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이 내게는 트라우마였나 보다. 너무도 짧았던 봄날, 그리고 기나긴 여름날을 버티고 버텼다. 에어컨 제습 모드를 종일 해 두어도 습기가 마를 날이 없었고, 에어컨과 제습기가 없는 곳은 발 디디기 무섭게 숨이 턱 막혀왔다. 그런 여름날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는 거다. 아직은 생각보다 쌀랑해서 다행이다가, 어떤 날은 생각보다 더워서 두렵고, 그렇게 봄에서 여름을 향하고 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남은 봄날을 즐겨야지 여름 걱정만 하고 있는다는 건 너무 시간이 아깝다. 미세먼지 없을 때에는 하늘 한 번 더 쳐다보고, 어느덧 충분히 잎사귀를 키워낸 나무도 한 번 더 쳐다보는 거다. 그리고 봄을 누리는 데에는 역시 '시'를 감상하는 마음만 한 것이 없다. 놓치지 말고 그 마음을 잡아보자. 그렇게 오늘은 광화문글판에 올랐던 봄 시 중 딱 세 편만 감상하는 시간을 보내기로 한다.
꽃 진 자리에 잎 피었다
너에게 쓰고
잎 진 자리에 새가 앉았다
너에게 쓴다
환하다 봄비
너 지상의 맑고 깨끗한
빗자루 하나
꽃 피기 전
봄 산처럼
꽃 핀 봄 산처럼
누군가의 가슴
울렁여 보았으면
봄이 묻어 흐르는 시인의 감성처럼 나도 봄 속에 흘러본다. 꽃이 피어도, 꽃이 져도, 봄비가 내려도, 이 모든 것이 봄날과 어우러진다. 시의 감성 속으로 빠져들기 좋은 계절이다. 오늘은 그렇게 온 마음으로 봄을 누려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