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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lti Jul 21. 2024

엄마 3.

엄마의 엄마, 엄마의 손주

2021년 11월 10일. 엄마의 엄마,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그 며칠 전부터 악몽을 꿨다. 베개가 척척해질 만큼 눈물을 흘리며 잠에서 깼다. 가슴이 턱 막혀 숨이 쉬어지지 않아 겨우 숨을 몰아쉬기도 했다. 난 사실 악몽을 꾸는 일이 잘 없다. 그런데, 슬픈 일에 앞서, 불길한 예감을 눈치채지 못한 것이 11월 10일이 되어서야 생생하게 떠올랐다. 


어린 시절 얼마간. 엄마 아빠 언니, 내가 떨어져 살았던 때. 나는 외가댁에 맡겨졌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할머니와 TV를 봤다. 할머니가 산책을 가시면, 가만히 있으라는 말에, 화장실도 안 가고 기다렸다. 할머니는 지팡이를 먼저 짚고, 그다음에 한 발을 걷고, 한 발을 끌며, 들어오셨다. 웃지 않으셨지만, 크게 혼난 일도 없다. 답답하고 조용한 손녀에게 무엇을 잘 시키지도 않으셨다. 반은 움직이기 어려운 몸을 천천히 이끄시며,  밥을 차려주셨다. 콩밥을 싫어하는 손녀에게 콩밥을 가득 주셨지만, 몰래 밥그릇 옆에 콩을 빼두는 것을 모른 척해주셨다. 할아버지는 할머니 몰래 그 콩을 본인 밥그릇으로 옮기셨다. 손녀의 연기에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장단을 맞춰주셨다. 내 기억엔 콩을 가져가시던 외할아버지만 있었는데... 


외할머니는 드라마를 좋아하셨다. 예쁜 배우를 보고, 손녀가 더 이쁘다. 하시기도 했다. 저거 나쁜 거. 저거. 드라마 악녀에게 화를 내셨다. 드라마를 보는 할머니를 관찰하곤 했다. 드라마를 함께 보고 있으면, 내용을 설명해주시기도 했다. 손주 사위 인사를 드리러 갔을 때, 할머니가 휠체어를 타고 있어서 부끄럽지. 그래도 드라마를 많이 봐서 정신은 말똥해.라고 말씀하셨다. 많이 누워계시면서, 드라마 보는 시간을 꼭꼭 챙기셨다. 외손녀는 드라마 작가 지망생이다. 결국 손녀가 쓴 드라마를 못 보고 가셨구나. 나는 천천히 하는, 게으른 나를, 아주 오랜만에 원망했다. 


엄마는 장례식장에서 소리를 내지도, 많이 울지도 않으셨다. 화구에 들어가신 할머니는, 하얀 재가 되어 나오셨다. 화장장에서 납골당으로 이동하기 위한 버스를 타러 가는 길. 장례식 내내 엄마 손을 잡는 게 겁이 났던 나는, 그제야 엄마의 손을 잡았다. 엄마는 양손을 꾹 잡더니, 울컥. 울음을 정말, 토해내듯이, 뱉어내듯이. 헉헉. 우셨다. 


할머니는 엄마를 사랑하셨다. 엄마는 고생을 많이 했다. 할머니는 엄마 걱정을 많이 하셨다. 그래서 가끔, 우리 식구들을 미워하기도 하셨다. 할머니는 엄마의 엄마니까. 엄마는 자식이 우선이니까. 이해는 했지만 섭섭할 때도 있었다. 그래 그냥, 그런 일이 있었다. 모두 다 지나가는 일들.



할머니, 이미 태어나셨을지도 모를 다음 생엔, 두 다리로 걷고, 활짝 웃으시고, 두 팔 벌려 사랑하는 사람 꽉 안아주시기를.  연극, 공연도 많이 다니시면서. 남산 산책 말고, 설악산 등산하시고. 좋아하시는 빵, 직접 빵집 가서 골라 보시고. 


그리고 할머니, 엄마도 할머니가 될지도 몰라요. 어제 테스트기로 확인해 봤는데, 글쎄 두 줄인 거예요. 정작 확인했을 때 저는 아무 느낌이 없었는데, 엄마가 할머니가 된다니, 남편이 아빠가 된다니. 뭐 그런 생각에 눈물이 좀 났어요.  제가 엄마가 되면 엄마 마음을 좀 이해할까요. 나름 엄마 마음을 꽤 이해한다고 생각했는데, 엄마가 되면 더 다를까요.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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