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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접몽 Apr 28. 2021

도종환 시 「흔들리며 피는 꽃」

마음에 시를 품는 것은 아주 가끔이어도 괜찮다. 필사를 하며 음미하고 곱씹으며 마음에 시어를 담으면 된다. 그러면 그것이 당장은 아니더라도 어느 순간 문득 내 삶에서 꽃처럼 피어나고 열매가 된다.



내 인생 최대 고비였던 4년 전 그 무렵, 나는 이 책을 읽었다. 그 당시에는 글이 많거나 생각이 복잡해지는 책은 집어 들면 한 줄도 읽을 수 없었다. 시 조차도 제대로 감상이 되지 않던 암울한 때였으니 말이다. 그래도 책이라도 읽지 않으면 어두운 생각이 몰려들어와서 걷잡을 수 없어서, 꾸역꾸역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가 그냥 저쪽에 치워두었다가 이제야 꺼내들어 살펴본다. 이 또한 책장을 촤르르 넘길 때마다 마음에 들어오는 시가 다르니 그 기분도 새롭다고 해야 할까. 감회가 새롭다. 이제 나는 고통의 한 가운데에서 드디어 해방된 것이다.



내 인생은 4년 전 그때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그래서 그런지 '흔들리며 피는 꽃'이라는 말이 마음에 와닿는다. 내가 그렇게 나약한 줄 몰랐고, 한없이 무너져내릴 줄 몰랐다. 또한 그런 시기도 잘 견뎌내고 더욱 단단해진 나로 거듭나리라고는 그때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이제는 알겠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라는 그 말을 말이다. 오늘은 도종환의 시 「흔들리며 피는 꽃」을 감상해보아야겠다.






흔들리며 피는 꽃



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지나고 보면 별것 아니었다는 생각이 드는 일도 있고, 지나고 보니 그때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대견하다는 생각이 드는 일도 있다. 대범하게 지나가지 않아도 괜찮다. 흔들리고 쨍그랑 깨지는 듯 휘어져 버리더라도 인간이라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 또한 잘 지나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제발 인생에서 앞으로는 그런 폭풍우 같은 시간은 없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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