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들 좋다는데, 나는 왜 이곳이 그렇게 힘들었을까
남미를 꿈꾸는 많은 사람들의 버킷리스트이자, 전 세계 다이버들의 성지로 불리는 에콰도르의 갈라파고스 제도 Islas Galápagos. 그러나 지갑 사정이 빠듯한 배낭여행자들에게는 에콰도르 본토에서 오가는 비행기 삯과 관광세 성격인 입도비, 본토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비싼 물가와 각종 투어 비용로 인해 계획 단계부터 여행 자체를 고민하게 만드는 곳이기도 하다.
나 역시 이 이유를 익히 잘 들었기에 남미에서 5년이나 사는 동안 계속 이곳에 가는 걸 망설였다. 그러나 우연히 검색해보니 7월 겨울 비수기에는 비행기 티켓도 꽤 저렴한 편이었고, 최성수기인 12월~2월 한여름에 비해 일행이 많지 않을 경우 숙박시설 역시 예약 없이 당일에 방을 구할 수 있을 정도로 여유가 있다는 의외의 정보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7월 여름방학을 이용해 약 일주일 정도 시간을 내어 가보기로 결심했다.
갈라파고스에는 여러 섬이 있지만 주요 섬은 관광의 중심지이자 가장 번화한 산타크루즈 Santa Cruz 섬, 면적은 가장 넓지만 본격적으로 개발된 지 10년 남짓된 이사벨라 Isabela 섬, 그리고 찰스 다윈의 이름을 딴 연구소인 다윈 연구 센터가 위치한 산크리스토발 San Cristobal 섬 등이 있다.
산타크루즈 섬의 시모어 Seymour 공항을 이용하는 인·아웃 일정이 항공권 가격 면에서는 가장 저렴한 편인데, 이 공항은 행정상 산타크루즈에 속하지만 실제 위치는 북쪽의 발트라 Baltra 섬에 있다. 다만 일정이 짧지 않고 약 일주일 정도의 여행을 계획한다면, 산타크루즈 인–산크리스토발 아웃 혹은 그 반대 일정으로 항공권을 끊는 편이 동선상 가장 효율적이다.
갈라파고스 일정 전에는, 유학 시절 친하게 지냈던 콜롬비아 친구네 가족을 방문하기 위해 주말을 끼고 며칠간 메데진에 머물렀다. 이후 메데진 공항에서 수도 보고타로 이동한 뒤, 보고타에서 에콰도르 키토행 비행기로 환승하고 다시 갈라파고스로 향하는 일정이었다. 비행 스케줄상으로는 환승마다 4시간 이상 여유를 두었기에, 중남미에서 매우 흔한 탑승 및 출발 지연이 있어도 큰 문제는 없었을 거라 여겼으나, 역시 이곳은 무슨 일이든 다 일어날 수 있는 남미였다.
일단 메데진에서 보고타로 가는 길에 예상 출발 시간을 지난 비행 지연이 발생했다. 급기야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다음 편 비행기와 승객을 합쳐 한꺼번에 태우는 어이없는 일까지 벌어졌는데, 이는 새벽 비행기라 승객이 매우 적어서, 그리고 중남미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또 다시 보고타 - 키토 구간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비행 지연이 안내판에 떴다. 정말 애타는 마음으로 기다리다 겨우 에콰도르 수도 키토 Quito 공항에 도착했고, 입출국 수속까지 헐레벌떡 마치고 나니 까딱하면 비행기를 놓칠 것 같은 시각이 되었다.
갈라파고스행 비행기의 경우 - 국제선으로 도착하든 에콰도르 국내선이든 그 어떤 연결편을 타더라도 무조건 처음에 짐을 찾은 뒤 다시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고 짐을 부쳐야 하지만, 연쇄적인 비행 지연을 겪은 나에게는 그럴 시간이 없었다. 하루에도 여러 대씩 갈라파고스로 가는 비행기가 있는 과야킬 Guayaquil 공항과는 달리, 키토 공항에서 갈라파고스로 오는 비행기는 꽤 제한적이었기에 내가 이날 비행기를 놓치면 최소 다음 날까지 기다려야 했다. 아무래도 짐 문제에 대해 분명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을 것 같아 주변에 있던 공항 직원들과 게이트 승무원에게 급하게 물었으나, 보고타에서 오는 거라면 짐이 알아서 도착할 것이니 일단 비행기부터 타라고 했다. 내가 알고 있는 것과 규정이 전혀 달라 고개를 갸우뚱 했지만, 내게는 낭비할 시간이 없었다. 게이트가 닫히기 직전에 탑승하며 갈라파고스 산타크루즈 섬의 관문인 발트라 섬의 시모어 공항에 겨우 힘들게 도착했다.
