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안에서 보는 세상

by 호접몽


여행은 비행기 티켓을 구입하고 숙소를 예약하며 착착 진행된다. 하지만 막상 공항에 가면 내 마음은 들뜨기도 하고 조금 달라진다. 특히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계획 그대로의 여행보다는 일탈을 꿈꾸기도 한다. 예정된 목적지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면 어떨까 하는 호기심이다. 이름만 알고 아무 정보도 없는 곳에 가면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일 것 같고 진정한 여행의 맛을 느낄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상상일 뿐! 나는 조용히 예정된 여행지로 향한다.



공간을 이동하는 데에 필요한 이동 수단 중에 '비행기'를 타면 가장 멀리 이동할 수 있다. 일단 몇 시간은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으면 된다. 때로는 사육 당하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잠들 만하면 깨워서 밥을 주기도 하는데 먹을 수 있을 때 먹어둔다며 열심히 속을 채운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좌석에 차례대로 앉아서 시간을 견뎌야 한다. 일단 푹 쉬어야 한다. 여행의 목적은 여행지에 있으니 비행기 안에서는 최대한 체력을 비축해두어야 한다.



'비행기' 하면 대한항공 수석 기장의 책 『플레인 센스』가 떠오른다. 그 책을 읽기 전까지는 왜 비행기를 타면 객실승무원의 방송과 그다지 다르지도 않은 내용을 기장이 또 방송하는지 잘 몰랐다. 이 책을 보면 심오한 뜻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기장의 방송과 객실승무원의 방송은 그 목적과 역할이 조금 다르다. 객실 방송이 비행 정보를 제공하는 것인 반면, 기장 방송의 주목적은 승객들에게 비행기가 기장에 의해 안전하게 통제되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비상을 포함한 모든 상황에서 기장은 승객들이 안심할 수 있도록 항상 절제된 용어와 침착한 톤으로 방송을 해야 한다. 

『플레인 센스』 78쪽



생각해보면 운이 무척이나 좋았던 것이다. 지금껏 비행기를 타면서 무사했다는 것 말이다. 물론 돌아다니지 않는 것이 가장 안전한 것이겠지만, 그러면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보다 넓은 세상에 발걸음을 하면서 배우는 것도 얻는 것도 많았으니, 그 가치를 더욱 크게 느낀다.



조금은 낭만적으로 생각해보자면, 나는 비행기 창밖 풍경이 정말 좋다. 비행기 창밖으로 보이는 야경에 한동안 넋 놓고 바라보곤 했다. 찰리 채플린은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했다. 비행기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도 마찬가지로 다가온다. 출발할 때의 바깥 풍경, 도착지의 모습 모두 멀리서 보면 아름답기만 하다. 비록 그 안에서 사람들은 지지고 볶고 싸우고 있다고 해도 마냥 낭만적으로 다가온다.



곽재구의 신 포구기행 『당신을 사랑할 수 있어 참 좋았다』에 보면 이런 글이 있다.


비행기의 창밖에 별이 떴다. 모든 별은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 안에 작은 호수 하나를 만든다. 인도의 시골 마을에서 1년 반을 머문 적이 있다. 여행이라 생각하면 한없이 신비하고 삶이라 생각하면 척박하기 이를 데 없는 시간이었다. 어느 밤 반딧불이 반짝이는 숲속에서 가느다란 선율의 악기 소리가 들렸다. 소리를 따라 숲길로 들어갔을 때 원주민 집이 있었고 주황색 옷을 입은 나이 든 사내가 작은 악기를 연주하고 있었다. 화려한 선율과는 거리가 먼 맑고 담담한 선율이 숲과 나무와 반딧불의 비행 사이를 적셨다. 연주가 끝났을 때 따뜻한 마음으로 박수를 쳤다. 나는 악기의 이름이 궁금했다. 나는 악기를 가리키며 이름이 무엇인가 물었다. 도타라. 무슨 뜻인가? 그가 내 영어를 이해했고 그는 손가락으로 하늘의 별을 가리켰다. 악기의 이름은 두 개의 별이었다. 악기는 두 개의 줄을 지니고 있었고 그 줄에서 나는 소리가 별의 노래와 같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언젠가 내가 별과 별 사이를 떠돌 때 듣게 되는 별의 노래가 있다면 이 선율을 닮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당신을 사랑할 수 있어 참 좋았다』 (59~60쪽)



어쩌면 비행은 나를 별처럼 하늘에 떠있을 수 있게 해주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들뜨고 설렜나 보다. 오늘은 별을 쳐다보며 낭만을 꿈꾸는 것으로 그 마음을 대신해야겠다. 별을 바라보며 설레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내 안의 설렘이 언젠가 여행을 할 때 별처럼 빛나기를 바라며 작은 꿈을 꿔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여행의 속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