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골 때리는 아마존 여행기 (3)

3박 4일 동안 화물선을 타고 거대한 아마존 강을 넘어 마나우스까지

by Angela B



아마존 한가운데인 콜롬비아 레티시아에 도착하자마자 우리가 했던 건, 바로 15~20분 정도 거리의 브라질 타바칭가 Tabatinga 로 오토바이 택시를 타고 건너가 브라질의 대도시 마나우스 Manaus 로 향하는 정기 화물선 배편을 알아보는 일이었다.


아마존 강을 따라 브라질 국경 마을 타바칭가에서 마나우스를 거쳐 산타렝 Santarém 과 아마존 하구 도시 벨렝 Belém 까지 - 긴 시간을 오가며 포르투갈어 단어로 '바르쿠 헤크레이우 Barco Recreio' 라 불리는 화물선이 존재한다. 대략 주 2회 간격으로(이는 변동 가능성이 있다) 운행하며 아마존 강 유역의 각 커뮤니티에 필요한 판매 물자를 싣고 부지런히 나르고, 남는 갑판에는 사람까지 함께 태우는 - 말 그대로 화물도 싣고 사람도 싣는 (?) 정기 화물선이다. 관광객들을 위함이라기보다는 아마존 현지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삶의 필수 교통수단이다.


물론 이외에도 부정기적으로 운행되는 개인 경비행기나 제트보트를 이용할 수 있다고도 했지만, 이는 불확실성이 커서 제외하기로 했다. 또한 아마존을 여행하는 관광객들을 위해 하루 정도의 짧은 기간을 다니는 호화 유람선 같은 배도 있다고 했지만, 타바칭가에서 출발하는 배는 예외 없이 모두 화물선이다.


아마존 강의 흐름은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것이 정방향/순방향이고, 동에서 서로 가는 건 역방향이다. 그래서 타바칭가에서 마나우스의 경우, 때마다 다른 아마존 강의 흐름과 양, 속도에 따라 3박 4일 혹은 4박 5일 정도 걸린다고 한다. (우리가 갔을 때는 우기 시즌이었기에 다행히 물의 양이 많아 물살 흐름이 빨라져서 3박 4일로 총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다. 반대로 벨렝 방향에서 마나우스나 타바칭가 쪽으로 갈 경우에는 강의 방향을 역류하므로 그 기간이 배로 걸릴 것이다.) 정기 화물선은 보통 아마카 Hamaca 라고 불리는 해먹을 개인적으로 들고 탄 뒤 - 갑판에다가 스스로 설치하여 잠을 자거나, 혹은 몇 없는 선원용 캐빈을 예약해서 이용할 수도 있다.


타바칭가에서 다음 정기선 스케줄을 확인하자마자 우리 일행은 바로 캐빈을 빌렸는데, 당시 우리가 현지 사람들이 혹할 만한 현금과 달러, 비싼 물건(이를테면 카메라 등)을 소지하였으므로 갑판보다는 캐빈을 이용하는 게 안전 측면에서 훨씬 낫겠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정확한 금액은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 캐빈을 빌리는 데 한 사람당 가격이 정해져 있었고, 우리 일행 세 명이 마나우스까지 가는데 이용한 총 가격은 세 끼 식사 포함 약 500~600달러 정도였다. (달러로 표시했지만 실제로는 브라질 헤알 Real 화로 지불하게 되어있는데, 의외로 아마존 내에서 달러 환율이 남미 전체를 통틀어 가장 좋았던 기억이 있다.)


도착하자마자 다음 편 행선지 배편을 확인하고, 운 좋게 캐빈을 빌리는 데 성공한 우리는 다음 배편까지 남은 일주일 가량의 시간을 여유있게 즐겼다. 그동안 정글 탐험부터 모기를 거쳐 변태까지 만나는 등 (아마존 여행기 1,2편 참고) 정말 다양한 추억을 쌓았던 우리 일행. 이번에는 현지인들이 주로 화물선 타고 아마존 강 건너기를 통해 또 한번 평생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을 해보기로 했다.




IMG_2553.JPG 화물선을 타고 마나우스로 떠나는 날 마지막 아침 식사. 전날밤 변태 사건을 겪은 우리에게 기운내라며 양껏 차려주셨다. 내가 좋아했던 아마존 열매 쿠푸아수 Cupuaçu 주스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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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정신이 하나도 없던 화물선 선착장 근처.