그러나 발트라 공항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마지막까지 내 짐은 나오지 않았다. 모든 컨베이어 벨트를 샅샅이 뒤지고 항공사 직원에게 따져 물어가며 자초지종을 조사해보니, 결국 내 캐리어가 키토 공항에 외로이 떠돌고 있는 걸 항공사 직원이 발견해서 일단 항공사 사무실에 보관 중이라고 했다. 불행하게도 내가 만났던 직원들은 규정을 몰랐고, 그저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아무 말이나 한 것이다. 게다가 여기서 한술 더 떠, 발트라 공항의 항공사 직원은 나더러 수하물 규정상 키토로 다시 가서 직접 짐을 찾아가야 한다는 망언을 했다.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화가 머리끝까지 나며 폭발했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냐.
나는 키토에서 출발한 게 아니라 콜롬비아 메데진에서부터 비행기를 탔고, 너희 항공사만 이용해 환승을 해 왔다. 그런데 너희 쪽에서 두 번이나 출발 지연을 일으켜 놓고, 그 결과가 이거라는 거냐?
게다가 키토로 다시 가서 직접 짐을 찾아가라니?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비행기를 놓치더라도 내가 알고 있던 규정대로 했을 거다. 직원이 제대로 된 규정조차 알지 못하고 안내하는 게 말이 되느냐!”
화난 감정에 뇌가 익어가는 도중에도, 나는 간신히 이성을 붙들고 하나하나 따져 물었다. 내 말을 듣던 직원은 다시 확인해보겠다며 키토 공항 사무실에 전화를 걸었고, 내 말처럼 결국 두 차례의 출발 지연과 혼란스러운 안내 등 모든 문제가 항공사 측의 실수였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직원은 마침내 “오늘은 더 이상 갈라파고스로 가는 비행편이 없으니, 내일 이후 비행기로 짐을 보내겠다.”라는 애매모호한 답변을 내놓았다. 내 숙소 주소와 전화번호를 종이에 적어 갔고, 내 캐리어를 배달할 사설 업체 기사까지 지정해주었다. 그러나 여기서 한술 더 떠, 모든 책임이 항공사 측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택배비는 내가 현금으로 직접 부담해야 한다는 어이없는 말을 함께 덧붙였다. 그렇게 공항에서의 이 황당한 해프닝은, 별다른 사과 한마디 없이 마무리되었다.
나는 결국 이날 여권과 핸드폰, 현금과 신용카드 지갑 같은 아주 기본적인 소지품, 그리고 공항에서 사은품으로 받은 비누와 화장품 샘플, 캐리어에 넣는 걸 깜빡하고 대충 쑤셔 넣은 수영복 정도만 달랑 든 가방과 함께 갈라파고스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 섬에 도착하는 과정부터 심신이 이미 많이 지쳐 있었고, 도착하자마자 또 한 차례 큰 소모를 겪은 뒤 공항을 터덜터덜 나왔다. 내가 타고 온 비행기가 그날의 마지막 항공편이었고, 공항 안에서 한참을 실랑이 하느라 가장 늦게 나오는 바람에, 과연 버스가 남아 있을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택시를 불러야 하나 싶어서 막연히 고민하고 있던 찰나, 마침 에콰도르 본토에서 온 가족 단위 단체 관광객을 태우기 위해 대기 중이던 가이드 겸 버스 기사가 나에게 다가왔다. 사정을 설명했더니 자리가 하나 남았다며 흔쾌히 섬 중심부까지 나를 태워다 주겠다고 했다. 그 말에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버스에 올랐다.
그러나 버스가 출발한 뒤, 그는 점점 불편한 말을 던지기 시작했다.
