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상처와 회복을 모두 품은 카르타헤나와 메데진, 두 도시 이야기
보통 사람들이 '콜롬비아'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일까? 아마도 많은 이들은 불안하고 위험한 치안, 마약왕 에스코바르와 마약 관련 범죄, 품질 좋기로 유명한 커피, 그리고 구릿빛 피부의 미녀 정도를 떠올린다. 하지만 실제의 콜롬비아는 흔히 떠올리는 단어들이 주는 공포와 이국적임을 넘어, 그 자체로 생생하고 다채로운 빛깔을 뿜어내는 곳이다.
콜럼버스 정복 이후 진행되었던 과거 식민지 시절 역사로부터, 현대로 와서는 국민들을 수렁에 빠뜨렸던 내전이라는 큰 아픔을 겪었던 나라. 하지만 여전히 회복탄력성이 돋보이는 커다란 웃음과 함께, 친절하고 씩씩한 사람들이 반겨주는 나라, 콜롬비아.
이 글에서는 과거 식민 시절 역사를 고스란히 품은 오래된 항구 도시 카르타헤나 Cartagena, 그리고 마약왕의 지배와 내전의 아픔을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하면서도 지역 발전을 이룩한 현대의 메데진 Medellín 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1533년 스페인 왕국에 의해 건설된 식민지로서 그 역사를 시작한 카르타헤나. 지명 역시 스페인의 항구 도시에 그대로 따 왔으며, 정식 명칭은 카르타헤나 데 인디아스 Cartagena de Indias 라고 한다. 이곳은 남아메리카 대륙의 상당 부분이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시절 여기에서 약탈한 산더미 같이 쌓인 각종 귀금속을 유럽으로 운반하던 핵심 요충지 중 하나였고, 아프리카에서 끌고 온 노예무역이 번성하던 항구였기도 하다.
흔히 콜로니얼 Colonial 양식이라 불리는 특유의 스페인 식민지풍 건축 양식과 역사의 흔적이 짙게 드리운 올드타운 분위기, 그리고 주변의 에메랄드빛 카리브해까지 - 카르타헤나는 얼핏 보면 착취를 당한 곳이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실제로 관광업으로 매우 유명한 도시이기도 하다. 그러나 상당수 카르타헤나 주민들의 아프리카계 외모를 통해, 길게 이어져 온 어두운 역사의 증거 역시 함께 발견하게 된다.
발코니들이 돋보이는 전형적인 안달루시아 스타일 건물들과 파스텔톤 구시가지, 꽃들로 장식된 집과 거리, 해맑게 웃으며 과일을 파는 검은 피부의 상인들. 이 모든 장면을 보면서 이 도시는 과연 어떤 대가로 만들어 졌는지, 그리고 어떻게 아름다움과 폭력이 절묘하게 공존할 수 있는지를 스스로 묻게 되기도 했다.
카르타헤나가 과거 콜롬비아의 역사라면, 메데진은 현대사의 소용돌이 그 자체였던 도시다.
1970년대와 80년대 악명을 떨쳤던, 콜롬비아 최대 마약 밀매 조직인 메데진 카르텔을 창설하고, 세계적인 범죄조직으로 키운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주요 활동 거점이 메데진이었다. 라이벌 카르텔과 이권 다툼, 그리고 콜롬비아 정부와의 항쟁으로 도시 한복판에서도 늘상 게릴라전이 벌어졌고, 빈민가의 어린이와 청소년들까지도 마약 카르텔에 가담하여 각종 강력 범죄를 저지르는 등 한때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로 손꼽히기도 했다. (메데진이 고향인 한 대학원 동기의 말에 따르면, 어렸을 때 부모님께서 오후 4시 이후로는 아예 밖에 나가지도 못하게 엄한 주의를 주었다고 한다.)
이후 마약테러 전쟁 도중 벌어진 일로 인한 미군의 개입과 콜롬비아 정부의 합동 소탕 작전으로 마약왕 에스코바르가 체포 및 사살되고, 메데진 카르텔은 예전에 비해 세력을 크게 잃었다. 그들의 활동이 공개적으로 드러나던 시절에 비해 콜롬비아에는 어느 정도 평화가 찾아왔지만, 여전히 상흔은 깊게 남아있다. 하지만 긴 시간 폭력을 깊게 경험하고 상처투성이가 되었던 이 도시는, 이대로 무너지기보다는 서서히 회복하고 변화하는 방향을 택했다.
특히 마약왕 에스코바르의 실질적 지배 지역이자 피해가 가장 극심했던 빈민촌 코무나 트레세 Comuna 13 는, 원래 교육이나 문화는커녕 기본적인 사회적 기반조차 없던 지역이었다.
피와 죽음의 역사, 그 뒤안길의 사람들. 파리 목숨과 같았던 사람의 생명, 그리고 총알을 가지고 놀던 아이들까지 뒤얽혔던 곳. 이 근처를 지나는 교통조차 전무해서 무엇 하나도 함부로 들어오고 나갈 수 없었던 곳, 코무나 13. 철저히 세상으로부터 격리되어 폭력을 깊게 경험했던 이곳은, 평화가 찾아온 현재는 격리가 아닌 세상과의 연결로 여러 문제를 풀어나가는 희망의 산 증거이자 웃음과 여유, 예술이 꽃피는 관광지가 되었다.
콜롬비아의 카르타헤나와 메데진.
이 두 도시의 서사는 결국 같은 나라 안에서 시간차로 겪은 서로 다른 상처와 회복에 대한 기록이다.
폭력과 아픔으로 얼룩진 과거를 지우지 않고, 그 위에 '희망'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길을 얹은 도시들.
그리고 그 위에서, 오늘도 밝은 웃음으로 삶을 이어가는 콜롬비아노들에게 조용한 경의를 표하며 이번 이야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