선착장 근처로 가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마치 전쟁통에 피난이라도 가는 양 엄청난 크기와 갯수의 짐을 들고 와 있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우리 말고도 다른 외국인 여행자들이 있었다! 커플 두 쌍과 친구끼리 일행인 그룹 하나였는데, 우리는 혹시라도 우리만 외국인일까봐 매우 걱정했는데, 비슷하게 도전적인 사람들을 만나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알고보니 이들도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아마존에 도착했고, 전화도 인터넷도 없는 며칠간의 강제 디지털 디톡스 상태에서 아마존 강을 건너는 모험을 해보기로 결심했으며, 마찬가지로 우리 일행을 보고 자기들 이외에 외국인이 더 있어서 다행이라고 느꼈다고 한다. 이런!


도합 200명은 되어보이는 아마존 현지 사람들 중 우리들의 존재는 마치 형광펜이라도 칠한 양 유 눈에 띄었지만, 그래도 의지할 사람들이 생겨서 마음을 놓았다. (그중에 한 명은 브라질에서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낸 경험이 있어, 필요한 경우에 우리의 통역이 되어주었다.) 그들 역시 몇 안 되는 캐빈을 빌리고 싶어했었지만, 다른 현지인 가족과 우리 일행이 선점한 탓에 빌리지 못하여 결국 갑판행 티켓을 끊고 개인용 해먹을 샀다고 한다. 나중에 그들의 해먹에 놀러가고, 우리의 캐빈에 놀러오기로 약속했다.


이윽고 화물선에 올라타기 전 신분증 확인, 배표 검사와 함께 그 악명 높은 화물선 짐 검사가 시작되었다. 지리적, 환경적 이유로 밀수업, 마약 유통 등의 사건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하는 아마존이기에 짐 검사가 매우 빡빡하기로 유명한데, 말 그대로 샅샅이 털어 검사하는 체감상 공항보다 훨씬 더 심했다. 그나마 여성 여행자의 경우에는 조금 유한 편이나, 남성의 경우에는 얄짤 없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수상하다 싶으면 개인 물통, 속옷, 양말, 세면도구 등 정말 모든 짐을 다 꺼내어 조사한다. 우리 외국인 일행 중에서는 커플 중 남자가 걸려서 그에게만 약 15분간 검사하는 일이 발생했는데, "내가 마약하는 사람처럼 보이냐"며 허탈한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어제 칼같이 정리해놓은 짐을 경찰이 다 어지럽혔다며 다시 분류할 걸 생각하니 난감하다고.




IMG_2890.jpg 짐 검사까지 수속 절차가 다 끝나면 이렇게 행선지가 적힌 종이 팔찌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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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습도 100프로에 가까운 날씨 탓에 늘 눅눅해서 별 소용은 없지만, 에어컨도 달려있는 등 나름 아늑했던 우리의 캐빈. 아마존 강물로 샤워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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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최강의 시골 마을 중 하나일 타바칭가를 떠나기 전. 이런 깡시골에서 "카니발 행사도 하니 다음에 보러 놀러오라"고 말하는 주민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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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화물선의 크기가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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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물자와 탈 것까지 싣고 마나우스로 출발



이미 언급했듯 아마존은 몇몇 커뮤니티를 들를 때 정도를 제외하고는(사실 공항이 있는 레티시아조차도 와이파이나 데이터가 잘 안 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인터넷은 커녕 전화 통신마저 두절되는 오지 중에 오지다. 화물선끼리는 필요한 경우 무선으로 소통하기도 한다지만, 오로지 제대로 잡히는 건 겨우 GPS 뿐인 이곳. 아마존 강 어디쯤 왔는지 10분 간격으로 대략 GPS를 가늠해보며 "아직 겨우 이만큼 밖에 안 왔네"라며 절망하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우리는 시간을 소비한다기보다는, 그저 견디고 흘려보내며 마치 "아마존 강 건너기"라는 이름의 고요한 수행을 하는 듯한 기분으로 4일을 지냈다.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출국하고 (비록 동네 편의점보다 작았지만, 타바칭가에는 나름 출입국 사무소가 있으며 콜롬비아 쪽에서 오는 경우 반드시 입국 도장이 찍혀 있어야 배를 탈 수 있다) 빡센 짐 검사 등을 겪으며 긴장했던 몸을 풀고, 캐빈에 짐을 둔 뒤 본격적으로 돌아다니며 배의 구조를 확인해보았다.


