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발디비아와 푸콘, 두 가지의 밤

여성 여행자로서 마주한 다정함과 상처 사이의 거리, 그리고 기록

by Angela B


성인이 된 이후 처음으로 커다란 배낭을 둘러매고 동유럽으로 떠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다양한 방식으로 조금씩 세상을 탐험하며 내가 아는 세계를 넓혀왔다. 그만큼 각 지역을 오가며 쌓인 기억과 에피소드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번에 풀어보려는 이야기는, 그 많은 기억들 가운데서도 몇 년 전 며칠 간격으로 이어졌던 칠레의 두 밤에 관한 것이다. 특히 여성 여행자로서 내가 그곳에서 마주했던 경험으로, 아마 많은 여성들이 공감할 수 있을 이야기다. 어쩌면 성별과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산티아고에서 아주 우연한 계기로 알게 된 G라는 이름의 중년 여성이 있었다. 원래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던 그녀는, 엉성한 스페인어로 혼자서 씩씩하게 여행을 다니는 나를 무척 마음에 들어했다. 당시 여행 중이던 내게 이후의 계획을 묻던 G. 나는 파타고니아 쪽으로 갔다 다시 천천히 올라올 거라 그랬더니, 자신은 사실 칠레 중부의 발디비아 Valdivia 란 도시에 살고 있으니, 돌아오는 길에 꼭 들리라며 나를 거듭 초대했다.


MBTI에서 J가 고정으로 나올 만큼 계획형 인간인 - 나의 여행 일정에는 전혀 없던 도시. 하지만 때로는 상황에 맞게 학습된 P가 되어버린 나에게 이 또한 여행 중에 또 하나의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약속대로 파타고니아 여행을 마치고, 그때 건네받은 G의 전화번호로 연락했다. G는 너무나 반가워하며 집주소를 바로 메시지로 보냈고, 진짜 발디비아로 와줘서 너무 고맙다며 나를 버스 터미널에 데리러 와 주었다.


그렇게 고즈넉한 발디비아의 G의 집에서 약 3박 4일 동안 쉬어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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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가 준비해 둔 웰컴 기프트! 이 지역의 명한 초콜렛 브랜드라고 한다.



도시 창립자였던 페드로 데 발디비아 Pedro de Valdivia 의 이름을 따 명명된 작은 항구 도시 발디비아는, 원래 이곳의 터줏대감이던 마푸체 원주민과 식민 시절 스페인인의 영향 뿐만 아니라, 이 지역 주변에 특히 많이 정착한 독일계 이민자들의 영향까지 모두 어우러진 곳이다.


G가 직장에 가 있는 낮 시간 동안에는 나는 발디비아 항구 근처와 시내를 산책하거나, 눈에 보이는 성당에 들러보거나, 이 도시의 명물인 수산 시장에서 시간을 보냈다. 저녁이 되면 G와 함께 저녁을 해먹거나, 독일계 후손들이 운영한다는 집 근처 수제 맥주집에서 인생사를 나누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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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꽃이 참 많았던 꽃의 도시 발디비아
IMG_3774.JPG 신비 체험을 했던 발디비아의 한 성당. 당시 여기서 "너는 생각보다 오래 남미에 머물게 될 것이다" 라는 말씀을 들었는데, 실제로 나는 몇 년 뒤 다시 남미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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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아름다운 발디비아는 깨끗하고 멋진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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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디비아 시장에는 처음보는 꽃들을 엮은 꽃다발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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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음직스러운 과일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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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산 시장에서 이것저것 구경하다가 게살을 사서 해물라면을 끓여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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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가 퇴근하면 가던 맥주집에서의 맥주 한 잔



인생에서 온갖 산전수전을 다 겪은 칠레 중년 여성 G와 한국에서 온 한 여성 여행자의 만남.

