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건조한 사막에서 만난 폭우와 번개의 나날이라니
초등학교 시절, 비디오를 빌려와 가족들과 함께 보면서 흠뻑 빠져들었던 영화 <미이라>.
모래로 덮인 이집트 사막을 배경으로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저벅저벅 걸을 때마다 화면 밖으로 함께 흩날리는 듯한 끝없는 모래와 퍼석한 풍경은 어린 나에게 사막에 대한 강렬한 동경을 심어주었다.
그때 "언젠가는 나도 꼭 가 봐야지!" 하고 품었던 사막에 대한 로망은 규모는 작지만 훌륭한 모래 사막인 페루 이카의 와카치나에서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
하지만 사막은 내가 상상했던 모래 언덕뿐만이 아니었다.
사막의 정의는 연평균 강수량 250mm 이하의 건조 지역인 만큼 그 종류와 모습이 다양한데, 보통 사막하면 떠올리는 모래 사막 뿐만 아니라 자갈 사막과 암석 사막도 포함된다.
내가 살았던 모케구아 역시 태평양 연안의 한류로 인해 극도로 건조한 사막 기후대에 속한 페루 코스타 지역에 있었고, 그곳에서 비를 본 적은 2년 동안 단 한 번이었다(그것도 고작 10분 남짓 내리고 그쳐버렸다.).
칠레 북부는 페루 코스타 지역과 비슷한 풍광을 자랑하지만, 지구상에서 가장 건조한 지역이다.
그리고 그곳에는 여행자들에게 유명한 사막 관광지 마을, 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 San Pedro de Atacama 가 있다.
마치 지구가 아닌 듯한 암석 사막이 드넓게 펼쳐진 곳, 그리고 마을을 조금만 더 벗어나면 있는 알티플라노의 다양한 식생과 환경이 살아 숨쉬는 곳이기도 하다.
여행객들은 보통 '아타카마'라고 부르지만 정작 칠레 현지인들에게는 '산 페드로'라는 이름으로 통용되는 '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이후 이 글에서는 한국 여행자들에게 더 유명한 '아타카마'로 명칭을 통일함.). 해발 약 2,400미터에 자리한 작은 오아시스 마을인 이곳은 이 지역만의 독특한 자연과 기후 덕분에 전 세계 여행자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유명한 관광포인트다.
낮은 담을 두른 흙벽돌 집들이 사막빛 도로를 따라 줄지어 있으며, 마을 중심부 여행자 거리에는 각국의 식당과 카페, 투어 회사가 모여 있다. 그덕에 칠레 북부의 외딴 동네에서 세계 곳곳의 이국적 정취를 함께 느낄 수 있는 독특하고 활기찬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
다만 아름다운 풍경만큼이나 이곳의 물가도 ‘고산’ 수준이다. 칠레의 통화는 페소지만, 당시 물가를 달러로 환산했을 때 식사는 기본 한 끼 최소 10달러 이상, 여행사 투어는 저렴한 축에 속하는 반일 코스인 달의 계곡 투어도 50달러 이상이었다. 가장 저렴한 호스텔 숙소 역시도 그 허접한 시설에 비해서(...) 가격이 꽤 나갔던 걸로 기억한다. (칠레 친구의 말로는 산티아고와 비교해서 체감상 생활 물가가 3~4배 정도 높은 것 같단다.)
생각해보면 당연히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 마을 자체가 외딴 사막 한가운데 위치한 만큼 - 모든 생필품과 식자재를 외부에서 들여와야 하기 때문이고, 관광업으로 먹고 살기 때문에 인건비 등이 많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번쯤은 아타카마의 비현실적인 사막 풍경을 보기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열러 올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원래 이 땅은 무려 11,000년 전부터 살아온 고대 아타카메뇨 Atacameño, 혹은 리카난타이 Likanantaí 원주민들의 터전이었다. 쿤사 Kunza 라고 불리는 그들의 언어를 사용하고, 고유의 종교 의식과 예술을 발전시키는 등 고대로부터 전해져 오는 풍요로운 문화를 자랑하는 민족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오랜 역사를 지닌 아타카메뇨들은, 안타깝게도 스페인 침략과 식민지 시절을 거쳐 이후 문화적 동화 과정을 거치며 그들의 언어는 사멸되고 고유한 삶의 양식 역시 변했다. (앞선 아리카 편에서 언급했듯)
광물자원 쟁탈전이었던 태평양 전쟁의 결과, 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 지역은 볼리비아 리토랄 주 영토에서 칠레 안토파가스타 주 영토로 편입되었다.
