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빈도다'라는 문장을 들어봤을 것이다.
서은국 교수님의 책 '행복의 기원'에서 나온 말로, 이는 우리의 행복을 결정하는 것은 행복의 크기보다는, 얼마나 자주 행복한지, 즉 빈도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화려한 것, 값비싼 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작더라도 매일 반복되는 기쁨이 우리 삶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나도 책을 읽으며 이 문장을 보고 큰 공감을 했지만, 서은국 교수님의 말씀 중 내 마음에 더욱 깊이 새겨진 문장이 있었다.
바로 "사랑하는 사람과 밥을 자주 먹을 것"이라는 말.
사실 별거 아닌, 당연한 말이라고 느낄 수 있지만, 소중한 사람과 밥을 먹는 것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최대의 행복이라고 한다.
어릴 적을 떠올려보면, 하교 후 집에 들어섰을 때, 부엌에서 들려오던 반찬 볶는 소리, 밥 짓는 냄새는 우리를 절로 행복하게 했다.
그렇게 따뜻하게 차려진 밥상에서 가족들과, 친구들과 함께 밥을 먹는 순간은 그저 즐거울 수밖에 없었다.
별 것 아닌 시간인 것 같지만, 그런 기본적인 시간들이 우리를 가장 행복하게 했다,
얘기를 진행하기에 앞서 잠시 뇌과학 이야기를 해보면, 빠르게 발달한 문명에 비해 인간의 뇌는 아직도 호모사피엔스 시대에 멈춰있다고 한다.
그렇기에 뇌가 느끼는 것은 과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해서, "먹을 것, 그리고 사람"이라는 기본적인 것에서 여전히 행복을 느끼도록 설계돼 있다고 한다.
결국에 우리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하는 것은 그리 특별하다고 느낄 수 없는 것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이 사실을 잊고 살진 않을까 싶다.
나이가 들면서 해야 하는 일, 책임져야 하는 일들이 많아지다 보니, 소소한 기쁨들은 자연스럽게 잊히게 된다.
그래서 작은 것들이 주는 행복보다는, 크고 낯선 것들이 주는 큰 행복을 좇곤 한다.
나 역시 독립 이후, 부모님과 지낼 때에 비해 해야 할 일이 늘어나다 보니 시간을 관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 결과 일종의 휴식 시간이었던 식사 시간에서조차 효율을 따지게 됐다.
그러다 보니 정성스레 차려진 식탁 대신, 차리기 편하고 치우기 편한 식탁을 준비하게 됐다.
하지만 그런 시간이 반복되니,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식사시간이 얼마나 귀한 시간이었는지를 깨닫게 됐다.
이전에는 "있어도 안 먹던" 엄마 밥, 그리고 집밥이 이제는 그리운 무언가가 됐다.
그래서 최근에는 배가 고프지 않아도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다.
이전에는 본가에 갈 때면 식단을 핑계로 밥을 먹지 않거나, 과일처럼 간단한 것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편이었는데 요즘은 최소한 한 끼는 꼭 함께 먹고 있다.
밥을 먹고 싶어서보다는, 그 식탁이 준 온기를 느끼고 싶어서가 더 크다.
그렇게 함께 밥을 먹다 보면 자연스럽게 일상을 나누게 되고, 서로의 안부를 듣게 되는데, 별 것 아닌 시간이지만 그 시간에서 마음속에 비워져 있던 온기를 채우게 된다.
우리는 종종 잊고 산다.
밥을 함께 먹는다는 건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하루를 나누는 일이라는 것을.
식사는 수단이고, 본질은 소중한 사람들과의 교류이다.
그래서 우리는 혼자 밥을 먹기보다는,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모여 밥을 먹는 시간을 주기적으로 가져야 한다. 그럼 행복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된다.
휴대폰 하나만 있으면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이 모두 조리된 상태에서 30분 내로 집 앞에 도착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뇌는 그런 순간들보다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식탁"에서 더욱 행복을 느낀다.
전자레인지는 어떤 차가운 음식도 따뜻하게 데워주지만, 우리의 마음까지 데워주지는 못한다. 되려 더 차갑게 만들 수 있다.
주말에는 시간을 내서 가족들, 그리고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식탁을 차려보는 것은 어떨까.
당연하지만 절대 당연하지 않은 그 시간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낄 줄 안다면, 우리는 더욱 행복하고 따뜻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