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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접몽 May 13. 2021

한하운 시 「보리피리」 「전라도 길」 外

이 무렵이었다. 가파도 청보리 말이다. 부랴부랴 검색을 해보니 올해는 행사가 취소되었다고 한다. 사실 축제에 가겠다고 검색한 건 아니고 그냥 청보리를 감상했던 그 추억을 검색한 거다. 그곳 풍경은 여전한지, 뭐 그런 감상에 젖어보는 거다. 그렇게 하드에서 잠자고 있던 가파도 청보리 사진을 꺼내들어 감상을 하고 시작해본다.




오늘은 한하운의 시를 감상하기로 한다. 한하운은 한국현대사에서 유일한 문둥이(문둥이, 한센병, 나병) 시인이고, '나병은 낫는다'는 사실을 우리 사회와 한센병 환우들에게 알린 정신적 지도자다. 문둥병의 첫 발병은 이리농림학교 수의축산과 5학년 봄이었는데, 경성대 부속병원(현 서울대학교 병원) 기다무라 박사의 진찰로 밝혀지고 소록도에 가서 치료하라는 권고를 받는다. 그 후 병은 일본 성계고등학교와 북경대학 농학원 축목학계 재학 중 재발병과 낫는 과정을 반복한다.



일본의 문둥이 시인 아카시 가이진(1901~1939)의 시에 "내가 나병환자임이 알려졌을 때는 동네 사람들이 나의 생명을 저주하였다. 5년 후 내 형제들이 내 생명을 저주하더라. 10년 후 지금은 내 자신이 자신의 생명을 저주하고 있다. 그래도 어머니만은 좋으니 그저 살아만 달라고 한다"는 내용은 바로 한하운 시인의 비참했던 나병의 진행 과정이라 해도 무방하다.



한하운 시인은 1948년 월남한다. 문둥이란 저주를 받고 병에 시달리고 문전걸식 방랑생활을 한 체험을 시로 승화시킨다. 1949년 《신천지》 4월호에 《한하운시초》 13편을 발표하고 문단에 등단한다.



그의 나병은 "1960년 이미 완치되어 있었다"(조선일보 1975.3.1 이흥우)는 말과 같이 성한 몸이 되어 부평 소재 성혜원, 신명보육원, 대한한센연합위원장 등 구라(救癩)사업에 전념한다. 나병이 불치의 병이었던 시절, 이 병은 낫는다는 과학적 사실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밝힌 이가 유준 교수다. 그 유 교수가 1955년 "나병은 낫는다"는 과학적 사실을 사회와 나병 환우에게 알려야 할 때 이를 이해하고 협력한 분이 한하운 시인이고 그의 시였다.



유준 교수는 말한다. "나병이 불치였을 시절에 갖은 고생과 학대에 신음하고 단련 받았다. 그의 시는 이 비참했던 시절을 읊음으로써 시작된 것 같다. 그 비참을 사회에 호소하고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이것이 한하운 시의 출발이며 종말이었다"고.



한하운은 나병이 아니라 간염, 또는 간경화 증세로 1975년 2월 28일 운명한다.



(보리피리/한하운/범우문고 273/ '이 책을 읽는 분에게' 함동선 시인·중앙대학교 명예교수의 글에서 발췌)





보리피리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꽃 청산靑山



어린 때 그리워



피-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인환人寰*의 거리



인간사人間事 그리워



피-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幾山河**



눈물의 언덕을 지나



피-ㄹ 닐니리.






*인간세상



**몇 년의 산하




전라도 길



-소록도로 가는 길






가도 가도 붉은 황토길



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天安 삼거리를 지나도



수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토길



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절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千里 먼 전라도 길.




손가락 한 마디







간밤에 얼어서



손가락이 한 마디



머리를 긁다가 땅 위에 떨어진다.





이 뼈 한 마디 살 한 점



옷깃을 찢어서 아깝게 싼다.



하얀 붕대로 덧싸서 주머니에 넣어둔다.





날이 따스해지면



남산 어느 양지터를 가려서



깊이 깊이 땅 파고 묻어야겠다.




파랑새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어





푸른 하늘



푸른 들



날아다니며





푸른 노래



푸른 울음



울어 예으리.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리.




그의 시를 읽자면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말해주는 듯한데 읽는 이의 마음을 울컥하게 만든다. 예전에 그의 시를 읽을 때에도 그랬고, 지금 다시 보아도 그렇고, 먼 훗 날 언젠가 다시 보아도 마찬가지 감정이 일어날 듯하다. 이 여운이 꽤나 오래갈 듯하여 먹먹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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