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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접몽 Mar 23. 2021

김춘수 「꽃」 外 감상하기

매일 시를 감상하기로 하고 나서 나의 좋은 변화를 떠올려보자면, 그냥 무덤덤하게 지나치던 것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특히 '꽃' 말이다. 꽃이 피기 전부터 꽃이 피는 것을 기다리고, 꽃이 핀 이후에도 자꾸 쳐다보게 된다. 자세히 보니 제각각 다른 매력이 있다. 더 이상 '먹지도 못하는 거'라고 바라보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그냥 노란 꽃 피었네, 빨간 꽃 피었네, 참 예쁘다 말고 자세히 관찰하고 마음으로 보기로 했다.



사진은 마당에 피어난 철쭉이다. 예전이라면 오른쪽 사진처럼 다 핀 후에야 알아채고는 '꽃이 피었군.'이라고 생각하고 말 것을 올해에는 꽃봉오리부터 피어나서 질 때까지 매일매일 바라보고 있다. 수선화가 먼저 그 길을 걸었고, 이번에는 철쭉과 산당화가 그 뒤를 잇고 있다. 때를 달리해서 단체로 피었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계절이 흐르고 있다.



이쯤 되면 우리들 다 아는 그분의 그 시가 떠오를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그 시'를 감상하기로 한다. 바로 '김춘수의 꽃' 말이다.



인터넷 교보문고 책 소개를 살짝 볼까? 깊이 생각하지 말고, 그냥 '그렇구나' 생각하고 넘어가 본다. 사실 시를 너무 멀게 느껴지게 만든 것이 이런 설명이긴 하다. 이제 시험 안 봐도 되니 그냥 통과!




김춘수 시인은 릴케(R. M. Rilke) 등의 영향을 받아 존재론의 입장에서 사물의 내면적 깊이를 추구했다. 그리하여 오늘날 <존재 탐구의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다. 서정성이 일체 배제된 관념적이고 주지적인 작품을 통해 사물의 본질을 포착하고, 그것을 실재적인 형상으로 표현해내고 있다. 이것은 언어를 '존재의 집'으로 파악한 하이데거의 명제와 비슷한 시적 발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김춘수의 시세계는 간추리면 인상파풍의 데생과 릴케류의 감성에서 출발한 그의 시가 첫째로 존재탐구, 둘째로 서술적 이미지, 셋째로 탈이미지, 넷째로 미적·종교적 성찰의 세계로 전개된다는 특성을 보여준다.

이 시집에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한 때 청소년들의 애송시의 선두 자리를 다투던 작품인 「 꽃」이외에 「꽃을 위한 서시」, 「처용단장」등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김춘수 시인의 대표작들을 모아 놓았다.

인터넷 교보문고 책소개 중에서

이 책 역시 한국대표시인 100인선집이며, 제38권 김춘수 시인의 『꽃을 위한 서시』이다. 그중 「꽃」은 압도적으로 우리집에서도 유명했나 보다. 책을 펼치자마자 책이 반으로 갈라져서 그 시가 바로 나온다. 그 시부터 감상해보는 시간을 갖는다.



*표기는 미래사 『꽃을 위한 서시』에 따른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꽃2




바람도 없는데 꽃이 하나 나무에서 떨어진다. 그것을



주워 손바닥에 얹어놓고 바라보면, 바르르 꽃잎이 훈김



에 떤다. 花粉도 난(飛)다. 「꽃이여!」라고 내가 부르면,



그것은 내 손바닥에서 어디론지 까마득히 떨어져간다.



지금, 한 나무의 변두리에 뭐라는 이름도 없는 것이



와서 가만히 머문다.





분수




1



발돋움하는 발돋움하는 너의 자세는



왜 이렇게



두 쪽으로 갈라져서 떨어져야 하는가,




그리움으로 하여



왜 너는 이렇게



산산이 부서져서 흩어져야 하는가,




2



모든 것을 바치고도



왜 나중에는



이 찢어지는 아픔만을



가져야 하는가,




네가 네 스스로에 보내는



이별의



이 안타까운 눈짓만을 가져야 하는가.




3



왜 너는



다른 것이 되어서는 안 되는가,




떨어져서 부서진 무수한 네가



왜 이런



선연한 무지개로



다시 솟아야만 하는가,






꽃을 위한 序詩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



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



미지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




존재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너는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진다.



눈시울에 젖어드는 이 무명의 어둠에



추억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



나는 한밤내 운다.




나의 울음은 차츰 아닌 밤 돌개바람이 되어



탑을 흔들다가



돌에까지 스미면 金이 될 것이다.




……얼굴을 가리운 나의 新婦여,







생각해 보니 꽃들은 어느 순간에든 자기들끼리 열심히 피고 지고 성장하며 매일 분주하게 세포분열을 하고 있을 텐데, 나는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며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바라보는 그 순간에, 바라보며 인식할 때에 비로소 나에게 의미가 되어 다가온다. 꽃도 사람도 그 무엇도, 오늘은 인식하고 이름을 불러주며 의미를 찾아주고 싶다. 또 뭐가 없을까? 오늘은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으로 기억할 무언가를 하나씩 떠올려보는 시간을 갖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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