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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접몽 May 04. 2021

향수 시, 정지용 향수, 김광균 향수, 김상용 향수


'향수' 하면 정지용의 '향수'가 워낙 유명해서 다른 사람이 쓴 향수는 있는 줄도 몰랐다. 하지만 마음먹고 찾아보니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정지용만 쓴 건 아니다. 김광균도 썼고, 김상용도 썼다. 오늘은 '향수' 시를 감상해보는 시간을 갖는다.



* 예전의 책이어서 표기가 지금과 다른 경우가 있지만, 그 책 그대로 적어보았다.


『한국의 명시 영혼의 애송시 351편』에서는 김광균 향수, 김상용 향수, 『정지용 시선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에서는 정지용 향수를 감상해본다.





향수(鄕愁)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ㅡ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조름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ㅡ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든 곳,




ㅡ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안해가



따가운 해ㅅ살을 등에 지고 이삭줏던 곳,




ㅡ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석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ㅡ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향수



김광균





저물어 오는 육교 우에



한줄기 황망한 기적을 뿌리고



초록색 램프를 달은 화물차가 지나간다.





어두운 밀물 우에 갈메기떼 우짖는



바다 가까이





정거장도 주막집도 헐어진 나무다리도



온-겨울 눈 속에 파묻혀 잠드는 고향.



산도 마을도 포플라나무도 고개 숙인 채





호젓한 낮과 밤을 맞이하고



그 곳에



언제 꺼질지 모르는



조그만 생활의 촛불을 에워싸고



해마다 가난해 가는 고향 사람들.





낡은 비오롱처럼



바람이 부는 날은 서러운 고향.



고향 사람들의 한줌 희망도



진달래빛 노을과 함께



한번 가고는 다시 못오지





저무는 도시의 옥상에 기대어 서서



내 생각하고 눈물지움도



한떨기 들국화처럼 차고 서글프다



♠ 저물어 오는 육교 위에서 황망하게 사라져 가는 추억을 붙잡는 시인의 마음은 왠지 모르게 쓸쓸해진다. 서녘 하늘을 붉게 번지는 노을과 어머니의 치마 자락처럼 서서히 다가오는 어둠의 이미지가 더욱 사람의 심경을 우수에 젖게 하는 저녁 무렵은 한결 그리움을 더해 준다. 이런 때 가장 진하게 다가오는 그리움은 고향이다. 고향은 항상 가난한 모습으로 남아있지만, 그러나 그 가난은 시인을 성장시키고 시인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채찍이었기에 그 어떤 풍요보다도 더욱 소중한 추억으로 남는 것이다. 이 시의 주제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다.

『한국의 명시 영혼의 애송시 351편』 18쪽, 김광균 향수 해설





향수



김상용





인적 끊긴 산 속



돌을 베고 하늘을 보오.





구름이 가고,



있지도 않은 고향이 그립소.



♠ 제목 그대로 향수를 노래한 시이다. 구름이 흐르는 것을 보고 망연하게 고향을 그리워해야 하는 시인의 고독감이 잘 드러나 있다.

『한국의 명시 영혼의 애송시 351편』 45쪽, 김상용 시 향수 해설






그동안은 한 명의 시인이 쓴 여러 시들을 살펴보았는데, 오늘은 문득 '향수'라는 제목으로 시를 쓴 여러 시인의 작품들을 감상하고 싶어졌다. 시인의 감성마다 향수도 여러 가지 색깔로 제각각 달리 표현된다. 오늘은 시를 감상하는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해 보기로 한다. 같은 제목으로 여러 감성이 흘러나오는 걸 보면 과연 시인들은 언어의 마술사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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