암석 사막 지형과 알티플라노 지역을 함께 두른 자연의 축복을 받은 아타카마.
압도적인 자연 풍광을 자랑하는 이곳에는 정말 다양한 여행사 투어 옵션이 있다.
가장 유명한 건 달 표면 같은 사막 지형에서 일몰을 감상하는 달의 계곡 Valle de la Luna 투어, 그리고 새벽 3~4시에 출발해 해 뜰 무렵 솟아오르는 수십 개의 간헐천을 보는 타티오 간헐천 El Tatio (혹은 Geysers del Tatio) 투어, 그리고 아르헨티나와 볼리비아 접경지대 근처 알티플라노의 여러 호수 Lagunas Altiplánicas 를 둘러보는 투어 등이다.
그 이외에도 다양한 종류의 흙 성분 덕에 다채로운 색상을 자랑하는 무지개 계곡 Valle del Arcoíris 트레킹, 전문적으로 별을 보기 위한 스타게이징 Stargazing 투어, 그리고 사해 바다처럼 몸이 둥둥 뜨는 소금 호수 Laguna Cejar y Laguna Piedra 까지 두루 인기를 자랑한다.
투어의 특징과 조건에 따라 고산병과 혹독한 기후를 감수해야 하지만, 그만한 보상이 제대로 주어지는 초현실적인 풍경을 선사한다.
이 당시 나는 파라과이로 파견 간 동기 언니와 함께 칠레 아타카마와 볼리비아 우유니를 여행하기로 계획을 짰다. 나는 언니보다 이틀 정도 일찍 도착해서, 느긋하게 언니를 기다리며 - 여기 오는 여행객이라면 모두가 다 한다는 - 달의 계곡 일몰 투어를 신청했다.
오후에 출발했을 당시에는 괜찮았다. 밴을 타고 투어에 참여한 사람들과 함께 농담 따먹기도 하고 소풍 온 것처럼 들떠있었다.
하지만 그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사건의 시작이었다.
달의 계곡 투어의 하이라이트 지점으로 가는 길에, 갑자기 저런 시커먼 먹구름이 몰려들더니 미친듯한 폭우와 번개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폭우는 그렇다 치더라도 폭번개(?)라니! 사실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은 번개를 본 게 이때였다.
얼마나 많았냐면, "이게 번개인지 큰 빗줄기인지 구별이 안 갈 정도로 끊임없이 번개가 내리쳤다"라고 하면 이해가 될까? 결국 안전을 위해 투어는 중간에 취소되어 바로 아타카마로 내려왔고, - 자연재해라 환불은 없었지만 이건 정말 피치 못할 사정이라 모두가 이해했다 - 푹푹 파인 도로 상태로 인해 마을 가는 길과 마을 안 모두 아수라장이었다. (이날 오후 자전거로 달의 계곡을 가던 중 사정없이 내리치는 번개에 맞은 관광객들이 있어 병원 중환자실로 실려갔다는 믿기지 않는 이야기도 여럿 전해 들었다.)
호스텔 주인에게 물어보니 인비에르노 안디노 Invierno Andino, 즉 '안데스 겨울'이라 불리는 볼리비아 안데스 쪽의 이상기후가 아타카마에도 번져 갑자기 미친 날씨를 만들어낸 거라고 했다. 한번씩 이런 현상이 일어나지만 자기도 살면서 이런 미친 날씨는 처음 본다며, 아타카마를 반의 반도 즐기지 못하다니 유감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기록적인 폭우와 번개가, 오전에는 괜찮다가 오후가 지나고 밤만 되면 내내 쏟아지는 바람에, 투어 천국이라 불리는 이곳에서 투어는 커녕 아무것도 못했다. 그 당시 내가 했던 거라곤 오전 시간에 했던 아타카마 동네 구석구석 산책하기와 여러 번의 공동묘지 방문 뿐 (...)
