꺼내 들었다. '또?'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으실 수 있겠다. 암요. 좀 그렇긴 하다. 하지만 감상할 시가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오히려 책장에 시집이 많아서 어떤 것을 꺼내 들지 고민이긴 하다. 하지만 지금 내 마음이 가는 시를 내가 더 본다는데 뭐라 하지 마시고 어여삐 보아주시면 좋겠다. 흠흠.
오늘 내가 또다시 윤동주의 시집을 꺼내 든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이상하다. 윤동주의 시는 이미 자주 접했다. 어렸을 때도 커서도 마찬가지다. 시를 읽겠다고 생각하며 그랬고, 영화를 보면서도 그랬으며, 시험문제 푼다고 열심히 시를 외우고 베껴 적고 다 하면서 컸는데, 참 이상하다. 이런 적이 없었다. 며칠 전 「별 헤는 밤」을 직접 낭송하다가 찌르르~ 전율이 느껴지며 나도 놀랐다. 나에게도 시를 감상하다가 이런 감정이 생기다니! 어서 더 읽어보자.
그렇게 오늘 꺼내 든 시집은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이다.
검색해보니 그 당시 시집이 있어서 무척 반갑다고 생각했는데, 앗. 개정판인가 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그 이전의 것, 1990년 1월 20일 발행본이다. 시는 이 책에 표현된 대로 그대로 옮겨보았다. 오타가 아니고 이 책을 기준으로 그대로 옮긴 것이라는 점을 밝힌다.
그리고, 이 사진, 영화 <동주>에서 봤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이 사진을 보고 나서야 송몽규를 제대로 보았다. 강하늘 배우도 연기를 잘했지만, 송몽규 역할을 했던 박정민 배우도 영화를 풍성하게 해 주어 내심 놀랐던 영화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몰입해서 본 영화였다.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또 한 번 보고 싶었는데 여전히 기회를 못 잡고 있다. 어쨌든 이 시집의 앞쪽에는 사진들이 첨부되어 있으니 훑어보고 본격적으로 시 감상에 나선다.
새로운 길 / 윤동주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문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1938.5.10.
십자가 / 윤동주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단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1941.5.31
길 / 윤동주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우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1941.9.30.
오늘은 문득 <십자가> 시가 마음을 치고 들어온다. 단순히 문자로서, 희망사항으로서, 시를 쓴 것이 아니라, 실제 그의 삶이 그러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문득 울컥한다. 너무 안타깝고 미안하고 속상하다는 생각으로 마음에 묵직한 돌덩이 하나 얹는 듯한 느낌이 드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