"너 참 예쁘게 생겼다", "왜 애인이랑 같이 오지 않았느냐," "섬 안내가 필요하면 내가 좋은 곳을 직접 안내해 줄 수 있다" 같은 말들이었다. 나는 더 이상 상대하고 싶지 않아 최대한 짧고 딱딱하게 대답했더니, 그는 이내 기분이 상한 모양이었다. 결국 나를 마을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내려주며 여기서부터는 알아서 가라고 말하며, 처음과는 달리 돈까지 요구했다. 말도 섞기 싫어진 나는 얼마간의 돈을 건네고, 가방을 들러메고 30분 남짓을 천천히 걸어서 마을에 도착했다.
그렇게 내게 에콰도르, 그리고 갈라파고스라는 섬에 대한 첫인상은 피로와 불쾌함이 겹겹이 포개진 채로 남게 되었다.
숙소에 도착해 짐이랄 것도 없는 가방을 내려놓고, 한숨을 돌리며 흥분과 허탈한 마음을 가라앉힌 채 투어를 알아보았다. 서비스나 투어 인원 수 등의 이유로 같은 코스라도 여행사마다 가격 차이가 꽤 있었는데, 적게는 5달러에서 많게는 20달러 이상 차이나기도 했다. 혹은 한 여행사에서 이것저것 쭉 예약하면 깎아주기도 하지만, 그 역시 모두 현금으로 지불할 경우에 한한 기준이었다. 갈라파고스 역시 이스터 섬과 마찬가지로 본토와는 고립된 섬이다 보니, 카드 결제가 잘 안되거나 인터넷 연결이 불안정한 곳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대부분의 상점과 여행사에서는 카드보다는 현금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래도 공항이 있는 산타크루즈 섬이나 산크리스토발 섬은 카드 결제가 가능한 곳이 비교적 많은 편이지만, 반면 인터넷조차 잘 안 터지는 이사벨라 섬은 사실상 현금이 필수다.)
참고로 에콰도르는 미국 달러를 쓰지만, 100달러 지폐는 현지인들에게는 지나치게 고액이라 곤란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20달러 지폐 위주로 준비하는 것이 좋다. 실제로 한 번은 여행사에 현금으로 투어 비용을 지불했더니, 직원이 나의 100달러 지폐를 들고 거스름돈을 바꿔주는 곳을 찾아 해매는 바람에 40분 넘게 사무실에서 기다린 적도 있었다.
이날은 어제 약속받은 대로 키토에서 비행기가 들어오는 날이었다. 아침부터 친구와 함께 불안한 마음으로 내 짐이 도착했다는 연락이 오기를 기다렸지만, 공항에서도 기사에게서도 여전히 아무 소식이 없었다. 짐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도무지 무엇 하나 손에 잡히지 않을 것 같아, 이날의 마지막 비행기 시간 전까지는 모든 투어나 일정을 최대한 뒤로 미루고 얼빠진 표정으로 그저 기다리기만 했다. 그러나 끝내 묵묵부답이었다.
오후가 되자 드디어 내 짐이 발트라 공항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긴 했지만, 정작 짐을 가져다주기로 한 기사에게서는 두 시간이 지나도 답이 없었다. 거의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오후 늦게 출발하는 투어에 참여하기 위해 푸에르토 아요라 Puerto Ayora 항구 쪽으로 갔는데, 그때 갑자기 친구로부터 "아무래도 네 캐리어를 들고 숙소 근처를 지나가는 사람을 본 거 같다"는 급한 연락이 왔다.
나는 투어 가이드에게 잠시 숙소에 들렀다 오겠다고 양해를 구한 뒤, 가까스로 내 캐리어를 들고 숙소 주변을 배회하던 있는 기사를 찾아내 내 짐과 상봉할 수 있었다. 서둘러 돈을 지불하고 숙소에 캐리어를 던져 넣은 뒤, 다시 투어 가이드가 있는 곳으로 전력질주했다. 흑흑, 정말이지 너무나 힘든 과정을 거쳐 내 짐과 다시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홀가분한 마음으로 진짜 갈라파고스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지금부터는 갈라파고스에서 했던 각종 투어에 대한 감상, 그리고 각 섬을 이동하면서 느낀 특징과 여정까지 사진 위주로 정리하여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또한 나는 갈라파고스에서 일주일 넘게 머무는 동안 총 5개의 투어를 했는데, 투어에 대한 이야기에는 앞에 숫자를 붙여두었다.)
