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골 때리는 아마존 여행기 (1)

지도도 국경도 소용없는 초록 정글 한가운데서 마주한 이야기들

by Angela B


갓 대학생이 된 시절부터 지금까지 숱한 나라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여행해 온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제일 많이 받은 질문 중 하나가 있다. 바로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가 어디였는가”라는 질문이다.

어디의 풍경이 돋보이는지, 혹은 어떤 곳이 비용이 적게 드는지 등 질문자의 의도에 따라 해줄 수 있는 답변은 달라지지만, 내게 압도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는 곳은 단연 아마존이다.


아마존 역시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지만, 여행 전의 내게 그곳은 여전히 '강렬한 미지의 세계'였다. 그렇기에 '일생에 한 번은 경험해볼 만한 곳'이라는 생각으로 선택한 여행이었으나, 함께 여행했던 동생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굳이 일생에 한 번도 경험하지 않아도 될 만큼' 힘들었던 여행지이기도 했다.


때론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빽빽한 밀림 속에서 대자연을 온몸으로 마주했고, 뒤이어 지금도 실시간으로 진행 중인 환경 파괴와 어두운 범죄의 현장까지 모두 목격했던 우리 일행.


이제부터는, 그렇게 아름다움과 불편함, 경이로움과 불안함, 자연의 신비로움을 품은 찝찝하고 습한 날씨까지 - 이 모든 것이 동시에 존재했던 아마존에서의 기억을 몇 주에 나누어 풀어보고자 한다.





남아메리카 대륙 상부의 대부분을 차지한 아마존 Amazon 밀림하면 흔히 우리는 브라질만 떠올린다. 그러나 지구의 허파라고 불릴 정도로 거대한 이 밀림은 브라질이 차지하는 크기가 가장 클 뿐, 인접 국가인 콜롬비아·에콰도르·페루·볼리비아·베네수엘라·가이아나·수리남·프랑스령 기아나 등 무려 9개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


아마존을 여행하는 방법과 관광 포인트는 여러 군데가 있지만 그중 내가 갔던 포인트는 페루의 산타 로사 Santa Rosa de Yavari, 브라질의 타바칭가 Tabatinga, 콜롬비아의 레티시아 Leticia - 이렇게 세 나라의 세 마을이 강과 밀림을 사이에 두고 맞닿아 있는 지역이었다. 이 중 콜롬비아의 레티시아만이 국내선 비행편으로 접근 가능한 공항이 있었기에 그곳에서 여행을 출발했다.



운이 좋게도 보고타 발 레티시아 행 콜롬비아 국내선이 업그레이드가 되어 우리 일행은 맨 앞자리 일등석에 앉게 되었다. 라운지에서 만난 직원들이 먼저 우리에게 레티시아로 가기 전에 '가방에 물이나 음료수 같은 걸 많이 넣어가라'며 권유해주었다.


우리의 일반 상식으로는 아마존은 지구상 최강의 깡촌 중 하나이자 사나운 정글이니 물가 역시 마냥 저렴할 것 같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아마존은 워낙 오지이기에 정기 화물선을 통해서 오는 물자 이동에 의존해야 하므로, 들여오는 각종 물품의 가격 역시 높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이 사실을 정확히 잘 몰랐던 우리는 친절한 직원들의 권유대로 일단 물 같은 필수품을 라운지 서비스에서 많이 챙겨갔고, 아마존에 도착해서야 가격을 보고 이를 실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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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색 정글이 빽빡하게 보이는 레티시아 가는 길



레티시아 공항 주변에 내리자 여러 가지 명목의 짐 검사와 함께 아마존 관광세 명목으로 인당 대략 10달러가 넘는 돈을 현금으로 지불했다. 예전보다는 좀 줄어든 편이라지만, 여전히 마약과 희귀 동식물을 밀수하고 거래하려는 업자들의 불법적인 시도가 많아 아마존 내에서는 어떤 교통 수단이든 탑승 전에 짐 검사가 매우 엄격한 편이다.




