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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접몽 Mar 30. 2021

김수영 「폭포」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풀」

제주도에 미세먼지가 매우나쁨 단계다. 어제 보니 공기는 뿌옇고 한라산이 보이지 않는다. 이럴 때에는 나만의 기우제를 위한 노력을 소심하게 해본다. 비라도 내려야 이 상황이 나아질 테니 말이다. 내가 빨래를 하면 비가 오는 경우가 많았으니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빨래거리를 찾아서 세탁기도 한번 돌리고, 세차를 하면 비가 오던데 아이쿠 그건 외출하지 말아야 하니 관두고, 그리고 이거다. 김수영의 「풀」을 읊는 거다.



일기예보 상관없이, 아무런 이유 없이, 김수영의 「풀」을 떠올리면 비가 내리는 것이 우리 집 룰이다. 그냥 묻지도 따지지도 마시고, 김수영의 「풀」을 함께 감상해 주시며, 이왕이면 소리 내어 읊어주시길 바랍니다. 제주도에 비가 내려 미세먼지 싹 씻겨내리기를 함께 기원해 주시면 영광으로 알겠습니다.






김수영 연보
1921년 11월 27일 서울 종로구 관철동에서 부 김해 김씨 태욱과 모 순흥 안씨 형순 사이의 8남매 중 장남으로 출생.
1928년 서울 효제국민학교 입학. 6학년 때 장티푸스 뇌막염 등으로 1년 학업 중단.
1941년 도일. 동경의 고등예비학교에 다니는 한편 연극에 심취.
1943년 조선학병 징집을 피해 일본에서 귀국. 한 해 앞서 이주한 가족을 따라 만주 길림성으로 이주.
1949년 김경린·임호권·박인환·양병식 등과 함께 5인 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간행
1955년 1·4후퇴 때 수원으로 피난가 있던 가족과 합류. 서울 성북동으로 이사. 평화신문사 문화부 차장 근무(6개월간).다음해 서울 마포구 구수동 41의 2로 이사
1960-1968년 잠시 서라벌예대 강사, 서울대·이대·연대 특강.
1968년 6월 15일 상오 11시 10분께 귀가 도중 마포구 구수동 66 앞길에서 버스에 치여 적십자병원에서 응급가료타가 다음날 아침 8시 50분 숨을 거둠.

(출처: 김수영 시선 거대한 뿌리 중에서)






폭포





폭포는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하여 떨어진다는 의미도 없이


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고


고매한 정신처럼 쉴 사이 없이 떨어진다




금잔화도 인가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폭포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곧은 소리는 소리이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취할 순간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


나태와 안정을 뒤집어놓은 듯이


높이도 폭도 없이


떨어진다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


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30원을 받으러 세번씩 네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로


가로놓여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14야전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스들과 스펀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펀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있다 절정 위에는 서있지


않고 암만 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장이에게


땅 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장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들에게 20원 때문에 10원 때문에 1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1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김수영의 「풀」은 교과서에도 나와서 학창 시절부터 외웠고 시험 문제도 많이 풀었지만, 이 시가 교통사고로 사망하기 2주 전에 썼다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았다. 『시인을 찾아서』를 읽으며 말이다.




김수영 시인의 시비詩碑는 처음에는 도봉산에 있던 본가 옆에 있었다. 그러나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 삶의 근거지를 옮기게 되자 1991년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그때 파묘하고 이장하는 과정에서 시인의 유해는 화장을 하고 그 유골을 수습하여 시비 밑에 묻었다. 그러니까 김수영 시비는 다른 시비들과는 달리 묘비와 시비를 겸한 '묘비시'가 된 것이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김수영의 시 「풀」 중에서 둘째 연

김수영 시인의 부인 김현경 씨에 따르면 이 시는 1968년 5월 29일에 썼다고 한다. 그러니까 사망 2주일 전에 쓴 것이다. 시의 내용이 마치 자신의 운명을 예고하는 '유서'같다는 느낌이다.
김현경 씨는 "이 시를 쓰던 날 밤에는 바람이 몹시 불었으며 탈고한 후 남편은 매우 만족해했다."고 증언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시에 대한 시인으로서의 자세와 시 정신의 끝은 존재에 대한 사랑에 꽂혀 있었다. 자학까지 하면서 시인은 그 길을 가고 있었다. 그 길가에서 자라나는 무성한 풀잎들, 시인의 가슴 속에는 언제나 그의 싱싱한 풀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을 것이다."

(출처: 『시인을 찾아서』 208~209쪽)



오늘은 김수영의 시를 감상하는 시간을 가져본다. 시 감상의 시작은 그저 비가 내려 미세먼지가 사라졌으면 하는 나의 작은 바람 때문이었지만, 시를 감상하고 김수영 시인의 생애를 읽어나가며 내 마음은 묵직한 무언가에 짓눌리는 느낌이다. 아, 삶이 무엇인지,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특히 나 또한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 소시민으로서 그 마음에 교차되는 무언가가 나를 한동안 휘감을 듯하다. 김수영 시인의 시와 생애 모두가 나를 뒤흔드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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