1. 산타크루즈 바이아 투어
바이아 Bahia 는 스페인어로 만(灣)이란 뜻인데, 말그대로 산타크루즈 섬 주변의 주요 포인트들을 배를 타고 쭉 돌아보는 투어다. 내가 지불한 비용은 35달러였고, 소요시간은 대략 3-4시간 정도였다. (참고로 영어 가이드가 포함되는 경우에는 비용이 더 올라갈 수 있다. 나는 스페인어 가이드를 선택했다.)
이 투어에서는 갈라파고스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파란발부비새를 비롯해 이구아나, 펠리컨, 이곳에 자생하는 게나 상어까지 다양한 생물을 만날 수 있다. 산타크루즈 섬 인근의 여러 포인트들을 천천히 둘러본 뒤, 마지막에는 에메랄드빛 바다 천연 수영장으로 유명한 라스 그리에타스 Las Grietas 에서 수영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물론 이곳은 배를 타고 개인적으로도 찾아갈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다른 투어들에 비해 비용이 저렴하면서도,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갈라파고스의 상징적인 풍경과 동물들을 두루 관찰할 수 있어서 가성비와 만족도 면에서 매우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투어였다.
2. 산타크루즈 노스 시모어 North Seymour 섬 투어
산타크루즈 북쪽에 있는 노스 시모어 섬으로 향하는 투어로, 내가 갈라파고스에서 했던 투어 중 가장 비쌌으며 지불한 비용은 210달러였다. 가격만 놓고 보면 망설여질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충분히 돈값을 했다고 느낀 투어이기도 하다. (내가 선택한 일정에는 물놀이가 포함되어 있지 않았지만, 스노클링 옵션을 추가한 투어를 운영하는 여행사들도 있었다.)
이 투어는 총 10명도 되지 않는 소규모로 진행되었고, 영어 가이드는 매우 친절한 태도로 전문적인 설명을 해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른 섬에서는 보기 힘든,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새인 군함조 Frigatebird 를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었다. 게다가 선장님이 직접 잡은 참치로 만든 참치 스테이크랑 밥, 그리고 무한 리필되는 과일 간식까지 모두 맛있어서 말 그대로 오감이 만족했던 투어였다. 만약 조류 관찰에 관심이 많거나, 생물학적 관점에서 갈라파고스를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충분히 추천하고픈 투어다.
나는 평소 배멀미가 심해 배 타는 걸 몹시 힘들어하는 편인데, 이날은 날씨가 도와준 덕분인지 파도가 잔잔하고 바다도 예뻤다. 덕분에 비교적 편안한 컨디션으로 다녀올 수 있었다.
두 투어를 마치고 난 다음 날은 산타크루즈 섬을 떠나는 친구와 헤어진 뒤, 갈라파고스 국립공원 쪽으로 가서 국제적 멸종위기종이자 갈라파고스에 자생하는 갈라파고스땅거북을 보고 오후에는 이사벨라 섬으로 이동하는 일정이었다. 갈라파고스땅거북은 육지거북 종류 중 가장 큰 종이라고 한다. 느릿느릿 움직이는 커다란 거북을 보니 그 존재감이 확연히 느껴졌다.
살면서 처음 보는 땅거북들을 실컷 만나고 숙소로 돌아온 나는, 푸에르토 아요라로 가서 다시 페리를 타고 이사벨라 섬으로 이동했다. 섬과 섬으로 이동하는 페리 시간이 오전과 오후에 각 1-2회 정도로 정해져 있기에, 이 시각 근처에는 각 섬으로 이동하는 여행자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표를 예매할 때 받은 목걸이를 패용하고 있어야하는데, 이걸 보고 페리 회사마다 직원들이 와서 각자 손님들을 분류하고 줄을 세운다. 분위기는 마치 돗대기 시장 그 자체였다.
이후에는 워터택시 Water Taxi 를 타고 페리로 이동한다. 갈라파고스는 발트라 공항, 혹은 항구에 도착하면 바로 배를 타고 내리는게 아니라 - 근처의 바다에 정박했다가 워터택시라 불리는 작은 배를 타고 다시 항구로 이동하는 식이다. 이 비용도 탈 때마다 1달러가 드는데, 항구 근처의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함인건지, 아니면 그저 이 섬에 사는 사람들로 하여금 관광객들을 통해 돈을 벌게 하기 위함인지는 사실 알 수 없었다.
