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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접몽 May 06. 2021

김소월 시집 사랑 「못 잊도록 생각나겠지요」 「봄밤」外

왜 지금껏 이 시집을 발견하지 못했던 걸까. 우리 집에 있는 김소월의 시만을 담은 김소월 시집 중에 제일 오래된 책인데 말이다. 책은 나의 눈에 띌 때 현재 시간으로 되살아나는 거다. 내가 펼쳐보아주고 읽어줌으로써 새 생명을 얻는 거다. 올여름 오래된 책들이 또다시 습기를 머금고 낡아갈 텐데, 습한 여름이 오기 전에 대대적인 책 정리 한 번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일단은 김소월 시를 감상하는 시간을 보낸다.




이 책은 소월시대표작선집 『사랑』이다. 1970년 9월 30일 발행본이다. '책머리에 붙여서'를 보면 편저자가 이 책을 어떻게 엮게 되었는지 알려주고 있다.


여기 좀 색다른 한 권의 소월의 시에 대한 책을 엮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단지 시만을 모은 것은 아닙니다.


이건 도입 부분을 요즘 쓰는 말로 옮긴 것이고 원래는 이렇게 쓰여있다.


여기 좀 色다른 한券의 素月의 詩에 대한 책을 엮기로 하였읍니다. 그러나 이 책은 단지 詩만을 뫃은 것은 아닙니다.


'뫃은'이 오타인가 생각되었지만 혹시 몰라 검색하였더니 네이버에서는 '좋은'으로 대신 검색해 주었다. 그런데 옛날에는 이렇게 썼다는 놀라운 사실. 언어는 이렇게 같은 듯 다르게 변화하고 있다. '나머지'도 '남어지'로 되어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옛사람들의 일상에 들어가 보면 어떤 말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편저자가 책머리에 쓴 글은 1959년 10월 10일에 쓴 글이다. 편저자는 소월시가 발표된 연대를 조사해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반년 동안 하던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소월이 詩作을 했던 1919년에서 1930년 사이에 간행되었던 모든 잡지와 신문을 하나하나 들춰 나갔단 것이다. 그렇게 반년 동안 3분의 1 정도 찾았다고 한다. 잘못 실린 것은 시정했고, 시제를 임의로 고쳐놓은 것도 고증하여 발표당시의 원상태로 돌려놓았다고 한다.



그런 일들을 겪으며 소월 시가 한국인의 애송시로 자리 잡은 것이리라. 물론 명성에 비해 여전히 갈 길은 멀지만, 그리고 김소월 문학관 하나 못 짓고 있다는 점이 아쉽긴 하지만, 언젠가는 가능하리라 희망하며 감상을 이어간다.






못 잊도록 생각나겠지요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한 세상 지내시구려



사노라면 잊힐 날 있으리라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세월만 가라시구려



못 잊어도 더러는 잊히오리라.





그러나 또 한긋 이렇지요.



<그리워 살뜰히 못잊는데



어쩌면 생각이 떠지나요?>






봄밤







실버드나무의 거무스렷한 머리결인



낡은 가지에



제비의 창옆에 모아라 봄이 앉았지



않은가





소리도 없이 바람은 불며 울며



한숨지워라



아무런 줄도 없이 섧고 그리운 새카만 봄밤



보드라운 습기는 떠돌며 땅을 덮어라.







원앙침





바드득 이를 갈고



죽어 볼까요,



창 가에 아롱아롱



달이 비친다.





눈물은 새우잠의



팔굽 베개요



봄꿩은 잠이 없어



밤에 와 운다.





두동달이 베개는



어디 갔는고



언제는 둘이 자던 베개 머리에



<죽자 사자> 언약도 하여 보았지.





봄메의 멧 기슭에



우는 접동도,



내 사랑 내 사랑



좋이 울것다.





두동달이 베개는



어디 갔는고



창 가에 아롱아롱



달이 비친다.





새벽





낙엽에 발이 숨는 못 물가에



우뚝 우뚝한 나무 그림자



물빛조차 어슴프러이 떠 오르는데



나혼자 섰노라, 아직도 아직도



동녘 하늘은 어두운가.



천인에도 사랑눈물 구름이 되어



외로운 꿈의 베개 흐렸는가.



나의 님이여 그러나 그러나



고이도 불그스레 물질러와라,



하늘 밟고 저녁에 섰는 구름



반달은 중천에 지새일때.





한참을 들여다보았더니 눈이 아프다. 한자도 많이 섞여있는 데다가 세로 쓰기로 되어있으니 익숙하지 않아서 더 그런 면도 있고, 옛날 책이 글씨가 지금보다 훨씬 작아서 가독성도 떨어진다. 한글도 낯설고 책도 낯설다. 시대에 따라 대부분 변화하지만, 시인의 감성만은 예나 지금이나 변치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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