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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접몽 Apr 01. 2021

T.S. 엘리엇 황무지 4월은 잔인한 달

4월이 되면 떠오르는 시구가 있다.


'4월은 잔인한 달'


왜 잔인한지는 별로 궁금하지 않아서 한동안 몰랐고, 나중에 이 시의 내용을 알게 된 이후에도 사실 그건 상관이 없었다. 다들 '4월은 잔인한 달' 그 문장만을 인용했고 나에게도 그냥 잔인한 달이라는 문장 그대로 기억되고 있었으니 말이다.



4월 1일을 맞이했다. 4월 1일은 만우절이라며 가볍게들 거짓말을 주고받거나 알라딘 서점에서 가짜 책 찾기 이벤트를 하는 날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와 함께 충격적인 소식도 있던 날이다. 홍콩 배우 장국영이 이 세상을 떠났던 날도 4월 1일이고, 오래전 과친구의 사고사도 그날 있었다.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그런 일들이 일어났던 날이기도 하다. 잔인하긴 정말 잔인한 달이었다.



정말 작심하고 T.S 엘리엇 (Tomas Sterns Slior)의 황무지를 감상하고자 책을 펼쳐들자 나는 여러 가지로 놀라고 말았다. 먼저 '이게 이렇게 길었어?'라는 느낌에서 오는 기시감이다. 예전에 접했을 때도 마찬가지로 보자마자 '이게 이렇게 길었어?'라고 했는데 어쩜 그렇게 몇 년이 지나도 똑같은 반응인 건지. 그래도 이번에는 천천히 음미하며 감상의 시간을 가져보기로 한다.






황무지


1922





"정말 쿠마에서 나는 한 무녀가


항아리 속에 달려 있는 것을 똑똑히 내 눈으로 보았다.


애들이: '무녀야, 넌 무얼 원하니?' 하고 물었을 때 :


무녀는 대답했다 : '난 죽고 싶다.'



보다 훌륭한 예술가

에즈라 파운드에게





Ⅰ죽은 자의 매장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피우며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망각의 눈(雪)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작은 생명을 길러주며,



슈타른버거호 너머로 소나기와 함께 갑자기



여름이 왔지요.



우리는 가로수 아래에 머물렀다가



햇빛이 나자 호프가르텐 공원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한 시간이나 이야기했지.



저는 러시아 여인이 아닙니다. 출생은 리투아니아지만



진짜 독일인입니다.



어려서 사촌 대공집에 머물렀을 때



썰매를 태워줬는데 겁이 났어요.



그는 말했죠, 마리 마리 꼭 잡아.



그리곤 쏜살같이 내려갔지요.



산에 오면 자유로운 느낌이 드는 군요.



밤에는 대개 책을 읽고 겨울엔 남쪽으로 갑니다.



이 움켜잡는 뿌리는 무엇이며,



이 자갈더미에서 무슨 가지가 자라나오는가?



사람의 아들아, 너는 말하기커녕 짐작도 못하리라



네가 아는 것은 파괴된 우상더미뿐



그곳엔 해가 내려 쪼이고



죽은 나무에는 쉼터도 없고



귀뚜라미도 위안을 주지 않고



메마른 돌엔 물소리도 없다.



단지 이 붉은 바위 아래 그늘이 있을 뿐



(이 붉은 바위 그늘로 들어오너라)



그러면 너에게 아침에 네 뒤를 따르는 그림자나



저녁에 너를 맞으러 일어서는 네 그림자와는 다른



그 무엇을 보여주리라.



한 줌의 먼지 속에서 공포를 보여 주리라.





바람은 상쾌하게



고향으로 불어요



아일랜드의 님아



어디서 날 기다려주나?





"일년 전 당신이 저에게 처음으로 히아신스를 주었기에



사람들은 저를 히아신스 아가씨라 불렀어요."



-그러나 네가 팔에 꽃을 한아름 안고, 늦게,



머리칼이 젖은 채, 같이 히아신스 정원에서 밤늦게



돌아왔을 때



나는 말도 못하고 눈도 안 보여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니었다.



빛의 핵심인 정적을 들여다보며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바다는 황량하고 쓸쓸합니다.





유명한 천리안 소소스트리스 부인은



독감에 걸렸다. 그러나



영특한 카드 한 벌을 가지고



유럽에서 가장 슬기로운 여자로 알려져 있다.



이것 보세요. 그녀가 말했다.



여기 당신 카드가 있어요. 익사한 페니키아 수부군요.



(보세요, 그의 눈은 진주로 변했어요.)



이건 벨라돈나, 암석의 여인



부정한 부인이에요.