이 배의 구조는 대략 3층이었는데 모든 갑판 칸에 해먹을 다 설치할 수 있었고, 해먹 개수를 대충 세어보니 층마다 50개가 넘었다. 해먹 하나에 어린아이를 동반하거나 해먹 없이 짧은 거리만 이동하는 사람들까지 고려하면, 한 번에 150명에서 200명 가까운 사람들이 이 배에 몸을 싣는 셈이었다. 안타까운 사실은 해먹을 설치하는 갑판조차도 일종의 급이 존재한다는 거였고, 가장 아래 층의 갑판은 저렴한 엔진이 가까웠기에 배에서 내릴 때까지 옆사람과 대화도 힘들 정도로 시끄러운 엔진소리를 들으며 지내야 한다. (이는 마치 영화 <설국열차>를 연상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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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친구의 해먹에 놀러갔다가 잠시 누워보았다. 우리를 보며 너무 신기해 하는 사람들이 자꾸 툭툭 치고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걸어 외향형 인간인 나조차도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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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판쪽에 서서 바라본 아마존 강 유역의 각종 마을과 작은 커뮤니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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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정기 화물선은 마치 완행열차처럼 모든 커뮤니티를 다 들려서 물자와 사람을 싣고 내린다.




하지만 더 경악스러웠던 사실은, 이 커다란 배에 화장실이 2층에 단 하나뿐이었고 - 그것마저 남녀공용이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정말 더워서 "피부를 허물처럼 잠시 벗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극단적으로 습한 날씨 속 아마존을 지나는 배 갑판에는 간단한 샤워시설조차 없었다. (그래서 이 배에 함께 탄 외국인 여성 여행자들이 화장실은 물론이요, 세수는 고사하고 이 닦기도 힘들다며 너무 고통스러워 하기에, "우리 캐빈에 종종 와서 화장실과 샤워기를 쓰라"며 그들에게 흔쾌히 캐빈을 열어주기도 했다.)


다만 샤워기에서 나오는 물은 아마존 물 흙탕물을 그대로 가져와 쓰는 거였고, 혹시 모를 말라리아나 뎅기 같은 질병을 예방하기 위함인지 모기 유충과 알 제거 목적이라는 약품 냄새가 너무 심하게 났다. 그래서 샤워를 할 때마다 피부가 따가웠기에, 정말 더워서 죽을 것 같을 때만 간단히 샤워를 하기로 했다. (결국 배에서 내리는 마지막 날에는 "우리도 깨끗한 육지물을 쓰고 싶다"며, 모두들 아마존 특유의 끈적거림을 견디며 샤워를 참았다.)




IMG_2919.jpg 문명과 단절되는 기분으로 하늘을 자주 바라보게 되었는데, 잠시 세찬 소나기가 온 뒤 아마존 숲 위로 커다란 무지개가 떴다.
IMG_2927.jpg 브라질을 여행하기 위한 생존 포르투갈어 익히기. 스페인어와 비슷한 점이 많아서 사실 기본적인 문장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이 화물선에서의 식사는 제일 아랫층에 있는 배식 장소에서 받아가는 방식인데, 배에서 주는 접시에 담거나 자기가 준비해온 통에다가 담아갈 수도 있다. 선장님께서 식당 앞에 있는 종을 딱 세 번 치는 게 식사가 준비되었다는 의미인데, 종소리를 듣자마자 배에 탄 사람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마치 "파블로프의 개" 실험을 연상케 했다. 만일 이 종소리를 못 들어서 시간을 살짝 놓치면 아예 음식이 바닥나기에 서둘러야 한다.