공항에서 나오자마자 미리 예약한 숙소로 이동했다. 이미 아마존 여행이 쉽지 않을 것임을 예감한 우리는, 숙소만큼은 최대한 좋고 편안해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 그렇게 예약 플랫폼을 뒤진 끝에, 상태가 좋아보이면서도 다른 여행객들과의 프라이버시가 비교적 잘 보장되는 방갈로 형태의 숙소를 골랐다. 넓은 부지를 운영하는 여주인들은 무척 친절했으며, 숙소와 연계된 다양한 아마존 투어 프로그램도 함께 안내해 주었다.


아마존 투어의 형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숙소는 그대로 두고 매일 다른 지역에 가서 아마존을 체험하는 방식, 혹은 아예 정글 깊숙이 들어가 나무로 만든 집이나 현지인의 집에서 며칠간 모기장을 치고 숙박하는 방식이다. 우리가 방문했을 당시에는 우기 시즌이라 모기가 기승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안전을 고려해 숙소는 유지한 채, 매일 다른 곳을 다니는 투어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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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내가 지금껏 가본 숙소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숙소 중 하나였다.



레티시아 주변은 콜롬비아·브라질·페루, 세 나라의 국경이 맞닿아 있다는 뜻에서 ‘트레스 프론테라스(Tres Fronteras)’라 불린다. 그러나 이곳 사람들의 삶에서 국경은 거의 의미가 없다. 콜롬비아에서 일하고 브라질을 거쳐 페루로 돌아가거나, 그 반대로 이동하는 일이 일상처럼 반복된다. 우리가 참여했던 투어들 역시 콜롬비아에서 출발해 페루와 브라질 쪽 정글을 오갔다가 돌아오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국경 지대에서는 대체로 경계가 느슨한 편이지만, 아마존에서는 그 경계가 희미하다 못해 아예 무의미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연이은 투어에서 하루에도 몇 번이고 강과 국경을 넘나들었지만 한번도 여권 검사를 한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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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교통 수단은 오토바이와 보트다. 특히 도로 사정이 좋지가 않아서 차보다는 오토바이 같은 형태가 다니기에 좀더 유용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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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강변이나 길가에 노숙자들이나 어린 아이들이 자주 눈에 띄는, 실제로 남미 각국의 아마존 지역은 전반적으로 빈곤율 매우 높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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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예품 시장에서는 아마존 거북이를 토막내 굽는 요리가 팔리고 있었다. 지역 주민에 한해 생태 보호종도 섭취가 허용된다고 하지만, 그 조건이 어디까지 지켜지는지 그 진실은 저 너머에



아마존 지역은 각 부족마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해 왔을 만큼 언어적 다양성도 매우 풍부하다. 그러나 지금은 이 언어들을 모국어로 쓰는 화자를 거의 잃어 사멸 위기에 처한 언어들이 많아, 학교나 지역 기관을 중심으로 다시 따로 가르치며 보존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아마존 사람들은 자신의 모국어 외에도 다른 지역과의 소통을 위해 국가 공용어인 포르투갈어와 스페인어를 배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국경의 의미가 옅은 지역이다 보니, 실제 생활에서는 두 언어가 뒤섞인 ‘포르투뇰 Portuñol’이라는 비공식 언어가 자연스럽게 사용된다.


(포르투갈어와 스페인어 모국어 화자들의 말에 따르면, 아마존 출신 사람들이 구사하는 두 언어는 원주민계 어휘와 억양, 문법이 뒤섞여 있어 듣기에 상당히 독특하고 이질적이며 - 때로는 괴이한 느낌까지 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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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아마존이라 하면 우리는 동물들을 먼저 떠올리기 쉽지만, 사실 이곳은 셀 수 없을 만큼 다채로운 식물의 보고이기도 하다.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간 수많은 조사가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아마존 탐사가 진행될 때마다 아직까지 새롭게 발견되는 식생이 등장한다고 한다. 이곳에서만 서식하는 다양한 식물들을 바탕으로, 동물들 또한 촘촘한 먹이 그물을 이루며 자연 속에서 모두 조화롭게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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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동안 이어진 아마존 투어 중, 일부 시간은 온전히 아마존 동물 관찰을 위해 할애되었다.