배멀미가 걱정되어 분명 제일 큰 배로 부탁한다고 어제 직원에게 그렇게 말했건만, 내가 배정받은 페리의 규모가 생각보다 너무 작아서 걱정이 되었다. 게다가 그나마 바람을 맞고 바다를 응시하며 울렁거리는 속을 달랠 수 있는 뒷자리가 아니라 중간 앞쪽으로 가야했어서 내 자신이 슬슬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이 걱정은 현실이 되었다.
이날 날씨가 정말 별로였는데, 그래서인지 정말 4미터는 족히 되어보이는 파도가 쉴새 없이 몰아치는 바다를 3시간 넘게 타고 쿵쿵거리며 이동했다. (나중에 만난 선장님 말로는 원래 7월에서 9월까지 갈라파고스 주변 파도가 사나운데다, 특히 이사벨라 섬을 오가는 뱃길의 파도가 높다고 했다.) 10분도 지나지 않아 내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고, 머리가 너무 어지럽고 속이 메슥거려서 뒷자리로 가고자해도 배가 위아래로 미친듯이 흔들리니 일어나는 것조차 힘들었다.
설상가상으로 내 자리는 사방이 막혀있는 자리라, 배멀미에서 흔히 추천되는 방법인 '창문으로 멀리 한 점을 응시하기'도 불가능해서,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 자리에서 기절하기'뿐이었다. 나를 지키기 위해 혼절하듯 잠시 쪽잠을 자고 일어나니, 젠장. 여전히 바다를 달리고 있었다. 그저 죽고만 싶었는데 바다 한가운데라 뛰어내릴 수도 없었다. 배멀미 때문에 점심은 일부러 먹지 않아서 속은 비었는데도 마구잡이로 구토가 나올 것 같아 입과 배를 손으로 움켜쥐며 고통을 견디고 있는 도중에 배가 속도를 조금씩 늦추기 시작했다. 드디어 이사벨라 섬에 도착한 것이다. 실제로 파도가 심해 예정시간보다 훨씬 긴 3시간 반이 걸렸고, 나는 그동안 지옥을 다녀온 기분이었다.
이사벨라 섬은 인터넷도 잘 안 터지는 외딴 섬이라 미리 숙소 몇 개만 알아보고, 찾아가서 빈방이 있는지 묻기로 했다. 마침 처음에 갔던 숙소의 방이 오늘 하나 빈다고 해서 바로 갔고, 다음 날에는 그 숙소의 앞 다른 숙소에 방이 빈다고 해서 거기로 가기로 했다. 이렇게 숙소 주인과의 직거래로 인터넷 예약 플랫폼 비용이 빠지니 더블 침대가 있는 방에 1박당 20달러라는 저렴한 비용으로 묵을 수 있었다. (성수기가 아닌 비수기라서 가능한 방법인 듯 하다.)
3. 이사벨라 섬 시에라 네그라 Sierra Negra 화산 트레킹 투어
이 투어는 갈라파고스 바다와는 관련 없이 - 이사벨라 섬 안의 시에라 네그라 화산을 트레킹하며 화산 지형을 살펴보고, 과거 화산 폭발의 흔적을 둘러보는 일정으로 진행된다. 간만에 스무 명이 넘는 대규모 인원이 함께해서 그런지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으로, 5~6시간 걸리는 반나절 투어 비용은 50달러였다. 영어 가이드와 스페인어 가이드가 각각 배정되어 두 언어로 설명이 진행되었다.
이사벨라 섬은 원래 어민들이 고기를 잡으며 살아가던 조용하고 평화로운 섬이었지만,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인 2015년부터 이 섬이 지닌 천혜의 자연을 바탕으로 서서히 관광지로 개발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렇게 외지인들에게 개방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섬에 인프라 자체가 여전히 부족한 편이라고.
예전부터 화산 폭발이 잦고 접근이 어려운 섬이었던 탓에, 여기에 살던 사람들 중에는 화산과 관련된 자연 재해로 인해 죽거나 다치고, 주거지를 잃는 아픔을 겪은 이들도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는 이러한 역사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화산 지형을 관광 자원 중 하나로 발전시키고 그 수익을 섬 주민들의 삶을 개선하는데 사용하고 있다는 이사벨라 섬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사벨라 섬만의 서사가 인상 깊고 흥미로운 투어였다.