'여행'과 '생활'이라는 단어의 조합은 매우 어색하기 짝이 없지만, 정말이지 나 스스로도 홀로 여행 중이라는 걸 잊을 정도로 낮과 밤이 모두 안온하게 흘러가던 일상을 누렸다.


굳이 애써 힘주어 말하지 않아도, 웃음이 많고 친절한 사람들과 함께 낯선 곳을 마음껏 누비던 기억.

무엇보다도 여성 여행자라는 나의 존재 자체로 인해 안전함을 제공받고 믿음으로 환영받던, 이 모든 일이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있는 발디비아의 나날이었다.




푸콘 Pucón 은 만년설이 멋지게 드리워진 활화산인 비야리카 화산 Volcán Villarrica 과 그 아래 커다란 비야리카 호수 Lago Villarrica 를 품은 휴양지이자 각종 액티비티의 천국이다. 수도 산티아고와는 버스로 열 시간이 훌쩍 넘게 걸리지만, 방문하는 이들의 마음을 단번에 파랗게 물들이는 아름다운 곳이기도 하다.


푸콘은 휴양을 찾는 칠레 사람들과 여행자들에게 두루 사랑받는 여행 명소로, 호수와 숲, 온천과 트레킹 코스까지 고루 갖추고 있다. 파타고니아를 다녀온 뒤 잠시 쉬어가기에도, 다시 북쪽으로 이동하기 전 숨을 고르기에도 더없이 좋은 도시였다.


낮의 푸콘은 활기찼다. 거리에는 모험을 찾는 여행자들이 넘쳐났고, 길거리에 자리한 여행사에는 카약이나 래프팅 등의 액티비티 광고가 즐비했다. 나는 그중에서 제일 도전적인 활동 중 하나인 비야리카 화산 트레킹을 신청했고, 죽을 힘을 다해 다녀왔다. 그 외에는 호수 근처를 산책하고 사람들을 관찰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저 평온한 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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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푸콘의 화산과 호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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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야리카 화산 트레킹. 하필 리프트가 고장나는 참사가 나는 바람에 모래로 된 길을 두시간 가까이 올라왔다. 이미 체력이 소진된 상태에서 시작해서 그런지 더 죽을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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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의 격려를 받으며 올라온 정상. 활화산이라 방독면이 필요할 정도로 황 냄새가 지독했다. 내려올 때는 처음에 짊어진 썰매를 타고 내려온다.



푸콘에서 피곤하면서도 알찬 며칠을 보내고, 시간과 숙박을 한꺼번에 해결하기 위해 푸콘에서 산티아고로 돌아가는 야간 버스를 탔다.


남미에서 장거리 이동 버스는 대부분 2층 버스인 경우가 많다. 나는 가격이 조금 더 나가더라도 흔들림이 덜한 1층을 선호하지만, 이 구간은 워낙 인기 노선이라 1층 좌석이 이미 일주일 치까지 모두 매진된 상태였다. 결국 2층 자리를 선택해 올라갔다. 자리가 꽉 차지는 않았지만, 2층에도 가족 단위 여행객들과 커플들이 꽤 있었다. 홀로 야간 버스를 타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혹시 모를 도난에 대비해 중요 소지품이 든 가방을 허리 쪽에 착용하고, 그 위에 잠바를 덧입어 쉽게 손댈 수 없게 한 뒤 얕게나마 잠을 청했다.


어둠과 정적, 엔진 소리와 누군가의 코 고는 소리까지 전부 뒤섞인 밤. 야간 버스에서는 도난 사건이 잦은 편이기 때문에 깊이 잠들지는 못한 채 뒤척이며 눈을 감고 있었다. 당시에 버스 기사 중 한 명이 2층 자리 점검차 통로를 오가고 있었다. (남미 장거리 버스는 보통 기사 둘 이상이 교대로 운전한다.)