하지만 아타카마 마을이 이상기후로 인해 길게 고립이 되다보니 이젠 투어 자체가 문제가 아닌, 생존의 문제로 바뀌게 되었다. 그렇다고 여기 일정을 포기하고 떠나자니 칠레 국도도, 아르헨티나와의 국경도, 볼리비아와의 국경도 전부 폐쇄되는 바람에 졸지에 아타카마가 살아있는 감옥이 되고 말았다.
세상에서 가장 건조하다는 아타카마 사막에서 매일 비가 쏟아져 내리는 이 황당한 사태가 하루 이틀을 넘기니 - 외부에서 생필품이나 식자재 물건도 들여올 수가 없어서 먹을 것부터가 난관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며칠 동안 슈퍼의 스파게티면과 공산품 소스, 혹은 썩어가기 직전의 과일로 버텨야 했는데, 이것마저도 점점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게다가 수시로 내리치는 번개 때문에 인터넷은 커녕 전력 공급까지 끊겨서, 외부에 있는 사람들과는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적어도 여기 아타카마 안에 있는 사람들끼리는 손으로 쓴 메모와 텔레파시(?)로 소통을 시도하기도 하는 등 아날로그적 생활을 이어나갔다.
기다리던 파견 동기 언니도 도로가 모두 닫혀있어서 오지 못하고 있다가, 나흘쯤 지난 어느 날 오전에야 겨우 도착했다(마을에 식자재가 동이 나서, 당국이 외부 통행을 잠시 열어준 것 같았다.).
우리는 그렇게 꼼짝없이 아타카마에 일주일 넘게 잡혀 있었고, 숙소를 하루씩 연장해가며 버텼다. 그러다가 날씨는 조금씩 회복의 기미를 보였고, 이틀 뒤부터 드디어 볼리비아 쪽 국경 도로가 열린다고 하여 급하게 볼리비아 우유니로 떠나는 교통 투어를 겨우 예약했다.
이렇게 한숨 돌린 우리는, 이렇게까지 아타카마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가기는 뭣하다며 숙소에 있던 또 다른 언니의 제안으로 바예 데 라 무에르테 Valle de La Muerte, 즉 '죽음의 계곡'이라는 이름의 일몰 전망대까지 하이킹해서 올라갔다.
그리고 떠나기 전날, 마침내 예보대로 비가 그치고 하늘이 완전히 개인 새벽밤이 찾아왔다.
예상치도 못하게 물폭탄과 번개폭탄이라는 자연재해로 인해 - 길게 지속된 고행을 자축하며 친해진 호스텔 식구들과 와인을 마시다가, 급 은하수를 보러 가자는 제안이 나왔다. 투어를 못한 것도 억울하니 마을 근처 십자가 언덕에서 셀프 별 투어를 하자는 재미있는 제안. 살짝 알딸딸하고 취한 채로 모두 와인병을 손에 들고 십자가 언덕쪽으로 의기양양하게 떠났다.
아타카마는 사막이자 고산 지대라 낮에는 햇살이 아주 따갑지만, 밤에는 기온이 급격히 떨어져 살짝 춥게 느껴진다. 거기에 건조한 대기 상태 덕에 달이 없는 밤이면 하늘 위에 떠있는 별이 모조리 지상으로 쏟아질 듯 반짝인다. 비구름 없는 건조한 고산 지역은 별 관측을 위한 최상의 기상 조건. 우리는 드디어 저 사악한 비구름을 완전히 몰아내고 승리한 밤하늘의 향연을 와인과 함께 즐길 수 있었다.
그렇게 별들에 아쉬움을 묻은 채, 우리 일행은 다음 날 볼리비아로 향했다.
하지만 그렇게 떠난 아타카마는, 결국 나를 다시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