내가 참여한 날은 날씨가 안 좋아서 비를 맞으며 꽤 긴 트레킹을 해야 했기에 체력적으로 힘들었다.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걸어 올라가 도착한 정상에서, 거대한 화산의 용암 흔적과 함께 내려다본 이사벨라 섬의 전경은 이 투어의 하이라이트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같이 트레킹 한 사람들이 참 좋았다. 이날 이후에 우리는 내내 이사벨라 섬 일정을 맞춰 식사를 함께 했고, 지금도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가끔씩 안부를 주고받고 있다. 그래서 더 고마운 기억으로 남은 투어였다.
오후에는 눈물의 벽 El Muro de las Lágrimas 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자전거를 빌려 가보기로 했다. 눈물의 벽은 1950년대 이곳에 있던 죄수들이 화산암을 깎고 올려서 만들었다고 한다.
4. 이사벨라 로스 투넬레스 Los Tuneles 투어
스페인어로 '터널들' 이라는 뜻으로, 용암들로 만들어진 독특한 지형이 터널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이사벨라 섬에서 다른 건 몰라도 이 투어는 꼭 하라고 할 정도로 많은 추천을 받았었다. 이는 스노클링을 통해 상어, 가오리 등의 야생 동물 관찰을 하는 투어인데, 특히 그렇게 커다란 해마를 본 건 살면서 처음이었으며 커다란 바다거북과 함께 수영한 것도 잊지 못할 추억이다. 내가 냈던 비용은 75달러 정도로 기억하는데, 이 역시 인터넷으로 예약하는 것보다 내가 이사벨라 섬에서 직접 발품을 팔아서 예약한 것이 더욱 저렴했다. (투어 출발 당일 오전까지 한 자리가 남았던 걸 예약해서 2시간 뒤에 바로 출발했던 거라 더욱 그랬을 수도 있다.)
로스 투넬레스 지역 자체는 바위투성이 지역이라 그런지 파도 없이 잔잔하니 참 좋았다. 하지만 이사벨라 섬을 출발해 거기까지 오가는 길이 문제였는데, 이 또한 얼마 전 겪은 멀미와의 사투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원래 이 시즌에는 파도가 높은데 하필 보름달 시기라 만조까지 겹치며 파도는 최고 5미터까지 치솟을 정도로 더 힘들었다.
그리고 수온 역시 꽤 차가웠다. 겨울이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원래 갈라파고스 주변을 흐르는 훔볼트 해류가 한류라서 바다가 꽤 차가운 편이다. 투어 시작 전에 먼저 롱수트를 입을 것인지 숏수트를 입을 것인지 묻는데, 숏수트를 고른 사람들은 100퍼센트 후회했다. 절대 롱수트 없이는 가지 말 것. 맨살을 다 가려야 한다. 그날은 수온이 따뜻한 편이었다는데도 모두들 덜덜 떨었고, 점점 스노클링 포인트를 지날 수록 들어가기 싫다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선장님과 가이드가 이 험한 바닷길을 어떻게 잘 알고 운전하는 지 신기하기도 해서, 투어 막판에 내 배멀미가 조금 가라앉은 뒤 직접 그 이유를 물어보았다. 알고 보니 갈라파고스의 여행사들은 이 지역 바다의 사정을 훤히 꿰고 있는 어부들과 협업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란다. (특히 이사벨라 섬은 대부분 그렇다고 한다.)
갈라파고스에서는 기본적으로 날씨가 좋지 않으면 조업을 할 수가 없고, 어부별로 일주일에 조업이 가능한 날과 불가능한 날이 정해져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렇게 바다에 나갈 수 없는 날에는 여행사와 협업하여 관광객을 태우고 투어를 진행하며, 어부들의 생계에 보탬이 되는 구조라고 설명을 덧붙였다.
이렇게 날씨가 궂은 비수기에는 특히 이 지역 뱃길을 어릴 때부터 몸으로 익힌 어부들의 활약이 도드라진다. 투어 시간대가 유난히 다양하고, 보통 이른 아침부터 투어 일정이 시작되는 이유 역시 어부들의 스케줄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말까지 듣고 나니, 단순한 궁금증을 넘어 갈라파고스 사람들이 어떻게 삶을 지혜롭게 꾸리는 지 그 방법 하나를 이해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 그럼, 이렇게 조업도 어려울 정도로 사나운 파도가 칠 때 투어하는 우리는 과연 괜찮은 거란 말이더냐!
