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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접몽 May 03. 2021

백석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시 감상하기를 시작하면서 아껴둔 시인과 시가 있으니 바로 '백석'이다. 할 이야기가 너무 없다는 것과 너무 많은 것은 일맥상통하다. 백석 시인과 그의 시가 그렇다. 늘어놓고 싶은 이야기는 참으로 많은데 하루는 짧고, 어디부터 어떻게 감상할지 막막해지는 그런 느낌이다. 하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그의 시 한 편을 감상 못하고 세월만 흐르겠다. 그래서 오늘은 백석 시인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감상하는 시간을 가져봐야겠다.




『시인을 찾아서』를 읽어보면 맨 처음 백석에 대해 나온다. 백석 이야기가 세 편이나 실려있다. 그중 제일은 사랑 이야기 아니겠는가. 글의 제목이 「내 재산 천 억은 백석의 시 한 줄만 못해요」이다. 그 글에는 그의 문학과 사랑 이야기가 담겨 있다.



백석은 1912년 평안북도에서 태어났다. 특이하게도 그는 열아홉 살 때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그 모母와 아들」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당선 후 백석은 몇 편의 단편을 더 발표했는데 발표하는 작품마다 죽음과 같은 삶의 어두움을 이야기하는 짙은 회색빛 색채를 띠고 있었다. 그러다가 시를 쓰기 시작하면서 긍정적인 삶을 그리는 문학의 세계로 전환한다. 바로 이 무렵 백석은 생애 첫사랑을 만나게 된다. 백석이 '란蘭'이라고 불렀던 박경란이다.

란과 백석의 첫 만남은 1935년 6월 조선일보에서 근무하던 동료 기자 허준의 결혼식 피로연이었다. 란은 통영 출신으로, 이화고녀에 재학 중인 18살 소녀였다. 백석은 '머리가 까맣고 눈이 크고 코가 높고 목이 패고 키가 호리낭창한 여인'이라고 표현한 란에게 첫눈에 반해 온 마음을 뺏겨버린다.

『시인을 찾아서』 29쪽


하지만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했고, '란'이 신문사 동료와 결혼하자 실의에 빠진 백석은 신문사를 그만두고 경성을 떠나 함경북도 영생학교 교사로 취직했다. 이곳에서 백석은 '김진향'이라는 기명(妓名)의 여성을 만나는데 이 여인이 바로 '자야'이다. 본명은 김영한이다. 백석의 두 번째 사랑 역시 첫 만남의 순간에 운명적으로 찾아왔으니, 두 사람이 처음 만날 당시 백석은 26세, 김진향은 22세였다고 한다.


백석은 김영한에게 자야 子夜라는 아호를 지어주었는데, 이는 그때 김영한이 읽고 있던 『당시선집』속에 나오는 이백의 시 「자야오가」에서 따온 것이다. 죽기 전에 이별은 없다며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고 동거에 들어갔는데, 집안의 반대로 백석은 부모가 정해준 고향 여자와 혼인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곧 다시 도망쳐 나와 자야를 찾아왔고, 이후 두 사람은 서울 청진동에서 3년 동안 함께 동거한다. 이 시기에 백석이 쓴 작품이 바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이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자야는 1970~80년대를 통틀어 우리나라 최고의 요정으로 알려진 대원각을 운영해 오다가 사망하기 전에 이 재산을 법정 스님을 통해 불교에 시주했다. 처음 자야의 시주를 완강하게 사양했던 법정 스님은 10년이란 세월이 흐른 뒤에서야 그 뜻을 받아들인다. 그 후 요정 대원각을 사찰로 바꾸고 자야의 법명인 길상화의 이름을 따 절 이름을 '길상사'로 지었다.

『시인을 찾아서』 39쪽



김영한은 법정 스님에게 평생 모은 재산을 시주하며 "수 억 재산이 백석의 시 한 줄만 못하다"라는 명언을 남겼다고 한다. 그들의 사랑 이야기를 알고 보니 와닿지 않던 시가 어렴풋이 다가온다. 그 마음이 고스란히 시에 녹아들어서 그런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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