그러나 매번 식사양은 꽤 넉넉하게 준비되는데도 불구하고, 음식은 뒷사람들이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늘 모자랐다. 그 이유가 궁금했는데, 알고보니 끼니마다 아예 거대한 플라스틱 통을 가져와 자기가 먹을 수 있는 한 끼 분량의 3배 이상을 훌쩍 가져가는 얌체 같은 아마존 사람들이 워낙 많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배에서 내려 자기 식구들까지 먹이기 위함인지, 아니면 단순히 식비를 아낄 겸 화물선에 타는 뽕을 뽑기 위함인지 알 수 없었으나 - 매번 식사 시간마다 산더미같이 빵이며, 페이정 Feijão (브라질을 대표하는 검은 콩 요리이자 밥 반찬) 을 끼얹은 밥이며, 가루 치즈를 뿌린 스파게티 등을 통에 가득 담아서 자기들이 가져온 커다란 가방에 쑤셔 넣는 장면은 며칠 전 낚시를 나갔을 때 봤던 피라냐 떼와 다름이 없었다. 물론 빈곤과 결핍 속에서 살아온 아마존 유역 내 낙후 지역 사람들의 생존 방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긴 했으나, 솔직히 배에 있는 4일 내내 저런 모습을 보니 - 외국인 여행자인 우리에게는 저게 아마존 사람들의 기본적인 도덕 관념인가 싶어 정이 떨어지기도 했다.


사실 캐빈에서는 종소리가 잘 들리지 않기에, 우리 일행은 뒤늦게 내려와 이미 바닥난 음식들을 보고 허탈해하며 과일만 겨우 받아가는 경우가 몇 번 있었다. (그래도 그 수박 맛은 지금도 생각날 정도로도 맛있었다.) 이런 아마존 주민들의 도덕적 해이에 대해 선장님께 항의도 해 보았으나, 선장님은 마음씨가 좋은 건지 아니면 그들을 말리는 걸 포기한 건지 그저 허허 웃고 말 뿐이었다.


아마존 하구 도시 벨렝 쪽 출신이라는 선장님은 유쾌하고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국경 지대 출신이 아니라 스페인어는 이해 못 하시고 포어만 가능하셔서 원활한 소통은 힘들었지만, 매번 우리를 볼 때마다 "너희 사실 북한에서 왔지! 와하하!" 하면서 농담을 던졌다. 대신 앞사람들이 음식을 죄다 가져가 버리는 바람에 먹을 게 없어 툴툴대던 우리에게, 사람들 몰래 과일이나 빵 같은 걸 가져와 챙겨주기도 하는 등 말 그대로 '츤데레'의 정석을 보여주셨다.



IMG_2930.jpg 몇 번의 실패 끝에 우리 일행이 겨우 받아온 소중한 밥



이렇게 때로는 어이없는 이유로 밥을 굶기도 했던 아마존 화물선에서 제일 좋았던 건 - 매일 아마존 특유의 낙조를 보는 시간이었다. 커다란 뭉게구름과 어우러지는 짙은 노랑과 주황의 어울림. 말간 빛의 노을 아래 점점 새카만 어둠 속으로 가라앉는 아마존 숲을 보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일은, 끼니마다 밥그릇 싸움을 하고 화장실을 다투는 화물선에서도 -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넋을 잃고 누릴 만한 커다란 사치였다.


다만 저 밀림 숲 너머로 간혹 시커먼 연기가 피어오르는 풍경도 보였다. 아마 다큐멘터리나 신문기사에서 본 것처럼 몰래 벌목을 하고 있는 거겠지 싶어서 지켜보는 마음이 어지러웠다. (현재 아마존은 지구의 허파로서의 기능을 위협받을 정도로, 인간의 활동과 기후위기로 인한 파괴가 극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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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2974 (1).jpg 매일 노을을 보던 어린왕자의 심정으로, 아마존의 낙조를 보았다.




완전히 어둠이 지고 조금은 선선해졌을 때 제일 윗층으로 올라가 보았다. 이 배는 축구의 나라 브라질의 화물선답게 갑판 위에 축구장이 꾸며져 있었고, 더위가 가신 시간마다 사람들이 축구를 하러 몰려들기 시작했다. 매점도 있어서 사람들에게 간단한 과자와 주류를 팔았고, 그 앞에서 다시 만난 외국인 친구들과 간단히 술을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는 동안 외국인을 보기 힘든 동네임에도 불구하고, 화물선에 모여든 외국인들이 너무 신기했던 모양인지, 아니면 우리가 재미있어 보인다고 배 위에서 입소문이라도 돌았는지, 이 배에 있는 아마존 현지인들이 슬슬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러 부족 언어가 뒤섞인 아마존식 포르투갈어를 구사하는 그들과는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아 제대로 된 대화는 힘들었다. (브라질에서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쭉 보내 포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일행도, 그들의 말을 알아 듣는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와 재밌게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그들의 방법은 "술을 대접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 는 전 세계 어디를 가서도 통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특히 아주머니들은 우리 일행에게 "동양인은 살면서 처음 보는데, 피부가 되게 좋다"는 말과 함께 아사이베리로 만들었다는 브라질 특제 술을 계속 사 주며 호감을 표시했다. 결국 우리는 만취하여 캐빈에 돌아왔고, 그나마 다음날 멀쩡하게 일어났던 나에 비해 동생들은 완전히 뻗어버리며 하루 종일 숙취에 시달렸다.