며칠 전 산타크루즈 섬에서 이사벨라 섬까지 오는 페리를 타고 호되게 당한 뒤, 섬에 내려 숙소를 찾고 정신을 되찾은 뒤, 다시는 3시간 넘는 배멀미 지옥을 경험하지 않기 위해 산크리스토발 섬으로 가는 경비행기를 예매했었다. 그러나 공항까지 가는 교통수단을 도무지 찾을 수가 없어서, 결국 천천히 이사벨라 섬 가운데 있는 경비행기 전용 공항까지 캐리어를 질질 끌고 천천히 걸어갔다.
공항에서는 그러나 또 다시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직원이 표를 팔 때 수하물 허용 한도를 20lb (20파운드, 약 9kg) 라고 정확하게 고지하지 않고, 내가 이를 20kg으로 착각하도록 만든 것이다. 그 결과 나는 의도치 않게 추가 요금을 더 내게 되었고, 공항에서 이를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 캐리어를 버릴 수도 없기에 어쩔 수 없이 초과 무게에 해당하는 요금을 다 지불해야 했는데, 비행기 요금의 절반 을 훌쩍 넘는 벌금으로 돌아왔다.
화가 난 나는 즉시, 내게 비행기 표를 판매했던 직원에게 바로 전화를 연결했다. 그리고 처음부터 나에게 수하물 단위가 lb 라는 사실을 단 한 번도 정확하게 설명한 적이 없었다는 점과, 표를 구매한 뒤 받은 바우처에도 역시 해당 정보가 제대로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을 따지고 들었다. 그제서야 그 직원은 내가 알고 있는 줄 알았다는 둥, 책임을 회피하는 말로 대충 얼버무렸는데 그 목소리가 정말 가관이었다. 갈라파고스와 에콰도르인들에 대한 이미지 자체가 다시 한 번 크게 나빠지는 순간이었다.
옆에서 그 인간과 내가 옥신각신 싸우며 실랑이를 벌이는 걸 듣고 있던 경비행기 항공사 직원과 조종사는 이런 일이 이곳에서는 비일비재하다면서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미안하지만 규정은 규정이고, 오늘 나는 손님을 산크리스토발 섬에 내려준 뒤, 곧바로 본토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로 상황을 마무리 지었다. 더 이상 그들을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아, 나는 결국 마음이 크게 상한 채로 비행기에 올라탔다.
비수기라 그런지 경비행기의 승객이라고는 나밖에 없었다. 30분이 조금 넘는 짧은 비행 끝에, 갈라파고스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 산크리스토발 섬에 도착했다.
5. 산크리스토발 360도 투어
산크리스토발에서 필수 투어로 불리는 360도 투어. 단어 그대로 이 섬을 한 바퀴 빙둘러 주요 포인트를 돌며 스노클링 하는 일정이다. 내가 지불한 가격은 160달러였는데, 웻수트와 식사, 그리고 가이드가 고프로로 촬영한 영상까지 다 포함한 가격이었다.
꽤 많은 스노클링 포인트를 다닌 터라 전부 기억나지는 않지만, 운이 좋으면 망치상어를 볼 수 있다는 다이빙 포인트 키커락 Kicker Rock 에서의 스노클링과, 상어와 거북이와 함께 수영했던 로사 블랑카 Rosa Blanca 해변 포인트가 특히 인상 깊었다. 특히 키커락은 다양한 생물들이 바닷속에서 조화롭게 사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막연히 상상하던 심해를 잠시나마 탐험한 기분이었다. 다만 문제는 정말 으악! 소리가 나올 정도로 바닷물이 매우 차가웠다는 점이었다. 이를 몇 번이고 반복하니 물에 들어가는 일 자체가 점점 힘들어졌다.
그리고 이 투어는, 스노클링 부분을 제외하면 나에게는 또 다시 겪은 멀미와의 사투이자 멀미 지옥 그 자체였다. 포인트를 이동하는 내내 어찌나 파도가 높던지, 타고 있던 배는 사방팔방이 다 흔들렸고 내 머리도 함께 흔들렸다. 마지막 포인트에는 체력이 완전히 바닥나서 차가운 물에 들어가기 싫은 마음에 스노클링을 포기했고 (투어에 참여한 사람 모두들 나와 같은 생각인지 거의 물에 들어가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은 '이건 정말 다시는 못할 짓이다'라며 속으로 비명을 지르며 배를 탔다.
