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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접몽 Apr 11. 2021

조지훈 시 「낙화」 「승무」

어느새 벚꽃이 다 지고 말았다. 예년보다 8일인가 일찍 피어난 벚꽃은 때이른 절정을 이루고, 예전에 절정이었던 무렵에 바라보니 이미 다 떨어지고 말았다. 살짝 날씨를 원망해보기도 하고, 비바람에 눈 흘기고 보니 조지훈의 시 「낙화」가 떠오른다. 그때나 지금에나 사람 마음은 다 비슷한가보다 생각하며 오늘은 조지훈의 시를 감상해보기로 한다.



이 두툼한 책 『한국의 명시』가 85년 당시의 가격으로 3,000원, 그 당시 물가를 검색해보다 발견한 것이 짜장면 가격이 570원이었다고 한다. 결코 싼 가격은 아니었겠다.

이 책에 실린 시인들의 사진이 마치 졸업사진처럼 수록되어 있다. 그 중 조지훈 시인의 사진을 찍어올려본다. 시 감상을 시작하며 처음에는 작품만 감상할 생각을 하였는데,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그 시를 쓴 시인이 궁금해졌다.



조지훈 (1920.12.3~1968.5.17)

어렸을 때 할아버지로부터 한학을 배운 뒤 보통학교 3년을 수학하고 1941년 21세에 혜화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하였다. 1947년부터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였고, 6·25전쟁 때는 종군작가로 활약한 경력이 있다.만년에는 시작보다는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초대 소장으로 『한국문화사대계』를 기획, 이 사업을 추진하였다.

작품활동은 1939년 4월 『문장』지에 시 「고풍의상」이 추천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어 1939년 11월 「승무」, 1940년에 「봉황수」를 발표함으로써 추천이 완료되었다. 이 추천작품들은 한국의 역사적 연면성을 의식하고 고전적인 미의 세계를 찬양한 내용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박목월, 박두진과 더불어 공동으로 간행한 『청록집』의 시편들에서는 주로 민족의 역사적 맥락과 고전적인 전아한 미의 세계에 대한 찬양과 아울러 '선취禪趣'의 세계를 노래하였다.

이들 시편에 담긴 불교적 인간 의식은 사상적으로 심화되지 않았으나, 유교적 도덕주의의 격조 높은 자연 의식 및 삶의 융합을 보인다는 점에서 시문학사적 의의가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1968년 5월 17일 고혈압으로 토혈한 후 입원했으며 기관지 확장증 합병증으로 인해 49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출처: 네이버 검색)


 그러면 본격적으로 시를 감상해보아야겠다.



낙화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허 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승무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黃燭) 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이 접어 올린 외씨버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우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煩惱)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合掌)인 양하고





이밤사 귀또리도 지새는 삼경인데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조지훈의 「승무」는 19살에 착상하여 11개월 지나고, 쓴 지 7개월만에 완성(21살)했다고 한다. 우리 겨레의 고유한 멋을 음악적으로 노래한, 조지훈의 대표작 중 한편이라고 한다. 이 시를 처음 접했을 때 승무를 추는 모습이 떠오르며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라는 문장에서 한없이 아련해졌던 기억이 떠오른다.



생각해보니 학창 시절 조지훈의 「낙화」에서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라는 문장을 '슬픔에 대한 동양적 윤리관에 의한 체념'이라고 배웠다. 그때 그 시를 배우며 나는 그다지 체념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는데, 체념이라고 하니 체념이라고 외우긴 했지만, 지금도 시 해설에서 보이는 '체념'이라는 설명은 딱히 와닿지 않는다. 내가 체념에 대해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고 있거나, 아니면…….



꽃 피는 계절이 오면 꽃이 피어있는 시기가 생각보다 너무 짧아 안타까워진다. 특히 올해는 벼르고 있던 시기보다 빨리 피어났다가 실컷 꽃을 보겠다고 하던 때에 황사와 비바람으로 마무리하고 말았으니 더욱 안타깝다. 하지만 꽃이 지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또다른 시작이다. 파릇파릇 싱그러운 초록이 허전한 마음을 채워준다. 그런 계절이 오고 있으니 힘을 내어 새로이 맞이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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