물론 강을 건너는 배는 바다와 비교해서는 움직임이나 울렁거림이 덜한 편이지만, 숙취로 시달리는 이들에게는 당장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로운 일이었다. 배에서 당장 뛰어내리고 싶다는 이들에게, 아까 본 아마존 강 위에서 헤엄치는 아나콘다에 대한 말과 함께 - "피라냐의 먹이가 되고 싶지 않다면 자제하라"며 농담섞인 말로 살짝 다그치기도 했다. 동생들은 "다시는 아사이베리 술 같은 건 쳐다보지도 않겠다"는 다짐까지 할 정도로, 이날의 숙취에 매우 질려버린 듯 했다.




IMG_2976.jpg 축구의 나라 브라질답게 배에도 간이 축구장이 있다! 이렇게 나름 근사하게 만들어 놓은 갑판에서 사람들이 축구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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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과 밤 시간에 주로 열었던 이 배의 매점. 심심할 때 올라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간단한 보드게임, 카드게임하는 걸 지켜보기도 했다.
IMG_2980.jpg 동생들이 마신 뒤 하루 종일 숙취에 시달린 문제의 아사이베리 술. 아사이 Açaí 를 발효하고 가향하여 만드는 브라질산 리큐르라고 한다.




문명과 다소 동떨어진 아마존 강 위를 떠다니는 화물선 위에서 일출과 일몰 시간을 온전히 누리는 순간만큼은, 마치 쏟아지는 축복의 샤워를 맞는 기분이었다.


IMG_2986.jpg 구름에 가렸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일출.



갑판에 서서 자연이 주는 감동과 아름다움에서 홀로 잠겨 있을 때, 어떤 남자가 아주 당당한 태도로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자신 있는 표정을 지으며 포르투뇰로 말을 걸었다.

"너 이쁘다. 어디에서 왔니? 나는 타바칭가에서 왔어."

나는 한국에서 왔다고 대답하자, 곧바로 두 번째 질문이 이어졌다.

"남자친구 있어? 나랑 만나자!"


임자가 있는지 없는지만 중요할 뿐, 정작 내 이름조차 궁금해하지 않는 사람. 나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그에게, 단지 '외국인 여자'라는 이유로 그의 이성적 호기심을 채워줄 이유는 없었다. 거절의 뜻을 분명히 밝혔지만, 그는 내가 한 말을 못 알아들은 건지 아니면 애써 못 알아듣는 척하는 건지 의외로 끈질겼다. 결국 나는 갑판에서 홀로 있는 시간을 최대한 피하고, 우리 일행이나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 움직이게 되었다.

나 참, 이렇게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이유로 아마존의 낭만을 방해받게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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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갑판에 나갈 때마다 두리번거리게 되었고, 그가 나타나면 다시 캐빈으로 돌아가는 숨바꼭질을 얼마간 계속 했다.
IMG_3004.jpg 한낮의 나른한 아마존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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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해보는 숫자 게임. 시간을 죽이기 위해 폰 없이 할 수 있는 건 꽤 많이 해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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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3045.jpg 그렇게 시간이 흐른 뒤, 다함께 갑판에서 아마존 강에서의 마지막 낙조를 보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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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조를 보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던 커플. 이들은 현재 결혼해서 귀여운 두 딸을 낳고 잘 살고 있다.
IMG_3062.jpg 다른 배가 보이는 것을 보니 점점 대도시 마나우스에 가까워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우리의 마음이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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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선에서의 마지막 밤을 이대로 보낼 수 없다며 또다시 아사이베리주와 카드게임을 했다. 그리고 또다시 숙취에 시달리고 말았다.




마지막 날 아침. 전날 달린 아사이베리주로 인한 심한 숙취에 일출도 놓친 채, 평소보다 훨 늦게 일어났다. 머리를 부여잡고 퉁퉁 부은 얼굴로 밖에 나가니 선장님이 이제 몇시간 뒤에는 마나우스에 도착한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주었다. 우기라 물이 많고 물살이 빨라져서 평소보다 더욱 속도를 낼 수 있었다며, 슬슬 짐을 챙기라는 말을 덧붙이셨다.


