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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접몽 May 02. 2021

심보선 시 「첫 줄」

어제부터 네이버에서 매일 일기를 쓰는 '오늘일기 키챌'을 하고 있다. 그동안 다른 글을 쓰면서는 첫 시작이 버겁지 않았는데 이상했다. 일기를 쓰자고 결심하니 커서만 띄워놓고 한참을 멍~하니 생각만 했다. 자유주제에 대한 무거움, 아무거나 쓰라고 하니 아무것도 쓸 수 없는 중압감을 오랜만에 느껴보았다. 그러고 보니 어떤 작품이든 첫 줄의 힘은 엄청나다. 너무 강해서 뒤에 이어지는 글을 시시하게 만들어서도 안 되고, 너무 아무렇지도 않아서 글 전체가 아무 매력이 느껴지지 않도록 가벼워도 안 된다. 특히 시를 쓰고자 한다면 그 길이와 무게감이 오죽할까 생각된다.



오늘은 시인이자 사회학자인 심보선 시인의 시를 감상해야겠다. 김용택 시인의 감성치유라이팅북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 플러스』에 나온 시 중에 눈에 띄어서 오늘은 그 시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첫 줄







첫 줄을 기다리고 있다.



그것이 써진다면



첫눈처럼 기쁠 것이다.



미래의 열광을 상상 임신한



둥근 침묵으로부터 첫 줄은 태어나리라.



연서의 첫 줄과



선언문의 첫 줄.



어떤 불로도 녹일 수 없는



얼음의 첫 줄.



그것이 써진다면



첫아이처럼 기쁠 것이다.



그것이 써진다면



죽음의 반만 고심하리라.



나머지 반으로는 어떤 얼음으로도 식힐 수 없는



불의 화환을 엮으리라.





오늘은 이 책이 질문을 하는 책이니 거기에 충실히 답하고 싶다. 하고 싶다는 생각만 했을 뿐 시작조차 하지 못한 일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래도 한 가지는 어제부터 시작했다. 일기 쓰는 거. 가장 재미없는 것이 시간 순으로 나열한 글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마저 기억에서 사라지고 보니 그거라도 있었으면 좋겠더라, 그래서 시작했다. 아주 간단히라도 적기로 했다. 네이버가 그걸 도와줬다. 오랜만에 다이어리에 손글씨를 적어본다. 그건 비밀. 그리고 네이버에 적는 건 안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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