이날 일정을 전부 마치고 나서는, 내가 어떻게 숙소로 돌아왔는지조차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체력적으로 힘들고 고생이 많았던 투어였다.
이렇게 갖은 고난을 겪었던 갈라파고스 여행은, 내게 부에노스아이레스 집으로 돌아가는 길마저 쉽게 허락해주지 않았다.
마지막 혼신의 힘을 다해 참가했던 360도 투어의 여파인지, 아니면 그간 쌓인 모든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온 탓인지 - 출도하는 날 아침, 마치 이석증 증세처럼 온 세상이 핑핑 돌면서 어지러웠다. 하지만 그마저도 그저 '집에 가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이를 악물고 짐을 싸서 숙소를 나왔다. 다행히 산크리스토발 섬은 공항이 작고 가까워서, 무리하지 않고 정말 천천히 발로 땅을 디디며 걸어가니 상태가 조금씩 호전되었다. 만약 산타크루스 섬처럼 30-40분 이상 차를 타고 이동한 뒤 다시 배까지 타야 했다면, 아마 그 자리에서 불귀의 객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찔한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내가 탔던 비행기는 과야킬에서 중간 기착해 연료를 보충하며 과야킬까지 가는 승객을 내리고, 키토로 향하는 승객을 새로 태운 뒤에 다시 출발하는 일정이었다. 문제는 키토 착륙 과정에서 발생했다.
키토는 2,800m가 넘는 고산 도시이자 분지 지형이라, 기상 상황에 따라 비행기가 착륙하지 못하는 위험한 상황이 한번씩 발생한다. 이를 전문 용어로 '복행 Go around' 이라고 하는데 - 하필 내가 탄 비행기가 그 상황에 걸린 것이다.
고산 지대 특유의 강한 바람 때문에 비행기가 안정적으로 착륙할 수가 없는 상황. 결국 기장이 공중에서 같은 지점을 중심으로 40분 가까이 빙빙 같은 곳을 돌며 복행을 반복해서 시도할 때, 내 기분은 정말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옆자리 승객들 역시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고, 공포감에 우는 분들도 계셨다.
결국 착륙을 못해 세 번째로 다시 기체가 상승하는 걸 느끼며, 진지하게 '아, 진짜 폰 메모장에 유언장이라도 써아 하나'라는 생각까지 미쳤을 때, 기체가 크게 기우뚱하면서 기적처럼 활주로에 착륙했다. 기내에서는 일제히 환호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늘 생각하지만, 역시 고산에 도시를 세우는 것은 그다지 좋은 선택이 아닌 것 같다. 친구 말마따나, 사람은 고랭지 채소가 아니니까. 사람이 굳이 높은 곳에 살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그렇게 나의 7월 비수기 갈라파고스 여행은, 자연의 경이로움과 인간의 한계를 동시에 확인한 채 끝이 났다. 많은 사람들이 좋다고 칭찬하는 곳이, 반드시 모두에게 좋은 여행지는 아니라는 사실을 몸소 배운 시간이기도 했다.
갈라파고스는 내게 아름다운 자연과 다양한 동물들을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그러나 비싼 물가로 인한 경제적 부담, 물에 들어가기엔 너무 차가운 수온, 이 시기 특유의 높은 파도로 인한 배멀미와의 사투, 그리고 에콰도르인들에 대한 나쁜 인상까지 골고루 안겨주기도 했다. 정말이지 여러 모로 잊지 못할, 어쩌면 잊고 싶은 그런 여행이었다.
아마 내 의지로는 평생 이곳에 다시 올 것 같지는 않지만, 만일 어쩌다 인생에서 무슨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겨 다시 가게 된다면 - 진심 이때만은 아니길 바란다.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도 이 시기에 갈라파고스에 가는 건, 어쩌면 건강과 체력을 깎을 수도 있다는 충고 정도는 하나 해주고 싶다. (당시 차가운 물과 파도에 고생하며 다음 날 여행이 힘들었던 건, 나만 겪은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배멀미에 매우 취약한 나를 생각했다면 배를 오래 타는 투어는 지양하고 좀 쉬어가는 날도 더 만들었어야 했는데, 나의 욕심이었다.
아마도 나는 강인한 바다 사나이(?)가 되기엔 너무나 나약한 사람이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