조금 더 지나자 마나우스 인근에 있다는 그 유명한 아마존의 "두 강이 만나는 지점"이 보였다. 이는 '검은 강'이라는 뜻의 히우 네그루 Rio Negro 과 아마존 유역 인근의 원주민 부족에서 이름을 따서 지었다는 히우 솔리모에스 Rio Solimões 가 만나지만 서로 섞이지 않으며 수 킬로미터 동안 나란히 흐르는 신기한 자연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나무가 썩은 유기물 등이 가라앉아 진한 홍차색 혹은 검은 빛을 띠는 느리고 따뜻한 네그루 강, 그리고 토사가 많아 탁한 황토색을 띄며 차갑고 유속이 빠른 솔리모에스 강은 서로의 온도, 밀도, 속도, 그리고 pH 농도 등의 차이로 인해 바로 섞이지 않고 이런 기이한 자연경관을 만들어 낸다. 약 20km 가까이 나란히 달리던 이 두 강이 서서히 합류하여 비로소 우리가 아는 '아마존 강'의 커다란 본류를 형성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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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강과 황토 강이 서로 오래 나란히 달리다가 마나우스까지 가서야 서서히 섞이는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다.



이 강이 섞이기 시작해 커다란 아마존 강을 만들면 마나우스에 다 왔다는 의미고, 우리도 이 화물선에서 내려 아마존과 서서히 작별을 고할 시간이 되었음을 알리는 신호이다.



IMG_3084.jpg 멀리서 보이는 마나우스 인근의 풍경
IMG_3085.jpg 산타렝이나 벨렝까지 가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많은 사람들이 해먹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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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간 너무나 재밌는 추억을 안겨주었던 선장님. "이제는 너희 북한 사람이라 안 부르고 남한 사람이라 부를게!" 하며 등을 두들겨 주셨다. 옆 사진은 당시 화물선의 운항 스케줄표.



그렇게 우리는 아마존 강 위에서의 시간을 내려놓고, 비로소 다시 ‘육지의 세계’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이 화물선의 최종 목적지인 벨렝까지 간다는 몇몇 외국인 여행자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벨렝까지는 타바칭가에서 여기까지 온 만큼 더 가야한다), 나머지와 함께 마나우스에 내릴 채비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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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인 모습을 한 도시의 선착장에 서서히 다가간다.
IMG_3095.jpg 보통 마나우스에서 아마존 투어를 많이 하지만, 이미 다 하고 왔기 때문에 상관없었다. 우리 일행은 마나우스 도착을 끝으로 아마존 숲과 강과는 안녕을 고했다.



우리 모두는 드디어 휴대폰이 터지기 시작하고,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며, 택시를 불러서 편하게 숙소까지 이동한 뒤 말라리아 약품 처리가 없는 깨끗한 물에서 샤워를 할 수 있었다. 이후에는 에어컨이 있는 시원한 쇼핑몰에서 구경도 하고, 맛있는 한식도 마음껏 먹을 수 있어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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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브라질 도시에 도착한 기념으로 브라질을 대표하는 플립플랍(일명 쪼리) 브랜드 하바이아나스 신발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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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우스의 한식집. 우리의 이야기를 들은 사장님께서 멋지고 용감하다며 밥을 양껏 주셨다. 나흘 내내 반쯤 굶은 상태였던 우리는 정말 미친듯이 먹었다.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레티시아에 도착해 하루하루 국경을 넘고 밀림을 누비고,

이후에는 화물선에 올라타 마나우스까지 도착하기까지 -

내가 온몸으로 직접 겪고 체험한 열흘 간의 아마존.


실제로 당도하기 전까지 꿈꾸던 아마존은 단순히 어느 정도의 불편함과 자연의 낭만을 품은 곳이었으나, 그 속에서 지낸 열흘 이후에는 아마존을 이전과 같이 볼 수 없었다.

같은 강, 같은 숲, 같은 노을이었지만, 그 강 아래 어떤 것들도 함께 흐르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여전히 아마존을 추억하고, 강 위에 떠 있었던 순간을 생생히 기억한다.

다만 이제는 그 아름다움이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점점 쪼그라들고 있으며,

아무 조건 없이 감탄할 수 있는 대상 역시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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