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와 리듬

정리를 책으로 배운 정리 귀차니스트의 정리 이야기

by 호접몽

바쁘게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주로 땅과 앞만 보며 지내게 된다. 그래도 가끔은 하늘을 쳐다보며 한숨 돌리기도 하는데, 코스모스와 낮달이 어울리는 가을날이니 그것만으로도 작품이 된다. 조금만 더 이 가을날이 지속되면 좋겠다. 구름과 하늘과 바람과 귤과 돌담이 어울리는 제주의 가을날 말이다.



어제는 어머니 혼자 차 안에서 기다리게 하는 게 미안해서 전력 질주하듯 마트에 들어가 필요한 식품들을 구매하고 나왔는데, 차 안에서 기다리시는 어머니의 시간은 코스모스와 낮달과 함께 평화롭게 멈춰 있었다. 나도 부산하던 행동을 멈추고 잠시 가을날을 즐겼다. 코스모스와 낮달에 온전히 집중하다 보니 문득 세상이 멈춰 선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시간은 내가 어떻게 누리느냐에 따라 찰나에서 영원으로 향하기도 한다.



바람에 흔들거리는 코스모스를 보니 리듬에 맞춰 춤을 추는 듯했다. 문득 『다 리듬 때문이었어』라는 책이 떠오른다. 저자 김성은은 지금껏 원인을 알 수 없던 실패의 경험, 설명 안 되는 성공의 비법이 모두 리듬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 30년이 걸렸다고 고백한다.


사람은 이렇듯 보이지 않는 공간의 표정, 공간의 리듬을 감지할 수 있다. 공간의 리듬을 인지하는 것은 타인과 공간에 대한 관심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앙리 르페브르가 사회를 대상으로 리듬을 연구한 것은 공간과 사람, 그리고 공간과 사람이 만들어내는 사회가 리듬의 결을 확장시킨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공간 리듬을 인지하라, 마음과 관계를 어디에 담을지 볼 수 있는 감각의 눈이 생긴다.
『다 리듬 때문이었어』 290쪽



그 책을 읽기 전에는 나에게 공간은 시각적인 것이 전부였는지도 모른다. 미처 인식하지 못했다. 공간의 표정, 공간의 리듬 말이다. 리듬에 대한 생각의 영역을 확장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움직이는 모든 것에는 리듬이 있다. 나와 이 공간은 이제야 조금씩 리듬을 맞춰가는 것이다.


"비웠다가 채웠다가 달처럼 살면 돼." 조용히 바깥 풍경을 바라보던 어머니가 한 마디 하셨다. 코스모스가 보이는 마트 주차장에서 나누기에는 뜬금없는 이야기였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삶도 그렇고, 내가 원하는 정리가 그런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너무 비워서 썰렁하지도 않고, 너무 채워서 답답하지도 않게, 비웠다가 채웠다가 변화하면서 살고 싶다는 것을 지금까지의 과정에서 깨달은 것 아니겠는가.



삶에서 어떤 곤경에 처해도, 아무리 벅차고 힘 빠지는 사건이 펼쳐져도 아침에 일어났을 때 마시는 첫 커피 한 잔을 기대하는 한 자신이 늘 이겨내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고 그는 말했다.
_에이모 토울스, 『예의의 규칙』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오늘 하루를 생각한다. 오늘은 청소 전에 생각이 많아진다. 움직이지 않는 듯한 이 공간도 사실은 부단히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달처럼 채웠다가 비웠다가 하면서 이곳만의 리듬으로 변화하고 있으니 오늘은 공간의 리듬을 감지할 수 있도록 나의 감각을 키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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