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인연'에 대해 생각해 본다. 우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살고 있다. 『서울이 사랑한 천재들』에 보면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혼자 천재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언가 계기가 있었다. 책을 읽으며 인간과 인간의 만남, 인연을 살펴볼 만했다. 어떤 계기가 되는 인연 말이다. 어떤 인간을 만나며 그것이 계기가 되고 획기적인 발전의 시기를 맞이하는 것이다.
정현종의 시 「방문객」이 떠오른다. 누군가를 새로 알게 되고 마주친다는 게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라는 것을 실감해서 전율을 느꼈으니 말이다.
방문객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인연은 늘 한결같지는 않다. 그 언젠가는 매일같이 보던 친구였어도 한동안 연락하지 않아서 특별한 일이 없으니 전화를 걸기가 민망해지는 경우도 있다.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언젠가 아주 오랜만에 동창에게 연락이 온 적이 있다. 나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주어서 반가운 마음에 한 번 만났는데, 이야기를 나눈 후 나중에 꺼낸 말은 결국 보험 가입이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나에게까지 그랬을까 싶어서 가입을 해주었는데, 그다음에는 오랜만의 반가움이 사라져버렸다. 그 친구가 나의 연락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라도 친구를 돕고 싶었지만, 그리고 그거면 예전처럼 아무 때나 툭 연락해도 괜찮으리라 생각했지만, 그 친구는 그게 아니었다. 그 친구는 나의 전화에 깜짝 놀라며 "보험이 혹시 문제 있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아무 일 없이 연락하던 친구를 잃은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그렇게 멀어지고 말았다. 더 이상 친구가 아닌 것이다. 속상할 것도 아쉬울 것도 없이 인연이 다했다는 것을 깨달았던 순간이다.
돈 문제도 그렇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돈 이야기가 나오면 결국은 멀어진다는 것이다. 돈을 빌려주든 빌려주지 않든 말이다.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 그 관계가 오래갈 수 있는 것이다.
예전에 여행을 할 때에는 친한 사람들의 주소를 적어가지고 다녔다. 잠깐 짬이 날 때 그들에게 엽서를 띄우며 소식도 전하고 휴식을 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랜만에 다이어리를 꺼내들어 주소록을 발견했을 때 내심 놀랐다. 이들 중 지금껏 연락을 하는 사람들이 손꼽을 만했기 때문이다. 각자의 삶에 바쁘다 보면 관심사도 달라지고 그렇게 자연스레 멀어지는 것이 우리네 인생인가 보다.
여행 중 만난 인연도 서로 대화도 잘 되고 공감할 이야기가 많다고 해도 이어가기 힘들다. 여행 이야기 말고는 서로 나눌 이야기가 부족해져 연락이 뜸해지다가 끊어지게 마련이니 말이다. 오늘은 오랜만에 여행길 인연들에 대해 떠올린다. 그냥 다들 잘 살고 있으려니 생각하며 그들의 축복을 빌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