이건 지팡이 셋 짚은 사나이, 이건 바퀴,



이건 애꾸눈 상인





그리고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 이 카드는



그가 짊어지고 가는 무엇인데



내가 보지 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교살당한 사내의 카드가 보이지 않는군요.



물에 빠져 죽는 걸 조심하세요.



수많은 사람들이 원을 그리며 돌고 있군요.



또 오세요. 에퀴톤 부인을 만나시거든



천궁도를 직접 갖고 가겠다고 전해주세요.



요즘은 조심해야죠.





공허한 도시



겨울 새벽의 갈색 안개 밑으로



런던 다리 위로 많은 사람들이



그처럼 많은 사람을 죽음이 망쳤다고



나는 생각도 못했다.



이따금 짧은 한숨들을 내쉬며



각자 발치만 내려다보면서



언덕을 넘어 킹·윌리엄가로 내려가



성 메어리·울노스 성당이 죽은 소리로



드디어 아홉시를 알리는 곳으로



거기서 나는 친구를 만나



소리쳐서 그를 세웠다. "스테츤



자네 밀라에 해전 때 나와 같은 배에 탔었지!



작년에 뜰에 심었던 시체에 싹이 트기 시작했나?



올해엔 꽃이 필까?



혹시 때아닌 서리가 묘목을 망쳤나?



오, 개를 멀리하게, 비록 놈이 인간의 친구이긴 해도



그렇지 않으면 놈이 발톱으로 시체를 다시 파헤칠 걸



세!



그대! 위선적인 독자여! 나와 같은 자, 나의



형제여!"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황폐한 상황을 상징적으로 그린 작품으로,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하고, 단테, 셰익스피어 등의 작품을 시 곳곳에 인용하였다.




전편 433행으로, 전체를 '죽은 자의 매장', '체스 놀이', '불의 설교', '익사', '천둥이 한 말' 등 총 5부로 나누어 구성되어 있다. 마지막에서는 황무지에 단비가 가까웠다는 암시를 볼 수 있는데, 이는 절망의 구렁텅이에서도 구원은 있다는 것을 뜻한다.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율리시스>와 함께 영국 현대문학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황무지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ts 엘리엇은 하버드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으며, 1948년 노벨상을 수상했다. 1922년 발표한 「황무지 The Waste Land」는 현대의 모더니즘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황무지는 Ⅰ 죽은 자의 매장, Ⅱ 체스놀이, Ⅲ 불의 설교, Ⅳ 수사(水死) Ⅴ천둥이 한 말 등으로 구성된 연작시다. 「죽은 자의 매장」 하나만 보아도 긴데, 다 합하면 이 시집의 60쪽부터 108쪽까지 이어진다. 오늘은 「죽은 자의 매장」 한 편만 살펴보는 것으로 만족하려고 한다. 그리고 오늘만큼은 「죽은 자의 매장」 중에서 이 부분까지는 한글과 영문 모두 살펴보아도 좋겠다. 4월을 시작하는 날이니까.




Ⅰ죽은 자의 매장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피우며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망각의 눈(雪)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작은 생명을 길러주며,



슈타른버거호 너머로 소나기와 함께 갑자기



여름이 왔지요.



우리는 가로수 아래에 머물렀다가



햇빛이 나자 호프가르텐 공원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한 시간이나 이야기했지.




아,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이 시를 읽으며 나의 감상은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첫 문장에서 '아!' 하며 읽어나가다가 점점 '엥?'으로 이어졌다. 무슨 말인가 집중이 도무지 안되는 그런 걸 우리가 배웠던 대로 '의식의 흐름' 기법이라고 이해한다. 그리고 혹시 해석된 것만 보았다면 영어 원문도 함께 읽어보길 바란다. 좀 더 운율이 느껴진다고 할까. 깊은 감상이야 연구하시는 분들께 맡기고, 일반 독자로서 나는 그냥 느낌으로만 감상하고자 한다.




Ⅰ The Burial of the dead





April is the cruelest month, breeding



Lilacs out of the dead land, mixing



Memory and desire, stirring



Dull roots with spring rain.



Winter kept us warm, covering



Earth in forgetful snow, feeding



A little life with dried tubers.



Summer surprised us, comimg over the Starn bergersee



With a shower of rain; we stopped in the colonnade,



And went on in sunlight, into the Hofgarten,



And drank coffee, and talked for an hour.





아마 다시는 4월이 왔다고 이 시를 포스팅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너무 길고, 아, 내가 시와 멀어서라고 해야겠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그렇게 보면 오늘은 역사적인 날이다. 잊을 수 없는 날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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