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
읽었던 책을 또 읽지 않는 편임에도 n 회독 중인 책이 있다.
바로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
『사랑의 기술』을 알게 된 건 약 10년 전, 누군가가 이 책을 함께 읽어보자고 권유해서 알게 됐는데, 당시에는 영문 원서를 받은 터라 책을 온전히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이후 시간이 흘러 『사랑의 기술』의 내용이 떠올라 국문본을 구입했는데, 그 뒤로 사랑과 사람, 관계에 대한 고찰이 필요할 때마다 꺼내 읽는 책이 됐다.
『사랑의 기술』을 간단히 소개하면, 독일 태생 미국의 정신분석학자이자 사회철학자인 에리히 프롬이 쓴 책으로, 무려 1956년에 출간된 책이다.
출간된 지 약 70년이 된 책이지만, 내용을 보면 오랜 세월이 흘렀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2025년이 된 지금 읽어도 내용에 어긋남이 없고, 통찰을 느끼기에 차고 넘치는 부분이 많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읽었던 때의 나의 나이에 따라, 그리고 상황에 따라서도 느껴지는 부분들이 달랐다. 그래서 이 책을 더욱 반복해서 읽게 됐다.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읽기 전, 다음에 명제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랑은 배움의 영역인가"
"사랑은 배워서 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것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은 배워야 한다"라는 주장에 대해 동의하지 못할 것이다.
사랑은 결국 감정의 영역이고 또 감정은 나도 모르게 피어오르는 것이다 보니, 그것은 배움으로써 통제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관점을 다르게 한다면 의견은 달라질 것이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이 아닌,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 마음을 어떻게 전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면 사랑은 명확히 배움의 영역이 된다.
사실 나도 처음에는 사랑을 배워야 한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배울 것이 천지에 널린 세상에서, 자연스러움의 영역인 사랑마저 배워야 한다는 건 너무 복잡한 문제 같았다.
"사랑"이라는 단어와 "기술"이라는 단어의 조합이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다양한 관계를 겪는 과정에서, 사랑하는 누군가한테 영향을 받고, 나 또한 누군가한테 영향을 주는 과정을 겪는 과정에서 생각을 달리하게 됐다.
사랑은 확실히 배움의 영역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타인에게 준비되지 않은, 또는 올바르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조금 극단적으로 말해서 일종의 강요, 폭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느꼈다.
사랑의 방식이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가스라이팅'이라는 용어를 떠올려 본다면 어떤 부류의 사람들인지 느껴질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타인을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을 통제하려 하고, 자신의 건강하지 못한 가치관을 주입하려 한다.
이런 영향은 심리적인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더 심해진다면 신체적인 영역에서도 해를 끼칠 수 있다.
반대로 내가 건강하게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상대방도 그렇다면 그 둘이 사랑을 할 때 생기는 시너지는 어마어마하다.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건강한 사랑을 받음으로써, 둘은 모두 더 좋은 사람으로 성장하게 된다.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시켜줄 수 있는 사람과 시간을 보낸다는 것만큼 인생에서 소중한 기회는 없다.
그것은 기적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사랑의 기술은 무려 70년 전에 출간된 책임에도 읽을 때마다 나를 감탄하게 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사랑"은 단지 성애(이성 또는 동성)에만 국한하지 않고, "형제애", "부모에", "자기애" 그리고 "신에 대한 사랑"까지,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모든 사랑에 대한 얘기를 다루고 있다.
이 점이 현재 우리가 싱글 라이프를 즐기고 있더라도, 사랑의 대상이 없다고 하더라도 감정을 가진 인간으로서 우리 모두 읽어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이다.
사랑은 뜻하지 않게 생겨나고, 우리 내면에 늘 떠돌고 있는 감정이기 때문에 그것을 올바르게 표출하기 위해서는 사랑의 기술을 늘 배우고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책은 '사랑은 기술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풀어간다.
에리히 프롬은 "현대인들은 사랑을 갈망하지만, 사랑에 대해서 배워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라고 말한다.
이 태도의 배경은, 우리는 사랑의 문제는 능력이 아니라 대상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는 사랑을 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실패하는 이유는 "사랑할 올바른 대상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생각은 사실이 아니다.
진정한 사랑은 특정한 대상에 의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대상과 관계없이 자연스럽게 피어오를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제시하고, 이것들을 의식적으로 훈련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한다.
그렇게 훈련해야 할 것 중 중요한 것 몇 가지는 다음과 같다.
먼저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 (자신에 대한 사랑, 타인에 대한 사랑 사이에 ‘분업’은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정신집중을 할 줄 아는 것,
싫증을 느끼지 않는 것,
주변에 나쁜 관계를 두지 않는 것,
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질 줄 아는 것,
자아도취하지 않고, 객관성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
내면의 게으름을 피하는 것
이 외에도 다양한 내용이 담겨있는지라, 나의 문장보다는 에리히 프롬의 문장을 통해서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아무래도 오래된 책이고, 철학적인 내용이 많다 보니 나 역시 초반에는 내용이 어려워서 몇 번을 포기했던 책이지만, 반복해서 읽다 보니 수월하게 읽게 됐다.
내가 겸손하지 못했다고 드는 이벤트가 있을 때, 반성문처럼 이 책을 꺼내든다.
책을 읽고 나면 객관적인 시야를 갖게 되고, 사랑에 대한 올바른 생각을 품을 수 있게 된다.
내 주변에도 "사랑은 배워야 한다"라는 주장에 대해 동의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한다고 하지만, 나는 그것이 명확히 맞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굴하지 않고 훈련을 거듭하고 있다.
실용적인 지식에 대한 교육은 환영받고 있는 우리나라지만, 감정이나 교양에 대한 교육은 불필요한 것이라고 치부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이 안타깝다.
이런 것 때문에 우리 사회가 더 어두워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사랑은 도처에 널려있다. 그것이 단순히 한 대상에 대한 사랑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됨으로써 결국 행복해지는 사람은 내가 사랑을 주는 사람이 아니다.
나 자신이다.
전 국민에게 교과서 같은 존재가 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 -
나도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이 책과 늘 함께할 예정이다.
다음에 읽을 땐 또 어떤 문장들이 눈에 들어올지 기대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