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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접몽 Mar 22. 2021

김소월 시 「진달래꽃」外 감상하기

예전에 어느 클래식 음악회에 간 적이 있다. 그때 연주된 곡은 모두 낯선 곡으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사람들에게 익숙한 유명한 곡보다는 알려지지 않은 좋은 곡들을 엄선해서 연주했을 텐데, 사실 나에게는 무언가 불편하고 낯선 느낌이었다. 다른 클래식 음악회에서 감상하고 나서야 나는 불편했던 그 마음의 원인을 알았다. 우리는 너무 낯선 것으로만 둘러싸이면 새롭다기보다는 불편한 심정도 함께 느끼는 것이다. 익숙한 무언가에서 낯선 것 한두 가지 정도만 톡톡 튀듯 구성되어 있어야 무언가 새로 얻은 것 같고 독특하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다.



그때 일이 왜 떠올랐냐면, 시 감상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껏 '뭐 새로운 것 없나?'라는 생각으로 안 보던 시, 잘 몰랐던 시를 발굴하고자 했으나, 시간과 노력이 너무 드는 데에다 시 감상에 대한 부담감이 커지는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유명 시를 감상하지 않은 것도 아니면서;;;) 그래서 이왕 시 감상의 시간을 하루에 조금씩 빼둔 상황이니, 그 시간을 효율적으로 알차게 보내기 위해서는 유명한 시들부터 우선 확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감상할 시는 한국 명시 모음집 『내 영혼의 숲에 내리는 마음의 시』에 수록된 유명 시인 중 골라보았다. 다들 아는 그 작품, 시험을 보기 위해서는 읽었지만 온전히 감상만 하기 위해서는 읽어본 기억이 없는 그 작품, 김소월의 「진달래꽃」부터 감상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한국인의 전통적인 한을 노래한 시인 김소월의 작품을 감상해본다.



김소월(1902년~1934)


1902년 평북 정주군 곽산면 남산리에서 출생.

향리 독서당에서 한문 수학을 받다가 오산학교 중학부에 입학하여 안서 김억에게 배움.

21세 때 배재고등학교 5학년에 편입하여 왕성한 창작활동을 함. 배재고등학교(7회)를 졸업한 후 일본 동경으로 건너가 체류하다가 광동 대지진으로 고향에 돌아와 조부가 경영하고 있는 광산 일을 돕다가 『동아일보』 지국을 운영하기도 했다.

1934년 12월 24일 33세의 짧은 나이로 처가의 고향에서 세상을 떠남.



*그의 영정사진을 기초로 1990년 제작된 초상화라고 한다.

*시의 표기는 『내 영혼의 숲에 내리는 마음의 시』에 따른다.


진달래 꽃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히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초혼





산산히 부서진 이름이어!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어!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어!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어!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자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어!


사랑하던 그 사람이어!




붉은 해는 서산 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음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음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 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어!


사랑하던 그 사람이어!


사랑하던 그 사람이어!





가는 길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 번…




저 산에도 까마귀, 들에 까마귀,


서산에는 해진다고


지저귑니다.




앞 강물, 뒷 강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 오라고 따라 가자고


흘러도 연달아 흐릅디다려






산유화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적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없이


꽃이 지네





이 시들을 적으면서 나는 학창 시절 교실 그 장면을 떠올렸다. 선생님이 "시~작!" 하시면 다들 한목소리로 시를 낭송했다. 시낭송법에 따른 그런 것이 아니라, 그런 것 있지 않나. 학생들한테 책 읽으라고 하면 다 같이 박자 맞추어 읽는 그런 소리 말이다. 낭랑하면서도 다들 한목소리로 시를 읊어나가고, 간혹 덜 외운 아이들은 립싱크를 하며 묻어가기도 했다. 여기 적은 시들은 그때 다 함께 외웠던 시들이다. 그때 그 아이들은 다들 어디서 무얼 하며 지낼까.



또 하나, 내가 시를 감상하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여태껏 김소월 시를 떠올리지 못한 것은 클래식 음악을 감상하겠다고 하면서 베토벤이나 모차르트 음악을 뒤로 미룬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새로운 시 감상보다는 이미 알고 있는 시를 감상하면서 짜릿한 여운을 음미하는 것도 필요하다. 오늘은 김소월 시 「진달래꽃」 「초혼」 「가는 길」 「산유화」 를 감상하며 한의 언어를 음미해보는 시간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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