그렇게 자다깨다를 반복하며 가던 중, 뭔가가 내 몸 위로 기어가는 듯한 이상한 기분이 들어 눈을 살짝 떠보니, 어떤 그림자가 내 가슴 쪽을 더듬거리고 있었다. 순간 온몸이 얼어붙는 듯 했지만,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어 "으윽!" 소리를 냈다. 그 순간 그림자는 후다닥 사라졌고, 내 주변에 있던 가족들 중 엄마가 잠에서 살포시 깨어 무슨 일이냐고 묻기 시작했다. 나는 엉성한 스페인어로 "뭔가가 내 몸을 만졌다"라고 말했고, 이야기를 듣던 가족들은 갸우뚱거리며 다시 잠을 청했다. 사실 사방이 캄캄해서 다들 제대로 보진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어둠 속에서도 그림자가 차고 있던 스테인리스 명찰표가 빛났던 걸 기억했다. 그러니 범인은 이 버스에서 명찰표를 차고 있는 유일한 사람들인 버스 기사 둘 중 하나인게 분명했다. 그는 2층 좌석을 점검하고 창문을 닫는 척하면서 나에게 몹쓸 짓을 한 것이다.


나는 분한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했고, 아침이 되어 산티아고 버스터미널에 내리면서 그들을 힘껏 노려보았다. 그 중 한 명이 갑자기 고개를 숙이며 짐짓 모르는 척하는 모습을 보니, 나의 짐작은 확신이 되었다. 그렇게 푸콘에서 넘어오던 밤은 나의 안전을 위협받은 경험과 함께 매우 볼쾌한 방식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이 일은 푸콘이라는 도시를 미워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낮의 푸콘은 여전히 아름다웠고, 내가 보낸 시간들 역시 소중했다. 다만 그날 밤 이후로, 여행하는 여성의 이동에는 늘 계산과 대비, 그리고 또 다른 불안 요소가 함께 따른다는 걸 다시 한 번 몸으로 깨닫게 되었을 뿐이다.


전 세계에서 모인 여성 여행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각국을 다니다 겪은 크고 작은 불쾌한 에피소드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가벼운 성희롱성 발언은 물론이고, 성추행을 넘어선 범죄로 이어질 뻔한 아찔한 이야기들도 낯설지 않다. 타깃이 되기 쉬운 홀로 여행객뿐 아니라, 여자 친구들끼리 다니는 경우나 심지어 레즈비언 커플에게조차 예외는 아니었다.


예를 들면 이렇다.

홀로 아프리카에 단기간 의료 봉사를 갔던 한 여성은, 떠나기 직전까지 어떤 남자가 밤에 찾아오라며 자신의 ‘블랙 맘바’를 보여주겠다고 끈질기게 따라붙었다고 했다. (그는 덩치 큰 흑인 남성이었고, 너무도 엄숙한 얼굴로 매일 같은 말을 반복해 오히려 황당해졌다고 한다. 그 분 왈 그의 태도가 하도 진지해서 순간적으로 “도대체 뭘 보여주겠다는 걸까”하고 궁금해질 뻔했다며, 그 상황에 대해 어이없게 웃으며 이야기할 정도였다.)


여자 친구들끼리 여행하던 중 한 바에 들렀다가, 술에 약을 타 이들을 데려가려던 범죄 시도가 발각된 적도 있었다. 신혼여행 중이던 레즈비언 부부를 만났던 어느 나라에서는, “아직 제대로 남자를 경험하지 않아서 그렇다”거나 “함께 밤을 보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라는 미친 말을 거리낌 없이 내뱉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 이야기를 쓰는 이유는 끔찍한 경험을 강조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이것이 엄연한 현실이며, 여행하는 여성에게 어떤 밤들은 여전히 이렇게 불안한 형태로 주어진다는 사실을 기록해 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여성이기 때문에 겪게 되는 경험들을 직간접적으로 마주할 때마다 마음이 닳아드는 느낌을 받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닳아든 만큼, 나의 마음은 이전보다 조금 더 단단해져 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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