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개나리, 진달래…… 그런 종류만 알고 있을 때, 나무 이름도 잘 모를 때, 알게 된 나무 이름이 있다. 바로 '플라타너스'였다.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
플라타너스
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 있다 (「플라타너스」 1연)
그 말이 어찌나 멋있던지, 아니 그것보다도 '플라타너스'라는 나무 이름을 알고 써먹는 것이 은근 유식한 듯한 느낌이 들었던 때가 있었다. 오늘은 생각난 김에 김현승의 시를 감상해본다.
김현승
1913.4.4-1975.4.11
눈물과 보석과 별의 시인. 시인으로서 활동을 시작한 초기에는 모더니스트와 이미지스트의 면모를 보였고, 그 뒤로는 한국 시단에서 가장 뛰어난 지성 시인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졌다.
그는 맑고 밝고 선명한 이미지들을 통해 정신의 명증성과 함께 높은 종교적 윤리성을 추구하는 자세를 보여주었다. 또한 1969년에 시집 『견고한 고독』을 내놓으며 초기의 감상주의를 배제하며 '견고한 고독' 속에서 더욱 깊고 진지한 윤리적 실존의 자세를 끌어낸다.
그의 시는 서구 기독교의 오랜 전통인 청결한 윤리의식과 한국의 지조와 절개를 중히 여기는 선비정신이 혼합돼 독특한 정신주의를 구현한다.
김현승은 커피중독자로 여겨질 만큼 유난히도 커피를 좋아해 호도 '다형(茶兄)'이라고 지었을 정도다. 그는 1913년 평양의 한 엄격하고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평양에서 태어났지만 목사인 부친을 따라 어린 시절을 제주도, 광주 등지에서 보낸다. 광주에서 미션 계열인 숭일소학교를 마치고 부모와 떨어져 형이 있는 평양의 기독교 계통인 숭실중학교에 입학한다. 그는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스포츠와 영화, 문학에 심취하게 된다. 특히 영국의 시인 브라우닝의 '피파의 노래'를 읽은 뒤 그 감동에 젖어 시를 습작하기 시작한다. 그 습작의 결과 교지 <숭실>에 시 '화산'을 게재하는 등 일찍부터 문학에 대한 재능을 드러내 보인다. 1932년 숭실중학교와 같은 재단인 숭실전문 문과에 입학한다. 그는 이 숭실전문의 교사로 있던 양주동, 이효석의 강의를 들으며 한층 더 창작욕을 불태우며 습작에 몰두한다.
하지만 1933년 위장병 때문에 부득이 학업을 중단하고 부모가 있는 광주에 내려가 요양을 하기도 한다. 몸을 추스르고 다시 복교한 그는 본격적으로 시 작업에 정진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겨울방학이 되어서도 기숙사에 혼자 남아 "북극의 안개 속에서 값싼 커피를 마시고" 밤늦도록 시를 쓴다.
그때 쓴 '쓸쓸한 겨울 저녁이 올 때 당신들은', '어린 새벽은 우리를 찾아온다 합니다' 등의 시들을 교지에 발표하는데, 이것이 스승인 양주동의 눈길을 끌었다. 양주동은 이 시들을 1934년 <동아일보> 문예란에 발표하게 함으로써 김현승은 문단 등단의 관행인 신춘문예나 잡지추천 제도와 상관없이 문단에 나오게 된다.
그의 시어들은 깨끗하고 투명하며, 때로는 지나치게 세련되고 지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모더니스트의 성향을 보인다.
그가 나고 자라면서 줄곧 그의 정신형성에 영향을 미쳐온 것 중 하나가 기독교다. 그의 시 속에 절대적 타자인 신을 확인하고 그에게 더 가까이 가려는 의지가 엿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는 기독교 정신에서 배태된 높은 윤리성의 실현을 하나의 실존 과제로 삼고 그것을 생명·순결·진실 등의 관념 속에 수렴하려는 태도를 보여준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중에서)
*표기는 『한국의 명시』에 따름.
오늘은 김현승의 시를 감상하면서 여러 번 놀랐다. 익숙해서 놀랐고, 다 아는 시여서 또 놀란다. 처음 읽는다고 생각했지만, 과거의 어느 순간 열심히 외우고 익히던 시였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시를 잘 모른다고만 생각해왔는데, 하나하나 짚어보니 이미 알고 있는 것도 상당히 많다는 것을 오늘 감상에서도 다시 한번 깨닫는다. 너무 오래 지나기 전에 한 번씩 감상해보기로 한 것은 잘 한 결정이라 생각하며 오늘도 힘을 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