그중 하루는 페루 아마존 현지인의 자택을 방문해서, 다친 채로 구조되었거나, 어미에게 버려졌거나, 혹은 밀렵꾼에게 끌려가기 직전에 발견되어 그 집에서 돌보며 보호 중이라는 아마존 출신 동물들을 만나며 사진을 찍는 일정이었다. 처음으로 살아 움직이는 아마존의 동물들. 특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털이 보드라웠던 나무늘보와, 자연이 만들어낸 신비로운 색채를 그대로 몸에 두른 듯한 대형종 앵무새를 보았을 때는 우리를 포함한 투어 참가자들 모두가 너무나 감격했었다.


하지만 감격도 잠시, 이 일정은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안겨주었다.

이미 버려지거나 반죽음 상태에서 구조된 이 동물들은 어차피 야생에서 철저히 배제되어 자연으로 돌아가기는 불가능한 상태였다. 대신 이곳 터줏대감 현지인 가족의 '보호 대상'이자, 동시에 짭짤한 '수입원'이 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명목상으로는 동물 보호라고 했지만 - 하루에도 여러 차례 관광객들이 올 때마다 온전히 쉬고 있어야 할 동물들을 억지로 꺼내어 보여주는 일은, 결국 이들을 돈벌이로 이용하는 것에 더 가까웠다. 우리 일행이 의도하거나 바라던 바는 아니었으나, 결론적으로 아마존의 동물들을 관광 산업의 일부로서 소비하게 된 건 사실이었기에 투어를 마치고 돌아가는 마음 한 구석이 찝찝했다.


정글이라는 환경적 특성상 지금도 아마존 일부 지역에서는 게릴라가 활동할 만큼 법의 손길이 느슨할 수밖에 없지만, 씁쓸하게도 이곳 역시 돈의 논리만큼은 철저하게 적용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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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아마존 동물 투어 중 또 다른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건 Isla de los Micos, 즉 아마존 태생의 미코속 원숭이들이 모여 사는 작은 섬에 방문했던 날이었다. 때때로 서식지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전혀 위협이 되지 않고, 오히려 간식까지 준다는 걸 이미 아는 이 섬의 원숭이들은 사람을 하나도 겁내지 않았다. 이들은 마치 관광객들이 장난감이라도 되는 양 순식간에 올라타고 뛰어다니고, 미친듯이 관광객들의 머리나 어깨 등을 오가며 꼬리를 칭칭 감거나 꼬리로 등을 툭툭 쳤다. 이런 원숭이들의 모습에 웃음이 나다가도, 솔직히 무섭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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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가장 웃겼던 건, 이날 이곳에 함께 투어 온 사람들과 아마존 가이드들은 - 처음부터 원숭이보다는 동양에서 온 우리 일행을 더 신기해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밀림 근처에서는 원숭이들이 워낙 흔하고, 사람 사는 곳까지 내려와 음식을 훔쳐 가는 일도 다반사라 어쩌면 그들에게 원숭이는 이미 익숙하고 지겨운 존재였을지도 모르겠다. 반면 아득할 정도로 먼 나라에서 온 동양인은 훨씬 더 낯설고 신기한 대상이었을 테니까 말이다.


아마존은 콜롬비아 최강 깡촌이자 오지에 속하는 곳이라 더 그랬을까? TV나 인터넷이 아닌, 실제로 살아 움직이는 동양인을 살면서 처음 본다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우리와 함께 사진 찍자고 정중하게 요청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 아예 아무 말 없이 우리를 대놓고 찍어간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약 200번은 넘게 사진이 찍혔을 것 같다고 짐작한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떼지어 줄을 서서 사진을 찍자고 몰려드는 풍경 속에서 문득 깨달았다.

이 섬의 관찰 대상은 원숭이가 아니라, 동양의 한국에서 온 우리였다는 사실을.

그렇게 우리는 이날 마치 아마존의 인기 스타이자, 진짜 '원숭이'가 된 기분이었다.




IMG_2850.jpg 시시각각 변하는 구름이 아름다웠던 아마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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