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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접몽 Mar 29. 2021

이상화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통곡」 감상

어느 해였던가. 왜 그런 말 있지 않은가. 안 좋은 일은 떼로 몰려서 온다고 말이다. 그 상황을 어떻게 견뎌내느냐에 따라 더 단단해지기도 하고 한없이 부서져버리기도 하는 것인가 보다. 그해 겨울, 나는 이리저리 부딪치고 찔리고 정신 못 차릴 정도로 살아가는 것이 힘에 겨웠다. 그 당시에 문득 정신 차리고 보니 아직 봄이라기에는 차가운 날들이었다. 이러다가 올해는 봄이 오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마다 봄은 왔는데도 말이다.



하물며 나라 잃은 슬픔 속에서는 오죽했을까. 오늘은 그 시절 그 마음을 가늠해보며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감상해보기로 한다.



이상화 (1901년~1943)

1901년 경북 대구에서 출생. 14세 때까지 백부가 운영하는 사숙에서 엄격한 교육을 받았다. 그 후 서울 경성중앙학교에 입학하여 야구 투수로 활약하는 등 시작에도 전념하였다. 일본으로 건너가 프랑스 유학을 준비 중에 관동 대지진을 목격하고 귀국하자, 현진건, 홍사용, 박종화, 김팔봉, 나도향 등 「백조」동인들과 어울림. 한편 의열단 이종암 사건에 연루되어 구금 고문 폭행 당함. 이 때가 작품활동이 가장 왕성하여 일제에 대한 강력한 저항 의식을 바탕으로 평가되고 있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발표. 무보수 교사로 학교 생활을 하면서 1940년 대륜중학교를 세웠다. 1943년 위암으로 사망. 그의 나이 43세였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 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나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끄을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국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가씨 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웁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 나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다오



살찐 젖가슴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팔목이 시도록 매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우스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 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잡혔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통곡





하늘을 우러러



울기는 하여도



하늘이 그리워 울음이 아니라



두 발을 못 뻗는 이 땅이 애달파



하늘을 흘기니



울음이 터진다



해야 웃지 마라



달도 뜨지 마라



겪어보지 못했지만 힘든 그 시절을, 통곡할 만큼 힘든 그 시절을 짐작해본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떠올리며 이상화의 시를 감상하기로 했는데, 「통곡」이라는 시도 내 마음에 훅 들어온다. 오죽했으면 이런 마음이었을까. 이상화의 시는 칼로 베이는 듯 그 시절의 아픔이 느껴진다. 통곡으로도 모자랄 그 시대의 아픔을 시에 잘 녹여냈다. 오늘은 그 마음을 느껴보는 시간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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