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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접몽 May 08. 2021

어머니 아버지 시

어버이날이 되었다. 다들 어버이날 선물은 준비 잘 하셨는지 모르겠다. 큰일이다. 날짜 가는 걸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8일인 것은 알고 있었는데, 5월 8일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다니…. 왜 그걸 따로 생각한 건지 잘 모르겠다. 그냥 카네이션 대신 내가 리본 달고 나타나는 걸로 재롱잔치나 해야겠다……라고 하면 안 될 것 같고, 이 글 올리고 어서 꽃 사러 가야겠다. 오늘은 날이 날이니 만큼 어머니, 아버지 시를 감상해본다.






어머니의 그륵

                                 정일근




어머니는 그륵이라 쓰고 읽으신다

그륵이 아니라 그릇이 바른 말이지만

어머니에게 그릇은 그륵이다

물을 담아 오신 어머니의 그륵을 앞에 두고

그륵, 그륵 중얼거려 보면

그륵에 담긴 물이 편안한 수평을 찾고

어머니의 그륵에 담겨졌던 모든 것들이

사람의 체온처럼 따뜻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학교에서 그릇이라 배웠지만

어머니는 인생을 통해 그륵이라 배웠다

그래서 내가 담는 한 그릇의 물과

어머니가 담는 한 그륵의 물은 다르다

말 하나가 살아남아 빛나기 위해서는

말과 하나가 되는 사랑이 있어야 하는데

어머니는 어머니의 삶을 통해 말을 만드셨고

나는 사전을 통해 쉽게 말을 찾았다

무릇 시인이라면 하찮은 것들의 이름이라도

뜨겁게 살아 있도록 불러 주어야 하는데

두툼한 개정판 국어사전을 자랑처럼 옆에 두고

서정시를 쓰는 내가 부끄럽다




아버지의 마음

                                             김현승



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어린 것들을 위하여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


저녁 바람에 문을 닫고
낙엽을 줍는 아버지가 된다.


세상이 시끄러우면
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
아버지는 어린 것들의 앞날을 생각한다.
어린 것들은 아버지의 나라다 - 아버지의 동포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아버지는 비록 영웅이 될 수도 있지만…


폭탄을 만드는 사람도
감옥을 지키던 사람도
술 가게의 문을 닫는 사람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아버지의 때는 항상 씻김을 받는다.
어린 것들이 간직한 그 깨끗한 피로…

해같이 달같이만



이주홍






어머니라는 이름은



누가 지어냈는지



모르겠어요.



어…머…니… 하고



불러보면



금시로 따스해 오는



내 마음.





아버지란 이름은



누가 지어냈는지



모르겠어요.



아…버…지… 하고



불러보면



오오- 하고 들려오는 듯



목소리





참말 이 세상에선



하나밖에 없는



이름들





바위도 오래되면



깎여지는데



해같이 달같이만 오랠



이름.




오늘은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어머니 아버지 시를 모아보았다. 『누구나 시 하나쯤 가슴에 품고 산다』라는 책에 보면 '눈물 나게 외롭고 쓸쓸했던 밤, 내 마음을 알아주었던 시 101편'이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은 사실 어머니께 선물한 시집인데, 오늘은 내가 살짝 꺼내들어 시를 찾아보았다. 생각해 보니 시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다양한 시인들의 시가 수록되어 있으니 어버이날 선물용으로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꽃과 봉투도 함께라면 더 좋아하실 듯하다. 모두들 행복한 하루 보내시길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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